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 정영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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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74회 작성일 19-09-30 08:55본문
이름들
정영효
내가 받은 첫 번째 친절은
열두 마리 짐승 중 한 놈과 생일을 엮어 만든 계획
작명은 태내의 이후를 찾아 출생에 보태는 것이지만
간혹 내 이름을 불러보면
먼 소식이 풀리지 않는 사주를 차려 놓는다
그렇게 하고, 해야 한다는 식의 믿음
또는 다짐이 나와 다르게 흐르고
문틈에 낀 밤의 외막 같은
몰래 다가오던 적요가 출입을 들킨다
이름이 가진 줄거리는 계속되는 이설
그걸 채우고 죽은 사람은 자신의 명(命)을 탐독했을까
남의 이름을 외울 때 뇌압에 귀가 멍하곤 하다
글자에 묻은 음색의 취향과 얼굴을 함께 떠올리자
인연을 데려온 이력이 궁금하고
낯선 공명이 관계를 꺼낸 채 탁하게 사라지는 것이다
알아야 해서 곧 숨겨버리는 망각
이름이 처음 만나 베푸는 예의라면
기억하기 힘든 이들은 전래가 어긋난 속계(俗界)를 지닌 걸까
정해진 문답으로 인사하는 순간마다
내 육성을 의구하므로
이름은 나를 훔치기 위한 혐의인지
자주, 잊힌 이름들의 주기가 돌아온다
프로필
정영효 : 경남 남해, 200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 감상
이름, 내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것이 이름이다. 이름은 나를 대표하거나 타인을 내가 기억하는 수단이며 내가 타인을 기억하는 수단이다. 이름은 내 뜻과 의지로 주어지지 않는다. 중간에 개명을 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이름은 내게도 없고 타인에게도 없다. 잊거나 잊히거나 할 때 가장 먼저 삭제되는 것도 이름이다.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이름이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은 있어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 구겨 버리거나 삭제하지 말자. 그리울 때 몰래 소리 내어 이름을 부르면 어쩌면 이름의 주인이 달려올 수도 있다. 이름은 나를 훔치기 위한 혐의라는 본문의 말이 머릴 맴돈다. 내 이름은 어쩌면 네 것인지도 모른다. [글/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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