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열아흐레 / 최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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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19회 작성일 19-12-23 08:28본문
섣달 열아흐레
최영규
마을 앞 저수지 속 깊이
파랗게 얼어붙은 하늘
그 하늘엔 까마득히
늘어진 연줄 같은
비행운(飛行雲)을 꼬리에 달고
은박지 조각처럼 반짝이는
비행기 하나
끝도 없어 보이는 그 얼음벌판을 내달리는
아이들이 내뿜는 입김은
하얀 토막구름이 되어 흩어지고
댓돌 아래
질퍽이던 진흙 발자국 가운데
녹아 고인 물에도
투명한 겨울하늘이 담겨 있다
그렇게 마당에 가득한 하늘빛
겨울 햇살들이
꼬들꼬들
무말랭이처럼 말라가는
섣달 열아흐렛날
오후.
프로필
최영규 : 강원 강릉,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나를 오른다]외 다수
시 감상
이맘때면 시린 하늘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린다. 얼레에 감긴 실을 풀어 날리던 하늘, 라이너스의 [연]이라는 노래, 논바닥에 물을 대 꽁꽁 얼린 빙판에서 썰매를 지치다 보면, ‘00야 밥 먹어라!’ 어머니 부르는 소리, 뒤란의 소죽 끓이는 냄새, 황소울음 소리, 뭉게구름 같은 저녁밥 짓는 굴뚝, 지금은 이름도 아득한 설빔, 모두 투명한 하늘에 회상의 단편 크로키로 지나간다. 되돌아 갈 수 없는 그 먼먼 유년의 한때가 기억을 서성거린다. 섣달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가끔 뜨거운 커피 한 잔속에 달디 단 추억을 넣고 후후 불어가며 마셔보자. 가슴이 더워진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댓글목록
崇烏님의 댓글
崇烏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 하셨지요. 나이들면 뜨거운 것이 좋아! 가슴에 뜨거운 것이 밀려오고 나갈 때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하며 생각합니다. 어떤 음악을 들어도 어떤 강의를 들어도 북받혀 오르는 감동에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마음이 일 때가 있습니다. 좋은 시 한편에 되돌아보는 시간에 앞을 다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갑니다.
김부회 시인님 늘 건강하시길요....잠시 머물다 인사올립니다.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뉘신지는 모르지만....말씀이 따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말 평온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