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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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8회 작성일 19-12-11 07:29본문
나비 / 김혜순
내 왼쪽 귀와 네 오른쪽 귀로 만든 나비 한 마리
두 날개가 파닥이면 맞잡은 전신으로 파문진다
환한 날개 가루들로 네 꿈을 채워줄게
네 꿈속에 내 꿈을 메아리처럼 울리게 할게
귓바퀴 속 두 소용돌이가 환하게 공명한다
어쩌면 귀먹은 사람이 잠결에 들은 것 같은
그런 편지를 내 왼쪽 귀를 다하여 쓸게
네 품속으로 들어가 혈액을 다정히 흔들어줄게
이 세상 끝까지 날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만큼
그렇게 가볍게 날개를 파닥일 수 있겠니
문드러진 꽃처럼 피어난 우리 입술의 암술 수술로
우리가 키우는 이 나비 한 마리
나중에 나중에 우리 없는 세상에 뭐가 남을까
우리 몸을 버리고 날아오를 저 나비 한 마리
우리 몸속에서 아직도 팔딱거리는 어둠처럼
아직 생기지도 않은 저 멀고먼 쌍둥이 태아처럼
두 손을 맞잡고 누운 침대 위
우리는 두 귀를 맞댄 채 생생히 썩어가네
우리 무덤 위로 바스라질 듯 두 귀를 팔딱거리는 저 나비 한 마리!
* 김혜순 : 시집 <죽음의 자서전>으로 금년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인터내셔날부분 수상
< 소 감 >
네 귀와 내 귀가 어깨동무하면 나비가 된다
네 혼자 만든 나비보다 내 혼자 만든 나비보다 더 아름다운 나비
쟁반 위 은구술 굴러가 듯 날아간다
두 날개 파닥이면 우리들 전신으로 파문지고
너의 꿈과 나의 꿈이 환하게 메아리치며 공명한다
우리가 키운 저 나비 한 마리!
나중에 나중에 우리 죽어 무덤가에 팔딱거릴 나비 한 마리
화자의 시는 언제나 아름답고 오손도손 다장함도 있다
그러나 어느새 예리한 정념이 파고들어 독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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