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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풍경의 거리距離/ 거품 안의 순간. 김광희 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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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1회 작성일 20-02-1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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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풍경의 거리距離

 

-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거품 안의 순간 / 김광희

쐐기벌레 / 정연희

11층의 상상 / 정재리

 

 

새해가 시작한 지 엊그제인데 벌써 2월로 달리고 있다. 세월의 무상함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연초에 계획한 것에 대한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인 것을 보니, 매번 같은 후회와 미련이 반복되는 것 같아 스스로 안타깝기도 하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문학적으로 우수한 가치를 지닌 작품도 몇 편 보이기도 했다. 반면, 시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작품들도 많이 보였다. 물론 심사하는 분들의 기준과 시적 질감에 대한 문제로 인해 시의 방향성이 달라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기준점이 해마다 달라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시의 본질, 사물을 그 자체로 인식하는 고유의 성질을 본질이라고 한다. 그 자체라는 말, 시의 그 자체가 무엇일까? 많은 고민을 해 봐도 정형화된 답은 없다. 이 지점에서 어학사전에 등재된 시의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시는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라고 정의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함축적 언어’라는 말이다. 물론 운율은 가장 기본이라 생각하기에 논외로 한다. 어떤 뜻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말이나 글 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은 함축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정의한다면 ‘화두’ ‘선문답’ ‘시편’ ‘잠언’ 등의 예시가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시는 일정한 사실을 자세히 말하는 ‘언술 행위’와 분명 다른 점이 있다. 직접과 간접의 차이 같은, 차이점이 시와 언술의 경계를 말하는지도 모른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함축이라는 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나 사실, 상황 등을 조리 있게 설명하기 위한, 혹은 사상이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문학의 한 갈래라고 볼 때 주의나 주장을 함축하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전제를 깔아야 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언술에 그치는 언술 행위가 될 것이 자명하다. 들풀이 하나 있다고 가정한다. 들풀도 하나의 생명이라는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생각에 따라 들풀과 사람은 동의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들풀도 하나의 생명이다/라고 하는 것과 들풀은 사람이다/라고 하는 것의 차이, 하나의 생명 = 사람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 위하여 존재할 것은 생명과 사람 사이에 놓인 사고의 당위성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들풀을 생명이라고 보기까지의 과정에 과정을 덧입힌다면 생명을 함축하여 ‘사람’이라는 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파생되는 것이 사유다. 사유는 생각을 거듭하고 생각에 사상을 더하고, 철학적 의미 부여를 할 때 살아있는 사유가 될 것이다. 단순하게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이는 것에 새로운, 혹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어쩌면 함축이라는 말에 가장 어울리는 말인 것 같다.

 

다시, 시의 본질이라는 말로 돌아가 보자. 시의 본질은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가 아닌, 보이지 않는 경계 너머의 것을 경계 안으로 가져오는 행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본질에 필자는 필수적인 요소 하나를 더 하고 싶다. 울림이다. 일정한 공간 속에서 음이 발생할 때 나타나는 음파의 중첩현상을 울림이라고 한다. 시에서는 시어詩語 따위가 지니는 청각적 영상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가장 대중적인 의미는 예술 표현 따위에서 외적 자극이 마음에 닿아 감동을 일으키는 것을 비유적으로 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시 한 편을 읽고 감동을 느껴야 한다는 말이다. 구태여 정의하자면 [시 = 함축 * 울림2]이런 방정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함축을 한다면 함축을 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그 함축의 이유가 하나의 울림으로 승화된다면 가장 좋은 시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가 여러 번 바뀜에 따라 현대시의 Trend도 많이 바뀌고 있다. 요즘 비교적 젊은 문학도들은 시에서 은유, 비유, 환유, 제유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표방하는 글의 세계는 무궁무진한 상상보다는 환상이 존재한다. 상상 그 너머 존재하는 Fantasy는 시의 지평을 넓이는데 유용한 도구이며 바람직한 시의 진화과정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문학에서의 판타지는 문학의 보편적 특성 중 하나이며 상상력에 또 다른 상상력을 덧입혀 좀 더 먼 곳의 사물과 변화를 글에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 상상과 판타지가 결합하여 하나의 세계를 만들 때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생명이다. 바꿔 말하면 글에 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상상과 공상과 환상에 몰입하다 보면 정작 시의 본질은 뒷전이고 시라는 형태만 남아 있을 다소 황당한 경우도 발생할 것이다. 문제는 다시 본질이라는 말로 회귀한다. 무엇을 하든 본질을 잃는다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시에 어떤 화려한 옷을 입혀도 결국 ‘울림’이라는 기저를 상실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시’라는 장르가 아닌 전혀 다른 장르로 인식되게 될 것이기에 필자는 본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필자가 자주 듣는 질문 몇 가지가 있다. - 시에서는 과거 완료 시재를 쓰면 안 되나요? - 시에서는 노란색을 노랗다고 말하면 안 되나요? 시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묘사하면 안 되나요? 등등의 질문들이다. 질문의 요체는 [안 되나요?]라는 말이다. 된다, 안 된다의 차이. 요원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갑갑한 질문이다. 질문의 기저에 깔린 것은 자존의 결여와 부정의 인식이다. 그럴 때마다 필자의 대답은 늘 동일하다. -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됩니다. 안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누가, 언제, 왜, 어째서 이런 등등의 부정을 시에 부여한 것인지 과문한 필자는 모른다. 과거완료는 시가 안 되고, 노랑을 노랑이라 하면 유치하고 등속을 필자는 글의 한계라고 정의하고 싶다. 한계를 갖고 있는 글은 풍요롭지 않다. 풍요롭지 않다는 말은 상상력이 결여되었다는 말이며, 함축에 대한 정의를 아직 깨우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저기까지만 상상하세요 혹은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만 상상하고 정의하고 그 느낌을 글로 쓰세요 하는 말을 하는 분이 있다면 시는 정말 재미 하나도 없는 문학의 한 갈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울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이며 함축을 다만, 쪼그라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가끔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같은 길인데, 자전거를 타고 갈 때, 자동차를 운전하고 갈 때,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갈 때, 도보로 갈 때, 모두 저마다의 풍경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도보로 갈 때 볼 수 있는 풍경의 범위와 자전거, 자동차로 갈 때 볼 수 있는 풍경의 범위는 분명 다르다. 길은 같은 길인데 처해진 상황이나, 가시권의 영향, 기분 상태, 좀 더 비약하면 경제 상황, 취업 문제, 밤과 낮, 겨울과 가을... 이루 거론할 수 없는 수많은 조건에 따라 길을 다르게 보일 것이다.

길 = 시, 길 = 시의 본질이라고 가정하면 모든 가변 변수 조건들은 상상력이며 함축의 요소가 될 것이다. 가변의 조건들이 어떤 양태이든, 어떤 조건이든, 길은 길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 있어 그 길이 더 이상 길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길이 아니거나, 땅 꺼짐 현상이 발생하여 폐쇄되거나 하면, 그 길을 구성하는 풍경과 배경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다른 길이 생기거나 만들어지거나 우회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올해 당선된 신춘문예의 작품을 다시 한번 읽어보자. 때론 자전거를 타고, 때론 차량을 운전하면서, 때론 걸어가면서 그 길의 중심과 본질을 살펴보자. 과연 그 속에 울림의 풍경이 존재하는지? 어쩌면 다만, 2차선이 8차선으로 확장된 것에만 시선이 쏠려있는 것은 아닌지? 다만, 내가 눈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눌한 말이지만, 문단의 저명한 분들이 보시면 한 소리 들을 말이지만, 필자가 신춘문예를 심사한다면 그 기준을 문장과 문맥의 완성도, 철학적 사고로의 진화, 더 넓은 세계로의 진출, 근친적 비유의 적합성, 시적 질감의 깊이, 등을 모두 무시하고 ‘울림’의 크기에 방점을 두고 심사하고 싶다. 시라는 길을 도보로 걸으며 천천히 음미하다 돌아오는 길에 - 그래, 맞아 그렇게 살아야지- 하게 된다면 그것이 가장 시의 본질에 맞는 시가 될 듯하다는 것이 시에 대해 우매하고 밑천이 짧은 필자의 소견이다. Fantasy를 음악에서는 이렇게 정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작곡하는 기법. 시에서의 Fantasy는? 독자 여러분의 상식에 맡긴 판단을 존중해드린다.

 

모던 포엠 2002년 2월호 에서는 풍경의 거리距離라는 필자의 이번 달 소제목에 부합하는 세 작품을 선별하여 시인이 말하는 것에 조심스럽게 귀를 세워본다.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김광희 시인의 [거품 안의 순간]이다. 거품이 생성되는 것과 소멸하는 시간은 짧다. 불가에서 말하는 ‘찰나’와 동일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돌이켜 보면 모든 역사와 시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삶을 통칭하는 모든 것이 거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거품의 일반적인 속성은 액체나 공기 등등의 기체를 머금고 부풀어서 생긴 속이 빈 방울 같은 것을 거품이라고 한다. 또한 경제론 측면에서 거품의 속성은 본연의 크기 혹은 실체보다 부풀려 크게 보이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유년시절에 ‘공갈빵’이라는 빵을 먹은 기억이 난다. 그 크기가 커서 한 입 깨물면 속이 텅 빈, 겉만 거대한 빵. 김광희의 작품은 거품의 본질 (짧은 시간의 생성과 소멸)과 또 다른 본질 ( 속이 텅 빈)의 두 가지 사유를 한 작품 속에 넣은 듯 보인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복잡한 희언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절제된 희언을 적절하게 문맥 속에 넣어 시적 감칠맛을 준 점이 독특하게 읽힌다.

 

거품 안의 순간

 

김광희

 

너는 비누거품을 만들면서 한민족의 기원으로부터 역사 속 전쟁과 항일과

평화와 시너지 효과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역사의 시간이 우주의 시간으로 눈 깜짝하는 순간 생겼다 사라지는

비눗방울 같이 작음 거품의 시간이라고

 

망치로 못대가리 대신 손가락 쳤던 순간, 차를 들이받아 다리 부러졌던 순간,

엄마가 동생을 잃고 밤마다 어둠 속에서 눈물 찍어내던 순간 아픔이 우주의

크기보다 크고 그 순간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에 대해 말하진 않겠다

 

화장실 앞에서 다리를 꼬며 서 있었던 긴 줄서기라든가 월남전 보낸

아들을 기다리던 할머니의 밤낮은 영원 그 이상의 시간이었을 거라는 걸

알게 뭐야

 

비눗방울 안에 나를 넣고 웃는다

거품 밖에 네가 웃는다 밖이라고 네가 밖이겠니?

그대로 멈춰라, 그 순간! 사진 속 시간처럼 압정으로 콱 박아 놓을 수만

있다면 우주가 어느 벽에 콱 박히겠지?

나는 그 거품을 안고 거품은 이 순간이 영원한 나를 안고 피어오른다

너도 똑같다

 

 

전문을 읽으며 처음 시제인 거품 안의 순간을 주목하게 된다. 거품 안의 순간 속에 담겨 있는 것은 찰나라는 매우 짧은 시간이나 혹은 풍경이나 혹은 역사이거나 천문이거나 우주이거나,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그 모든 순간들은 결국 즉시 소멸되었거나 소멸될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구라는 별이 우주라는 거품 속에 있거나 우리가 모를 더 커다란 천체라는 거품 속에 우주가 존재하거나 삶의 모든, 이른바 우리가 확증이라고 믿고 있는 신념의 덩어리들 모두 거품 아닌 것이 어디 있을까? 결국 삼라만상은 무량無量이며 동시에 ‘공즉시색’이라는 거품과 거품 속에서 거품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작품 속 에피소드는 차치하고 거품이라는 이미지가 부여하는 삶에 대한 통렬한 의식의 관통이 작품을 정독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그 역사의 시간이 우주의 시간으로 눈 깜짝하는 순간 생겼다 사라지는

비눗방울 같이 작은 거품의 시간이라고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은 모두 허상이라는 어느 선사의 말씀이 기억난다.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대사처럼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것이 세상이고 삶이고 우리들이다. 그 잠깐이라는 사이에 스러질 것에 대한 미련은 왜 이리 많은지? 수많은 도전과 응전을 통해 얻은 길고 긴 역사의 산물과 땅과 땅의 경계는 무엇을 위해 영속되어 온 것인지? 시의 본문은 일상처럼 마치 아무것도 아닌 척하며 깊고 깊은 ‘찰나’라는 화두에 대해 간결하게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의 작품성은 역사에서 현실로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는 反 점층의 기법을 갖고 있다.

 

망치로 못대가리 대신 손가락 쳤던 순간, 차를 들이받아 다리 부러졌던 순간,

엄마가 동생을 잃고 밤마다 어둠 속에서 눈물 찍어내던 순간 아픔이 우주의

크기보다 크고 그 순간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에 대해 말하진 않겠다

 

일상을, 과거의 이야기들을 본문에 펼쳐놓으며 화자는 다시 우주의 시간과 거품의 소멸과 거품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해 담담하게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인 듯 화자의 철학을 펼쳐두고 독자를 유혹한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이런 점에 있다. 쉽지 않은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는 듯하면서 동시에 화자의 주제 속으로 독자를 유인하고 있다.

 

월남전 보낸

아들을 기다리던 할머니의 밤낮은 영원 그 이상의 시간이었을 거라는 걸

알게 뭐야

 

일관적으로 이야기하는 화자의 셈법은 철저한 타인이며, 삼자적 시각을 갖고 있다.

알게 뭐야 라는 말은 알게 있다는 말이며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반어적으로 주창하고 있다. 그것이 화자의 기술적 테크닉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흡인력이 있다는 것이다.

 

비눗방울 안에 나를 넣고 웃는다

거품 밖에 네가 웃는다 밖이라고 네가 밖이겠니?

 

나는 거품을 만들기도 하고 거품 속에 존재하기도 하고 거품의 밖이거나 안이거나 혹은 그 밖의 거품을 그 안의 거품으로 인식하기도 하는 현존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과 부정을 통해 결국 삶 앞에 긍정일 수밖에 없는 서글픈 자화상을 보여준다.

 

너도 똑같다

 

너도 똑같다는 결구 한 줄이 전체 시에 맥점을 짚었다. 마치 다 죽은 대마를 좌변 즈음에서 서서히 일어나 결국 불계승을 거두게 하는 기분을 느낀다. 화자는 거품에 대해 모두 이야기했다. 스스로 거품이라는 어려운 고백도 했다. 하지만 결국, 너도 거품, 나와 같은 거품 속의 시간, 거품 밖의 거품, 거품을 품은 거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심리전을 하듯, 문장에 곳곳이 심어 둔 소소한 장치로 인해 화자의 승리로 이끌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결구다. 너도 똑같다는 말은 울림이다. 거품의 사이즈나 거품의 속성이나 모두 중요한 것이 아니다. 너도 똑같다는 큰 울림 하나로 시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마치 필자에게 하는 말로 들린다면 내 귀가 거품인가?

 

두 번째 소개할 작품은 정연희 시인의 [쐐기벌레]다. 많은 벌레들 중에 하필 쐐기벌레를 선택한 시인의 심상이 궁금해졌다. 벌레보다는 쐐기에 주목해서 쐐기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 본다. 쐐기는 영어로 Wedge라고 하며 물건의 틈에 박아 쪼개거나 밀어 올리거나 죄는 데 사용하는 기구를 말한다. 동시에 두 개의 물체를 반으로 가르는 데 사용한다면 정확할 것 같다. 쐐기벌레는 쐐기나방의 애벌레, 불나방의 애벌레를 지칭한다. 이쯤 살펴보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주제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쐐기벌레에 쏘였다는 것은 몸, 관계, 사회 등속과 전반으로 나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우리 삶에서 내가 쐐기벌레이면서 동시에 쐐기벌레에 쏘이기도 하는 것을 화자는 말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문을 보자.

 

쐐기벌레

 

정연희

 

쐐기벌레의 앞이란

동종의 꽁무니라 한다

우리 동네엔 누군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다가

크게 된 인물도 있고

남자들의 변하지 않는 연예 기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쐐기벌레들에게

꽁무니란 신뢰다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보폭의 법칙 같은 것이다

 

블루베리를 따다가 복병인

쐐기벌레에 쏘이고 온 저녁

퉁퉁 부은 팔이 가라앉고

내 뒤를 졸졸 따라오기만 하는

가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또 어떤 연령과 역할과

호칭을 무작정 따라가고 있었던 것일까

 

행렬을 벗어날 수 없는 습성으로

대열을 따라가고 있었을 뿐인

내가 바로 복병이다

 

대열이란 앞과 뒤가 길다는 것

파브르가 그려놓은 둥근 대형을 이탈하지 못하고

탈진해서 죽은 쐐기벌레처럼

우리는 이 대열로, 인류 출현 이후로

집요하게 여기까지 온 것인데

무한정 맴도는 쐐기 같은 우리는

가렵고 욱신욱신하면서

때론 복병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발견으로 시작한다. 쐐기벌레의 앞 = 동종의 꽁무니 (나, 너, 우리)라는 등식을 읽힌다. 우리네 꽁무니엔 늘 언젠가 화끈하게 쏘일 수 있는 쐐기벌레가 있다. 다행히 쏘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어쩌다 쏘이기라도 하면 온 저녁 퉁퉁 팔이 붇고, 가려움에 고통스러울 것이다. 삶이란 어쩌면 쐐기벌레에게 꽁무니를 내어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쏘일 것 같은 경계심을 품고 긴장하며 산다는 것. 때론 그 긴장이 큰 인물을 만들기도 하고, 연예 박사를 만들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쐐기벌레가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쐐기벌레의 앞이란

동종의 꽁무니라 한다

우리 동네엔 누군가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다가

크게 된 인물도 있고

남자들의 변하지 않는 연예 기법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 지점에서 한 번 더 자신의 메시지에 대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의 문맥을 첨가하였다.

 

쐐기벌레들에게

꽁무니란 신뢰다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보폭의 법칙 같은 것

 

신뢰와 보폭의 법칙이라는 제법 큰 단어를 사용하여 동종의 꽁무니를 부각하는 화자의 기술적 논리력에서 단단한 문장 기법을 한 수 배운 듯하다.

 

행렬을 벗어날 수 없는 습성으로

대열을 따라가고 있었을 뿐인

내가 바로 복병이다

 

다시 삶이라는 보편적인 대오를 떠올려보자. 우리는 누구나 상대방의 등을 보거나 대열을 따라가거나 본문으로 논리대로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따라가고 있을 뿐이라는 말은 습성일 수도 있지만 본능일 수도 있다. 또한 아무 생각 없이라는 말과도 유의미한 법칙을 갖고 있다. 유의미한 법칙이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생존이라는 원관념에 대한 변증이다. 살아내기라는 말과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내기는 수동태다. 하지만 수동태가 반드시 의존적 + 아무 생각 없이라는 등식은 아닐 것이다. 최소한 쐐기벌레에 쏘이기 전 까지는. 내가 바로 복병이 되기 바로 전 까지는.

 

파브르가 그려놓은 둥근 대형을 이탈하지 못하고

탈진해서 죽은 쐐기벌레처럼

 

자신의 문장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탈진해서 죽은 쐐기벌레를 거론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탈진의 원인은 본능적인 대열에서, 대열을 따라가다, 대열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쐐기벌레에게 꽁무니를 쏘이거나, 앞의 꽁무니를 쏘거나 우린 모두 무한정 맴도는 쐐기 같은 우리라는 것을 화자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대열이란 앞과 뒤가 길다는 것

 

동 작품의 울림은 위 문장에 있다. 길다는 것은 메뷔우스의 띠를 연상하게 만든다. 꼬리 물기 무한정 물고 물리는 무한 수렴의 법칙 같은 것이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깜박 잊게 되는 말이다.

 

가렵고 욱신욱신하면서

때론 복병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묘사가 선뜻하다. 쐐기에서 출발한 주제가 쐐기로 다시 돌아오는 방식의 글이 유쾌하다. 마치 시는 이렇게 풀어가는 것이 정답이라는 느낌을 주는 좋은 작품이다.

 

마지막 소개할 작품은 정재리 시인의 [11층의 상상]이다. 작품은 스냅사진을 촬영하듯 부분 부분 일상의 단면을 조리개에 놓고 한 컷 한 컷 찍힌 사진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으로 읽힌다. 대화 혹은 독백조로 에피소드의 전개보다는 에피소드가 갖고 있는 별개의 에피소드에 대한 느낌을 차분하게 정리한 점이 독특하게 읽힌다. 어느 날의 일상은 가끔 일상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그 일상이 갖고 있는 무취의 향기와 향기의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근원에 대한 질문의 답은 늘 근원이 아닌 곳에 있다는 것을 작품은 말하고 있다.

 

11층의 상상

 

정재리

 

사무실로 놀러 오지, 그가 말했다

 

머뭇거리며 한 계단 더

끝을 딛고 오르는 가는 발목들

미끄러우니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사무실은 엘리베이터와 화장실, 후원 신청서, 공정무역 커피와 책들

실물과 다른 사진들로 붐비는 곳

창가에 서면 아래로 눈이 가는 높이

 

옆 건물은 오래 빈집이야 시든 남천 화분이 사슴뿔 같지

스치듯 애매한 백허그는 나쁘지 않겠지

 

옥상에도 가볼까 우리, 그가 말했다

 

옥상은 바닥이면서 공중이면서

바람의 성분으로

 

불꽃의 목표는 맨 위

아무것도 태우지 않은 채

 

헬리콥터가 한바탕 지나간 뒤

발목들은 산산조각 흩어져

 

지붕과 옥상은 어떻게 다른 걸까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혼자 몇 시간째 궁리하는 사람이 있다

 

실물과 다른 사진들로 붐비는 곳이라는 부분이 눈에 쓰윽 들어온다. 간혹 사진을 찍어보면 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은 사진과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 주관과 객관의 차이 같은 것에서 비롯되는 피사체에 대한 의구심. 내가 보는 나의 일상과 내 밖에서 내 눈에 보이는 나의 일상은 간극은 끝내 옥상 = 바닥 = 공중이라는 像으로 귀결된다. 그 상의 원류는 분명 일상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어느새 초점이 정리된 像의 무게는 때론 진실에 가까운 허상일 수 있다는 것을 화자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화자의 심상에 대한 심증을 엿볼 수 있는 몇 단어를 정리해 본다.

 

㉠ 머뭇거리며 한 계단 더

㉡ 실물과 다른 사진들로 붐비는 곳

㉢ 옆 건물은 오래 빈집이야

㉣ 옥상은 바닥이면서 공중이면서

바람의 성분으로

㉤ 불꽃의 목표는 맨 위

㉥ 발목들은 산산조각 흩어져

 

위 본문에서 인용한 부분들이 본문에 놓여 있는 제 각각의 위치에서 어떤 상호 작용을 하는지 독자 입장에서 퍼즐의 조각들을 맞추듯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시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명징하게 드러날 것이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시를 읽는 정확한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붕과 옥상은 어떻게 다른 걸까

 

지하주차장 차 안에서 혼자 몇 시간째 궁리하는 사람이 있다

 

지붕과 옥상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장소는 우연하게도 지하주차장 차 안이다. 지붕과 옥상과 지하주차장이 서로 맞물려 시적 환기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소품으로 등장한 헬리콥터 역시 일종의 카메오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시의 전반에 걸쳐 삶과 삶의 관계에 대한 다소 색다른 시선의 방향성을 같이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미려한 구성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울림을 강하게 주는 문장을 아래 인용해 본다.

 

불꽃의 목표는 맨 위

아무것도 태우지 않은 채

 

불꽃에 대입되는 것을 삶에 대한 방향성이라고 치환하면 불꽃의 울림이 매우 크다는 점을 알게 된다. 

 

한 해가 시작하고 2월이다. 1월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내년에 오는 1월은 새로운 1월이다. 시를 쓴다는 것이 한 해 한 해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하지만 결국 시의 종착역은 나를 위한 힐링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시를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매일 다시는 안 쓰겠다는 다짐을 하며, 그 다짐조차 시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을 가진 사람이 시인이라는 직업인가 보다.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나를 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아니면 삶의 풍경을 재빠르게 스쳐 지나고 있는지?

경자년 한 해, 독자 제위의 건강을 기원하며 맺는다.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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