고욤 /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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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20회 작성일 19-07-17 05:47본문
고욤 / 이정록
아버지는 망치와 낫과
대패와 펜치와 자귀와 못을
내 고사리손 가까이에서 치우지 않았다.
나는 하루 내내 아무것이나 만들었다.
내 손톱에 고인 망치소리가
채송화를 피우고 고욤으로 익어갔다.
하루는 낫으로 연 살을 깎다가
뼈가 보이도록 손가락을 도려냈다.
아버지가 누런 러닝셔츠를 찢어서
내 눈물주머니까지 우지끈 동여맸다.
아들아 왜 손가락이 열 개겠어?
하느님이 손가락을 왜 열 개나 줬겠냐고?
지나던 닭에 개구리를 던져주듯
평생 쓸 처방전을 곁들였다.
다음날에도 연장통은 치우지 않았다.
살점이 썩어 문드러진 뒤 새살이 돋았다.
왜 손가락이 열 개냐고? 아직도 아버지는
손톱달에 걸터앉아 예술론을 펼친다.
새로운 생각은 고욤나무에
감나무 순을 접붙이는 것이지.
멍든 고욤손톱을 뽑아내고
꽃봉오리를 펼치는 일이지.
* 이장록 : 1964년 충남 홍성 출생,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재비꽃 여인숙>등 다수, 산문집 < 시인의 서랍>
< 감 상 >
곧, 손에 잡힐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포에지와 아우라가
독특하다
- 아들아 왜 손가락이 열 개겠어?
- 하느님이 손가락을 왜 열 개나 줬겠냐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평생 이정표로 삶아야하는
역설적인 아포리즘?
고욤은 어다까지나 고욤이다
고욤은 절대 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고욤나무순에 감나무순을 접붙이면 감이 열리겠지
인간은 누구나 자기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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