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분에 물주기 / 이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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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51회 작성일 20-02-10 06:56본문
빈 화분에 물주기 / 이근화
어디에서 날아온 씨앗일까
누가 파 온 흙일까
마시던 물을 일없이 빈 화분에 쏟아부었더니
며칠 지나 잎이 나온다
욕 같다
너 내게 물 먹였지
그러는 것 같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볕이 잘드는 곳으로 옮겨 주었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그런데 끝까지 모르겠다
너 누구니, 아니 댁은 누구십니까
잎이 넓적하고 푸르다
꽃 같은 것도 피울 거니
그럼 정말 내게 욕하는 거야
안녕하십니까, 묻지 마 내게
당황스럽잖아 나더러 어쩌라고
계속 물을 주어야 한다
불안하면 지는 거다
그런데 더 주어야 하나 덜 주어야 하나
그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 하는 거다
너는 어디서 왔니
족보를 따지는 거다
상상하는 거다
너 아무것도 아니지
나의 몽상이구나
나란 망상이구나
죽고 없는 거구나
잘 살기란 온전하기란
불가능한 거구나
빈 화분에 물을 주며
나는 하루하루 시들어 간다
최선을 다해 말라 간다
* 이근화 : 1976년 서울 출생, 2004년 <현대문학> 등단, 2009년
제4회 윤동주문학상 외 2회 수상
< 소 감 >
조물주가 자기가 만든 인간의 탄생을 놓고 독백하는 듯 하다
한 때 아끼다 시들어버린(잊어버린) 빈 화분에서 물을 주니 생각지도 않게
싹이트는 거다
화자는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화자 특유의
장난기 비슷한 말잇기 놀이를 하고있지만 인생에 대한 심오한 철학도 숨겨져
있는듯 하다
우리 인생사와 대비된 허무와 낙담이 보이는가 하면 생멸(生滅)에 대한 궁금증도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걸까?
철학적 잠언(箴言), 불가지론(不可知論)에 의하면, 초경험(超經驗)적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이 불가능 하다는 입장이다
즉, 인간은 神을 인식할 수 없으며 또한 사물의 본질이나 궁극적 실제의 참
모습은 인간의 경험으로는 인식이 불가능 하다는 입장인데,
이 이론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나 회의론자로 올라가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으나 근세를 거치면서 스피노자(인간이 인식 할 수 있는것은 물체와
정신뿐), 데비드 흄(인간의 지식은 인상과 관념에 한정), 칸트(순수이성비판)
헉스리, 스스펜서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인도의 불교이론에까지 영향을 미쳤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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