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숲 / 김행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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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숲 / 김행숙
숲으로 걸어 들어거는 아이를 보고 있어
숨이 차
쫓아도 숲이 멀어지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가 멀어져
난 내내 뒷걸음질 쳤던 것처럼 멀어져
몸의 끈과 마음의 끈이
오른손으로 놀리는 인형과 왼손으로 놀리는 인형처럼
서로 다른 세계로 달리는 말대가리처럼
아이에겐 들리는 숲의 음악이 내게는 들리지 않아
아이에게 불러준 노래를 그만 잊어버렸네
숲이 멀어지고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가 더 빠르게 멀어지고
멀리 숲만 남았네
멀찍이 떨어져 배를 깔고 누운 저 짐승의 빽빽하고 검은 털
같은 숲이야
깊은 숲이 보이는 창문만 남았네
안개를 헤치고
동그란 눈동자만 남았네
눈꺼풀이 없는 눈동자만 남았네
밤새 현관문을 열어놓고서
밤낚시꾼처럼 간이의자에 앉아 다리를 달달 떨고 있어
숲이 깰까봐
숲이 우르르 일어나 아이를 물고 우리 집을 찾아올까봐
* 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사춘기>등 다수
< 소 감 >
화자는 창문을 열어놓고 멀리 안개 낀 숲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긴다
숲으로 걸어 들어가는 아이가 화자가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멀어지고
숲은 화자가 바라본 창문에서 멀찍이 배를 깔고 앉은 짐승처럼 보이고
자기를 타자로 올빼미 눈처럼 자기눈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화자는 환상에 빠진다
안개 속에 잠자고 있는 저, 짐승이 우르르 일어나 아이를 물고 집으로
찾아올까봐 겁이나는 것이다 밤새도록 떨고 있는 낚시꾼의 다리처럼
상상과 환상은 생활의 한 방편, 현실을 떠나 훨 훨 여행하는 즐거움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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