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방울이 거미줄에 걸리듯 / 유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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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84회 작성일 19-11-15 03:20본문
솔방울이 거미줄에 걸리듯 / 유종인
솔방울 하나가 거미줄에 걸리듯
덩치보다 가벼운 행보,
허공에 한 번 맺혀 볼 만한
또 다른 미련이
또한 열매라서
자신을 버리려 가다가
도리어 자신을 얻는
아, 저 호젓한 얽매임
무당거미는 저 솔방울이 또한 큰 난제라서
배고픔 속에 막막한 관망,
저 골칫거리를 땅으로 내리면
거기 솔방울만한 허방,
구멍 숭숭한 비탄을 이끌고
이 가을에 솔방울만한 얽매임으로
가을 거미도 솔방울도 입이 없는 식구
가을이 물려주는 단식의 바람을 쐬다
툭, 하고
솔가리와 갈잎 위로 몸을 던지면
거미와 솔방을이 한 통속이다
솔방울이 거미에 걸리듯
못 먹을 것들이 던져주는 한 생각,
이제 생을 갈아타야할 우주의 가을,
쓸쓸하니 단단한 생각의 침 고여 오듯
* 유종인 : 1968년 인천 출생, 1996년<문예중앙>시 부문, 2003년<동아일보>신춘문예 시조 부문,
2011년<조선일보>신춘문예 미술 평론 당선, 시집 <아껴먹는 슬픔>외 다수
< 소 감 >
저승길 오르는 송장 덩이가 거미의 밥상 위에 떨어지면서
솔방울과 무당거미는 한 편의 우화(寓話) 속으로 들어간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관계(거미줄 위에 떨어진 솔방울)가 우리
인생사와 비유되면서 화자의 심상이 진지하게 펼쳐지고 있다
솔방울이야 저승 가는길 구경거리라 즐겁겠지만, 거미는 밥상
위에 떨어진 두통거리라
- 솔방울이 거미에 걸리듯
- 못 먹을 것들이 던져주는 한 생각,
식사를 굶어야 할 위기 속에 "저 골칫거리를 어찌해야 하나?"
거미는 대책을 세우고 방법을 찾기 위해 골똘히 생각하지만
뾰족한 방법 없으니 이리 끌어안고 저리 끌어안고 남녀 땐스하듯
드잡이하다 둘이서 함께 땅바닥으로 떨어지는데,
텅- 빈 거미집 구멍 사이로 찬 바람만이 지나가는 허탈함이여,
- 이제 생을 갈아 타야할 우주의 가을,
화자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휘어잡으며 멀고 먼 혼몽의 가을 속으로
둥 둥 떠나고 있다, 목마와 숙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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