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다는 것 / 문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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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66회 작성일 19-10-30 04:52본문
환하다는 것 / 문 숙
중심이 없는 것들은 뱀처럼 구불구불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며 길을 간다
능소화가 가죽나무를 휘감고
여름 꼭대기에서 꽃을 피웠다
잘목된 것은 없다
시작은 사랑이었으리라
한 가슴에 들러붙어 화인을 새기며
끝까지 사랑이라 속삭였을 것이다
꽃 뒤에 감춰진 죄
모든 시선은 빛나는 것에 집중된다
환하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 위에서 꽃을 피웠다는 말
낮과 밤을 교차시키며
지구가 도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돌고 돌아 어느 전생에서
나도 네가 되어 본 적 있다고
이생에선 너를 움켜잡고
뜨겁게 살았을 뿐이라고
한 죽음을 딛고 선
능소화의 진술이 화려하다
* 문 숙 : 경남 하동 출생, 2000년 <자유문학>등단
시집 <기울어짐에 대하여> 등
< 소 감 >
능소화는 꽃피우기 위해서 가죽나무를 짓밟고 온 힘으로 기어오
를 것이고 가죽나무는 능소화 넝쿨에 휘감겨 죽어가는 것은 자연
의 섭리(攝理)!
화자는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우리 인생사에 원용(援用)시키면서
오묘한 잠언(箴言)을 만들어 독자의 심상에 새겨 넣고 있는데,
가죽나무는 죽어가고 능소화는 꽃피우는 것이
'잘못된 것은 없다 시작은 사랑이었으리라' 둥
'모든 시선은 빛나는 것에 집중된다' 둥
강자의 화려함 뒤에 약자의 서글픔이 간과 된듯도 하고,
'누군가의 고통 위에 꽃은 피고, 낮과 밤을 교차시키며 지구가 돌고
어느 전생에서 나도 네가 되어 본 적 있다고, 이생에선 너를 움켜잡고
뜨겁게 살았을 뿐'
이라는 능소화의 진술에서 사물과 사물이 뒤엉킨 인연(因緣)과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輪廻)사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화자는 詩題(환하다는 것)에서 부터 가죽나무의 설음 보다는 능소화꽃의
화려함에 방점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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