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천골(배롱나무) / 박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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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골 / 박우담
-배롱나무
떨어지는 이파리는 나무의 편지
갑작스레 덕천골에 비 내린다.
화음이 좋고 음감이 아름다운 단발머리처럼
촘촘한 비바람에 현을 켜는 나무
태생부터 눈시울 붉히고 숱한 고뇌의 시간을 보내는
젖은 잎사귀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그분이 주신 현의 울림에 따라
꽃잎이 떨어진다.
천 년 만 년 붉을 것만 같았던 꽃잎이
쇠락하는 왕조의 호외처럼 바닥에 떨어진다.
난 오늘도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눈물 없이 읽기 힘든 떨리는 손편지
낮과 밤이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는 내 손바닥에도
몇백 겁의 길 따라 온 눈물의 홈통이 있다.
내 등줄기에서 발끝까지 축축하게 젖는다.
나는 꽃가루에 덮여있는 너를 바라보며
그 길을 걸어간다
* 박우담 : 1957년 경남 진주 출생, 2004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2015년 제12회 형평지역 문학상 수상
< 소 감 >
화자는 비내리는 덕천골 배롱나무를 바라보며 상상에 빠진다
그 바람소리는 그 분이 현을 튕기며 연주하는 음악이라 생각하는데,
사유가 품고 있는 상상의 폭과 깊이는 그 신비로움이 어디까지일까?
- 꽃잎이 떨어진다.
- 천 년 만 년 붉을 것만 같았던 꽃잎이
- 쇠락하는 왕조의 호외처럼 바닥에 떨어진다.
떨어지는 나뭇잎과 천만 년 붉을 것만 같던 한 왕조의 쇠락이 겹치는데,
여기서 한 왕조는 이 세상 千態萬象 모든 衆生들 개개인이리라
화자도 나뭇잎에 실려 그 분(조물주)이 튕기는 음악소리 속에서 쇠락하는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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