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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2020년도 신춘문예당선 시 작품에 대한 소고小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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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950회 작성일 20-02-14 08:43

본문

2020년도 신춘문예당선 시 작품에 대한 소고小考

----시인 유창섭 [() 월간모던포엠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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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말씀>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1년간 모던포엠에 연재해 왔던 신춘문예감상과 평설 2019년으로 마감하려 하였으나 독자들에 대한 예고도 없이 시 평설을 중단한다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모던포엠> 발행인의 권고에 따라 금년(2020)까지 12년간의 시평설을 마감하기로 예고를 드리게 되었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간 이렇게라도 전체를 통과하는 시적 흐름을 전달해 주는 일이 <월간모던포엠>의 독자들께 다소라도 도움이 되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눈도 침침하고 귀도 어두워져서 모든 사물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하기에는 노쇠했다는 판단에서, 그 동안 어렵게 준비해온 신춘문예 당선작들에 대한 내면을 들여다보며 나름대로 정리하려 했던 시에 대한 소임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그 동안 부족한 시적 판단을 감싸 안아 주시고 읽어 주신 독자들께 심심한 사의를 표하며 앞으로 더욱 문학의 발전과 시적성취를 기원하며 인사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시인 유창섭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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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들여다보기

 

신춘문예란 일간신문사에서 새해의 문예 당선자를 뽑는 큰 행사로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작가로 등용하는 통로이기도 하고 목표이며 꿈이기도 하다.

이러한 욕구가 만들어낸 신춘문예제도를 통하여 시인으로 등단하려는 문학지망생에게는 신춘문예제도가 가지는 소수의 특정 명예를 부여받는다는 점에서, 어쩌면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를 빼닮은 신춘문예제도는 커다란 선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춘문예제도 출발점에 대하여 이형권 교수의 요약을 인용하여 본다.

등단 제도는 우리나라 현대 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등단 제도의 꽃으로 불리는 신춘문예는 실제로는 1914년 말 일제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에서 '신년 문예모집' 공고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15년에 첫 당선자가 나온 이후 신춘문예는 다른 신문들로 확대되어 나갔다. 1925년 동아일보, 1928년 조선일보가 작품 공모를 시작하면서 '신춘문예'가 등단 제도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현재 신춘문예를 시행하는 신문사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문화일보, 세계일보, 서울신문, 부산일보, 대전일보 등이다. 다만 한겨레신문은 시행하고 있지 않다.”(출처 : 대전일보 기사 대일논단(이형권 교수/문학평론가 ; 20180920) 중에서 )

 

참고로 신춘문예제도는 개선되어야 한다“(민병기(창원대 교수))의 논문 중에서 인용한 내용을 살펴보자.

 

[신춘문예를 말한다](신춘문예 "89당선 작품집, 도서출판 예하, 1989)란 글이다. 이 글은 좌담회 기록문인데, 참석자가 모두 문화부 기자들이란 점에서 주목하게 된다. 경향·서울·조선·중앙·한국의 신춘문예 담당 기자와 이 제도에 비판적인 글을 발표했던 한겨레 기자(조선희)가 참석했다. 김훈 기자를 비롯한 그들은 모두 실무 경험을 토대로 이 제도 전반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솔직히 털어 놓았다. 그들이 말하는 <신춘문예 운영상의 문제점>을 다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심사의 불공정성 문제--젊은 세대의 시를 심사하기엔 원로 문인은 적합하지 않으니, 본심 위원의 연령을 낮추어 선정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본심을 없애든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짧은 기간에 심사를 종료해야 하는 促迫性의 문제--예심이 끝난 뒤에 본심이 있다. 예심은 시간이 부족하여 철야를 한다. 그래도 작품을 다 읽지 못하여, 그 일부분만 읽고 작품 심사를 하는 촉박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4곳의 심사를 겹치기로 맡는다는 사실,  4 신문사가 한 사람에게 중복으로 심사를 맡긴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셋째, 당선작에 공통된 유행성의 문제--응모자들이 지나치게 당선에만 연연하여, 좋은 작품보다는 당선작을 만들려고 하는 지나친 의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신춘문예 특유의 스타일이 암암리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넷째, 당선자들의 작가적 단명성 문제--당선 이후에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신문사가 작가를 배출은 해놓고 키우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과거 11년간의 신춘문예 평설(모던포엠)에서 필자가 계속적으로 다루어온 문제들이었다.

금년에는 전과 다르게 비교적 많은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총 27개 신춘문예당선 시 작품을 중심으로 시적 성취를 살펴보고, 그와 동시에 2009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월간 모던 포엠에 연재해 온 신춘문예 시 작품”--그 양이 방대하여 전체를 드러내기에는 어렵겠지만--의 전반적인 변화양상이나 그 구체적 흐름을 살펴보며 11년간 언급된 시적 내용적 모습을 개괄적으로 정리하여 앞으로의 시적 발전이나 변화를 가늠하여 보려 한다.

물론 그 방대한 시나 그 내용을 모두 꺼내어 전개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므로 중요한 변화양상이나 흐름을 이번 기회에 전체적으로 요약하여 살펴보는 기회로 삼는 것이 참고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 중에는 매년 반복되는 형식과 내용들이 논의의 대상이 된 적이 많다. 그러나 그 부분을 요약하여 정리해 보면 그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우리 현대시의 모습이 어렴풋하게라도 형상화되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1. 신춘문예제도 속에서 탄생하고 있는 시의 위의威儀

--- 2009년부터 2019년에 이르기까지 변화되고 있는 현대시의 모습들

 

하나의 문학적 변화를 단 1년에 일어나는 변화로는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과거 11년간에 변화된 모습을 점검하여 보는 일은 그 10여년간에 서서히 물길을 틀며 지나간 흐름을 보는 일과도 비슷해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1년간의 변화는 다음의 10여년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모던포엠에 발표한 11년간의 변화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일은 그러한 경향을 커다란 의식의 흐름으로 개관槪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1) 시의 형식에서의 변화

지난 시기의 시적 형식은 그 이전에도 지속되던 산문시의 형식이 계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 200년대에 들어와서도 산문시의 비중이 높은 경향을 보였지만 점차 그 비중이 낮아지다가 다시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산문시 / 수집된 당선시) ; %는 산문시의 비율

2009-6/16(25%), 2010-7/17(41%), 2011-4/19(21%), 201-4/19(21%), 2013-4/26(15%), 2014-5/20(25%), 2015-4/25(16%), 2016-4/21(16%), 2017-9/26(35%), 2018-11/24(45%), 2019-9/24(37%), 2020-12/27(44%)

더 주의 깊게 들여다 볼 사항은 산문시의 비중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시가 산문화되어 시의 행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신춘문예 당선작품에서도 하나의 사상과 이미지가 매듭을 만들고 뭉쳐지는 연을 나누는 의도가 사라지고, 연을 나눔이 없이 행을 이어쓰기 형태로 붙여서 개별적인 정서를 분할하여 속도감있게 읽히도록 하는 붙여쓰기나, 행을 짧게 가르는 음보에 따른 분할을 건너뛰어 긴 호흡으로 길게 늘여쓰는 형태로 행을 늘이는 방법은 이미 하나의 안정된 창작 기법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 보인다.

 

 

2) 시의 내용에서의 변화

앞의 산문화 경향이라는 지적에서 보듯, 시의 행이 길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편 시가 장문화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내용적인 변화는 과거의 압축이라는 정서적 감춤에서 정서적 드러냄의 내용적 변화를 촉진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과거 11년간 이러한 내용적 변주는 각각의 행에 은유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형식으로의 변화를 이루는 형태로 진화하여 고착화되고 있다는 해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적 정서를 드러냄에 있어서 낯설게 하기의 한 방편으로 표현기교가 필요하지만 표현기교가 마치 본질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라고 하기 어렵다.

여기에 지독한 표현기교에 의한 서술의 범람이 마치 새로움의 극치인양 받아들여 심사위원들조차 그러한 경향에 감탄하고 그러한 시가 돋보이는 시로 평가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한 때 환상성, 엽기성, 애매성으로 치장된 난해시들이 난무한 적이 있었지만 그러한 실험정신에 기댄 시적경향은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어느 정도의 그런 실험정신을 가진 시들의 존재도 필요한 만큼 주의를 끌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실험적 태도에 입각한 실험시는 시적 실험과 서정성의 확장이라는 양상으로 실험-->투영-->확장이라는 선순환이 정착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덧붙여 창조문학신문에서 박인과 교수(시인)이 지적한 시인들에 대한 전반적 수준의 문제제기---특히 맞춤법의 오류가 많은 시에 대한 문제제기---를 연상케 하는 시인들의 시적 자세를 언급하고 있는 대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외국어의 범람도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말과 글을 잘 다듬고 발전시켜야할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는 시인들이 맞춤법이나 문법적 오류를 자주 저지르는 데에 대한 반성보다는 시 속에서 외국어를 쓰는 현상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은 언짢다. 정권이 바뀌고 나서 이명박 정권 이후로 우리나라 아파트들의 이름이나, 거리의 간판이나, 각 도시의 상징적 문구에서도, 시의 제목에서도 외국어가 난무하고 있다. 꼭 그러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지금은 다소 줄었지만 2007년에는 신춘문예 당선작품 시에 5편이나 등장한 사례--조선일보(트레이싱 페이퍼/김윤이), 매일신문(스트랜딩 증후군/김초영), 한국일보(엘리펀트 맹/이용임), 국제신문(타임캡슐에 저장한 나쁜 이야기 하나/정태화), 창조문학신문(지하절-버전 ; 성적 판타지아/고기리)--가 있었다.

지금도 매년 외국어를 중심으로 한--그 의미를 쉽게 알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제목으로 선정된 한 두 편의 시가 당선작에 뽑히는 일은 줄지 않고 있다.

 

3) 신춘문예제도의 근본적 문제로 인식되어온 심사위원들의 교체

앞에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심사위원들의 교체--원로 시인들이 심사위원을 수 십 년간의 독점해 온 점, 여러 신문사의 신춘문예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점--문제에 대하여 11년간 외쳐왔지만 아직도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그러나 11년간 다수의 심사위원들이 젊은 세대로 교체되는 변화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은 다소 희망을 가지게 한다. 다만 새로 등장한 심사위원들의 장기집권도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4) 시대를 통과하는 화두의 변화들

시는 갈수록 모호성이 두드러지는 부정적 특성을 지닌다. 주체에서 일탈된 추상과 관념의 언어유희가 지나쳐 소통의 길이 꽉 막혀 있다. 언어와 언어의 시적 관계가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도대체 무엇을 왜 이야기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동안 한국 시단은 뒤틀린 추상과 관념의 언어로 구축된 불통의 시를 새로움이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관용하거나 방치해왔다.

행과 연 구분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필연성이 결여된 산문 형태의 시와 관념적 불통의 시가 한국 현대시의 미래라고 여기는 인식이 팽배해 있는 오늘의 현상은 한국 현대시가 어떤 한계에 다다른 부정적 현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조선일보/정호승.문정희)는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신춘의 경향성을 지나치게 의식한 작품들, 대체로는 산문시가 적지 않았다.

리듬감을 무시하거나, 현란하고 모호한 언어의 기교로 내면의 고백에 치중하고 있는 것도 거슬렸다. 간혹 내용이 허술한 경우, 정작 시가 지녀야 할 응축과 긴장성 등의 요소를 담보하지 못하거나, 내용이 있어도 감정의 과잉, 단순 발상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었다.”(한라일보/김병택.허영선)의 지적도 음미할 만하며 과거 시적 현상을 통과하는 중심적 과제였다고 할 수 있겠다.

 

5) 시적 문체와 내면적인 정서적 발화의 변모

시적정서를 공유하려는 노력에 관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음을 지나쳐서는 안되겠다.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도 그 유효한 흐름을 요약한 측면도 살펴보면,

1)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따스한 시

2) 사회체계나 윤리도덕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작고 소박한 인간적 진실과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시

3) 활달하며 선명하고 명랑한 감성을 보여주는 시

4) 심상의 미묘한 변화를 잘 포착한 시, 존재하는 소재와 상상들을 순발력 있게 포착한 시

5) 다면적으로 시적 사유를 개진하는 힘과 여러 겹의 의미로 변주하는 솜씨

6) 삶의 비의를 읽어 내는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시적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사유의 깊이가 돋보이는 시

7) 감각적이고 유려한 표현의 문체

8) 상상력의 전복과 역설적 묘미를 터득하고 있는 시

9) 피폐화되어 가는 현실에 인식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역동성이 있고 의욕이 넘치는 시도 있었다는 것을 정리한 부분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6) 신춘문예제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소재의 빈곤

2012년에는 골목에 갇혀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십 수 년 동안 신춘문예에서 울궈먹은 낯익은 소재로 구두 구름같은 소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2013년에도 예외없이 구두”(강지혜/경제신춘문예)가 등장하고 있으며, “구름을 소재로 한시 역시 그러한 이미지들의 결합이나 이미지의 유통에 대한 혐의를 받을 수 있는 소재로 보인다.

이미 2007년에는 구름에 대한 몇 가지 오해“(김륭/문화일보)가 당선된 적이 있고, 2009년에는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최정아/매일신문), 2010년에는 쇠유리새 구름을 요리하다”(심명수/부산일보) 구름의 화법“(하기정/영남일보) 두 편이 당선작이 된 적도 있을 만큼 이미 많이 다루어 온 낡은 소재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이나 시 창작 활동에서 유통된 이미지의 결합을 의심받을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 같다.

2013년에도 유사한 소재를 다룬 시가 등장한 것이 있는데 몽골의 유목민 생활을 시화한 내용으로 2011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김지혜/국제신문)에서 보이는 바람 게르라는 이미지가 2013년에 다시 떠도는 지붕”(장유정/경인일보)로 다시 살아나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유사 이미지 표절이나 소재라는 혐의를 피해갈 수 있을까?

이미 2010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나타나던 단골 소재가 골목이라는 소재다.

골목 안으로 열리는 봄날의 동화(정원/경상일보/2009)’, ‘골목의 각질(강윤미/문화일보/2010), ’오래된 골목(장정희/전북일보/2011)‘, '골목(한국문학방송/2012) , ’2020년에도 해묵은 소재 골목이 다시 등장하였는데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 작품이 있었다.

2015년에도 어김없이 신발을 주제로 한 시---‘오래된 신발(고창남/한라일보)’, ‘신발(박진이/영남일보)’---가 등장하였다. 소재의 빈곤이거나 시창작 과정 등에서 함께 이미지를 다뤄온 혐의가 짙다.

어쩌면 같은 지도 시인의 지도를 받은 시인들의 작품이 어떤 혜택을 받아 당선작이 된 것이 아닐까?하는 합리적이고 불편한 의구심 때문이다.

2018년에도 경인일보와 광주일보의 시에 같은 소재들이 등장하여 눈길을 끌었다.

소재의 이미지는 몇 해 전 2015 9 2 시리아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건너던 3 살배기 시리아난민 어린이(아일란 쿠르디)의 곤히 자는 듯 엎드린 채 죽은 모습이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발견되어 마음을 울렸던 사진 한 장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경인일보 작품이나 아래에 나오는 광주일보 작품에서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건 다만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음모와도 같은 불편함을 지우기 어렵다.

위의 예에서처럼 2018년 광주일보 당선시 물의 악공들에서도 시리아 난민의 모습이 떠오른다.

조문’(영남일보) 첫차‘(광남일보)와 소재에서도 조문이라는 유사성이 보였다.

이러한 소재의 편중은 습작 경험을 나눈 사람들에게만 한정되어 그 평가(당선)를 받게 된다는 데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7) 신춘문예제도에서 일어난 표절의 문제

2003년 동아일보 문학평론 부문에선 전체적인 논지는 새롭지만 부분적으로 인용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유로 취소된 적이 있었다.

유사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표절에 관한 시비는 오래전 동방문학에서 제시한 이시환 시인.평론가가 조선일보 당선작(2005) “소백산엔 사과가 많다”(김승해)는 시에 대한 표절 논란---서지월 시인의 진달래 산천을 표절한 것 이라는 주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3년에는 삼거리 점방”(김승필/광주일보)이 표절 시비로 당선을 취소된 바 있으며, 이 작품은 이덕규 시인의 논두렁 작품 표절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2019년 세계일보(역대 가장 작은 별이 뜨다/박신우)의 경우도 표절문제로 당선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표절이나 이미지 모방은 신춘문예를 목표로 공부하는 모임이나, ‘시 창작 주제를 주어 창작합평을 하는 대학의 교육방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으리라는 혐의에 대한 짐작이 어렵지 않다.

참고로 이번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품 중에서도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의 작품이 함께 시 창작 공부를 하던 습작생의 시를 많은 부분에서 표절한 흔적이 발견되어 당선이 취소 되었다.

 

2. 금년도 신춘문예 당선작품에 대한 경향과 조감鳥瞰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견해는 시를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많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어찌 보면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도 있는 질문일 수도 있다.

언젠가 공석에서나 사석에서 만난 백운복 교수(서원대)와 필자는 시에는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러므로 시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시는 비시非詩일 터이다.

시인들이 쓴 시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자기가 쓴 시에 얼마나 감동을 느끼고 있을까?

자신도 감동하지 못하는 시를 쓰고 그 시를 읽고 독자들에게 감동해 달라고 한다면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러므로 감동이란 시의 요체다.

감동이란 마음에 느끼어 일어나는 급격한 정신의 흥분, 또는 그것을 느낌.”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니까 시를 읽으면 어떤 형태로든 마음에 움직임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가 없다.

이번에도 신춘문예당선 시를 받아들고 필자 자신부터 얼마나 감동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1) 전반적 인상 ; 금년도의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은 전반적으로 평년작 수준을 뛰어넘지는 못했다는 인상이 짙다.

몇 편의 시에서 새로운 발상전환이나 시적정서의 발현이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평범함을 뛰어넘기 위하여 도입한 상징을 비틀어 왜곡하여 난해함에 다가서려는 시도 산견散見되었다.

게다가 낯설게 하기를 위해서 인지 쓸데없이 행이 길어지고 장황하다는 점이 두드러지고 있다.

2) 시재詩材의 문제 ; 오래전부터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해묵은 과거의 시재詩材--2000년대에 유행되던 구두(신발), 구름, 골목 등과 같은 시 창작 단골 詩材--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2011년에도 전북일보 당선작(오래된 골목/장정희)이 있었는데, 또 다시2020년에는 전북일보 당선작(골목의 번식/ 김은숙)이 당선작으로 선정된 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었기 때문일까.

이 원고를 작성 중에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품 중에서도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의 작품이 함께 시 창작 공부를 하던 습작생의 비닐봉지의 원죄라는 시 중에서 많은 부분 표절한 흔적이 발견되어 당선이 취소 되었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이를 참고하기 위해 본고에서는 함께 실어 두기로 하였음을 밝힌다.

3) 난독難讀의 문제 ; 굳이 실험적 난해함으로 무장한 시를 볼 수는 없었어도 부분적으로 자주 끼어들었던 난해함을 흉내내어 난독을 요하는 작품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4) 언어의 유희 ; 덧붙여 금년에는 시적 이미지의 확장이라는 미명아래 언어적 유희를 동반한 시들이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동음이의어나 동음에 웃음이나 울음을 덧씌운 시적 유희 같은 것들 말이다.

 

이제,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신문사의 심사위원들이 말하는 이 시대의 시에 요청되는 시적 몇 가지의 착안점을 요약하여 보았다. 작품을 쓰는 시인들에게는 참고가 될 만한 의견임으로 그 요약한 부분을 덧붙여 둔다.

 

(*) 각신문사 심사위원의 심사평 요약 중에서---

 

강원일보 ; 대체적으로 해석되고 존재하는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

 

경남신문 ; 기본적인 맞춤법을 지키지 않거나 주술관계가 어긋나는 경우, 거듭해서 흡사한 사유를 풀어놓거나 작품마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어휘로 진행되는 경우--제외시킴

 

경상일보 ; 새롭고 참신하고 실험적이라는 미명 아래 다다이즘(Dadaism)의 시, 시적 변용이 지나쳐 모호하거나 난센스적인 시, 꺾고 비틀어 그로테스크한 시들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나서게 되었다.

 

경인일보 ; 시적 모험은 광기에서 오는 것이고 광기는 쾌락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나치게 안정적인 음역과 음색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식의 깊이가 깊어진 것도 아니었다. 역사적인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시대정신을 추구하거나 사회의 병리현상을 들여다보거나 소외계층을 연민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이 적었다.

 

경향신문 ; 한국 시에 부족한, 비어 있는 감각을 채워줄 만한 작품을 눈여겨보자는 것

 

광남일보 ; 철이 덜 든 언어의 맛, 그리고 사유와 다양한 시적 구사를 적용해 보려는 노력

 

국제신문 ; 첫째, 참신함이다.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의 원형을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함이 있는가를 살폈다. 둘째는 정확함이다. 소통을 위해서도 공감을 위해서도 어설픈 시적 허용에 기대기보다 정확하게 문장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가를 함께 살폈다. 마지막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발견하는 시의 눈을 갖추고 있는가를 살폈다.

 

무등일보 ; 어디서 읽은 발상과 소재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신진시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 주목되는 현상은 내면의식을 서사화 하는 산문적 경향이다.

...... 무엇보다도 언어를 끌고 가는 힘이 부쳐 호흡이 끊기거나 상상력이 빚어내는 언어의 탄력성을 갖춘 작품이 드물었다.

 

세계일보 ; 작품의 소재는 일상적인 삶의 체험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 길이도 상대적으로 길었다. 압축과 긴장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상당수 있었다. 실험적인 시편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엇비슷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일상에의 침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남일보 ; 개인의 고독과 상처, 상실과 죽음이야 시의 오랜 주제이지만, 올해 투고작들에서는 유난히 어떤 활력이나 전망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전남매일신문 ; 지로 쓴 시, 형식만 시인 시, 엄살과 과장이 넘치는 시, 시적 자유란 이름으로 비문을 마구 늘어놓은 시, 밋밋한 문장을 행만 갈라놓은 시 등이 먼저 상자를 떠났다.

 

전북일보 ; 들인 흔적이 역설적으로 기성품을 보는 것처럼 익숙했고 개성이 없었다. 기존의 시 미학에 갇혀 안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는 결코 신인이 될 수 없다.

....... 올 한 해 국내외에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들이 있었음에도 그러한 곳에 눈길을 보낸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적 충동과 사유에 충실한 작품도 고르기 어려웠다. 이상하다싶을 정도로 개인 서사에 집중하는 시들이 많았는데, 미시적인 시·공간 속에서 사소하다 싶은 세목들을 짚어내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이런 시들을 읽으며 우선 논의한 내용은 시의 소통 가능성이었다. 요설에 가까운 언어 비틀기나 이미지 왜곡 등이 지적되었고, 익숙한 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나열하는 무딘 언어 감각도 건강하게 소통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한라일보 ; 합당한 길이에 반해 너무 긴 것들이 많았다. 표현하려는 내용에 걸맞은 길이가 아니라 신춘문예를 의식해서인지 길게 잡아 늘려 집중력과 긴장감이 떨어지곤 했다.

 

위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살펴보았으며 이에 따라 종합해 보면 전반적으로 요설이나 언어의 비틀기 현상도 자주 목도되는 금년도의 신춘문예 작품은 대체로 일상적인 삶의 체험이 주종을 이루었고 꼭 그렇게 써야할 당위도 없는데 그 길이도 상대적으로 긴 시들이 범람했다는 생각이다.

어설픈 시적 허용에 기대기보다 정확하게 문장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국제신문)는 지적도 따끔하다.

역사적인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시대정신을 추구하거나 사회의 병리현상을 들여다보거나 소외계층을 연민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이 적었다.(경인일보)

이상하다싶을 정도로 개인 서사에 집중하는 시들이 많았는데, 미시적인 시·공간 속에서 사소하다 싶은 세목들을 짚어내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전북일보)는 지적도 경청할 만한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위의 의견을 종합하면 금년도의 신춘문예 작품들도 그러한 범주에 들어가 있는 작품들이 보인다.

당연한 일이면서도 맞춤법에 맞지 않거나 지나치게 의미없는 반복이 심한 경우도 보인다.

참신하고 실험적이라는 미명아래 시적변용이 지나쳐 모호하거나 난센스적인 시, 자기 세계에 안주하여 내면의 풍경이나 내면의식을 서사화하는 산문적 경향이 보인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병리형상을 들여다보거나 소외계층을 연민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이 적었다. 요설에 가까운 언어 비틀기나 이미지 왜곡 등이 끼어들었고 익숙한 것들을 익숙한 방식으로 나열하는 현상도 보였다.

신춘문예를 의식해서인지 합당한 길이에 반해 길게 늘여 쓰는 경향도 있었고, 압축과 긴장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다는 지적은 금년뿐만 아니라 시 작품이라면 언제나 유효하다.

 

3. 2020년도 신춘문예당선 시 읽어보기

 

이번에도 전과 같이 각 신춘문예 작품에서 드러낸 심사위원들의 심사의견을 요점만 간략하게 발췌하여 당선작품과 함께 실어 놓았다.

당선 작품의 시를 읽는 사람에게 그 시는 동일한 반응이나 동일한 해석을 하게 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그 상상력의 확장이나 해석에는 개성적, 혹은 개인적 편차가 있을 수 있으므로 감상 추가에서는 보다 더 상세하게 많은 심상적 요인을 분석하여 세밀한 관찰을 덧붙였으면 좋겠지만 간단하게 독자들의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필자 임의의 감상을 추가하여 정리하여 두었음을 첨언한다.

 

 

<강원일보 / 2020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문자와 사랑 / 박성민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소양강 돌다리까지 달렸다

강변에 먼저 와 있던 문자는 조용히 앉아

막 피어난 안개로 손을 씻고 있었다

나는 물풀처럼 흔들리며

흐르는 물살이 입은 햇살이 부러웠다

강 건너 우두동의 저녁을 향해

문자는 어른처럼 익숙한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게 잠긴 목소리로

처음 `그대'라고 불러 보았다

저녁 강이 비치는 하늘은 깊은 분지를 향해 흘러갔다

나는 역 광장에서 서성이며 미군부대 헬기가 뜨기를 기다렸다

담 밖 꽃 진 나무들이 어떻게 바람소리를 내는지 궁금했지만

서울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기적소리 길게 레일을 벗어날 때

검은 안개 본 적 있니? 미군부대 녹슨 철조망에 기대어

헝클어진 머리 문자는 짓궂게 웃기만 했다

​​

 

[심사평]

오늘 날 생활양식 서정적으로 반영 인상 깊어

........ 대체적으로 해석되고 존재하는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 최종으로 오늘날 생활양식을 잘 반영한 `문자와의 사랑'을 당선작으로 뽑는.........

(심사위원 : 이영춘 시인 · 이상국 시인)

 

감상 추가 ; “문자文字 문자文子(여성적 이름)“으로 확장하여 읽을 수 있는 이미지를 복합적으로 드러낸 이 시는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문화에 익숙한 시대적 형상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사랑과 관념적 사물에 대한 정서적 해석을 통해 소통하려는 의도를 가진 시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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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래 해체사 / 박위훈

 

 

만년의 잠영을 끝낸 밍크고래가

구룡포 부둣가에 누워있다

 

바위판화 속 바래어가는 이름이나

호기심으로 부두를 들었다 놓던 칼잡이의 춤사위이거나

잊혀지는 일만큼 쓸쓸한 것은 없다

허연 배를 드러낸 저 바다 한 채,

숨구멍이 표적이 되었거나

날짜변경선의 시차를 오독했을지도 모를 일

고래좌에 오르지 못한 고래의 눈이

칼잡이의 퀭한 눈을 닮았다

피 맛 대신 녹으로 연명하던 칼이

주검의 피비린내를 잘게 토막 낼 때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

조문은 한 점 고깃덩이나 원할 뿐

고래의 실직이나 사인(死因)은 외면했다

주검을 주검으로만 해석했기에 버텨온 날들이

상처의 내성처럼 가뭇없다

바다가 고래의 난 자리를 소금기로 채울 동안

고래좌는 내내 환상통을 앓는다

 

테트라포드의 느린 시간을 낚는다

주검의 공범인 폐그물도 인연이라고

수장된 꿈과 비명 몇 숨 그물에서 떼어내자

반짝, 고래좌에 별 하나 돋는다

 

바다의 정수리

늙은 고래의 흐린 동공에 맺힌 달,

조등이다

 

박위훈 1964년 출생 김포문예대학 13-15기 수료 반딧불이 동인

 

 

 

[심사평]

사고의 전개·대상 응시하는 태도 자연스러워

 

.......  기본적인 맞춤법을 지키지 않거나 주술관계가 어긋나는 경우에는 논의의 대상에 올려두기가 어려웠다. 또한 한 편의 시를 잘 빚어낸다고 해도 거듭해서 흡사한 사유를 풀어놓거나 작품마다 반복되는 이미지와 어휘로 진행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  박위훈의 고래 해체사  2....... 사고의 전개와 대상을 응시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웠고 타자와의 접촉에 있어 대범한 기질이 돋보였다. 한 고래의 주검을 통해 동해를 통째로 발라놓을 것 같았다는 감정은 귀하다. 버틀러는 애도는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슬픔에 잠겨 슬픔이 내가 되게 하는 거라고 했다. 이 세계에서 떠밀려지는 존재들과 접촉하며 상처받고 통제할 수 없이 슬퍼하는 자가 시인이 아닐까?

(심사위원 ; 김이듬, 배한봉)

 

감상 추가 ; 고래의 주검을 발라내어 판매하기 위해 고래를 해체하는 작업을 보는 연민과 그 상상력이 드러난 시로 읽힌다. 그 속엔 죽음에 이르게 했을지도 모를 인간의 횡포의 상징인 폐그물을 기술함으로서 환경문제로 연결될 수도 있는 인간의 횡포에 대한 연민과 애도를 그려내었다.

고래가 죽으면 고래좌의 별자리가 되는 것일까? 거대한 바다의 왕, 고래에 대한 인간적인 슬픔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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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거름 / 이정희

 

 

늘그막의 아버지

벗어놓은 양말이며 옷가지에서

거름냄새가 났다

그건 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를 포기하는 냄새였을까

그 옛날 장화를 벗을 때나

땀에 전 수건을 받아들 때 나던

그 기세등등한 냄새에서

초록을 버린 풀들이 막 거름으로

이름을 바꿀 때의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앙상한 등짝으로 부려놓은 풀 더미에 가축 오줌과 똥을 잘 섞는다 각자의 냄새를 지켜내겠다고 서슬 퍼렇게 날뛰던 것들이 오래 지켜온 습성을 버리기 시작한다 저마다의 냄새로 진동하던 것들이 고집을 버려 삭아지고 토해내며 거름으로 될 때의 냄새가 난다 검은 흙빛 미지근한 열감으로 모든 냄새들이 포기하여 뭉쳐진 거름

 

들녘을 키우며

아낌없이 주는 거름

깜빡 졸고 있는 그 틈에도

아버지의 밭은 성성했다

 

러닝셔츠 구멍 사이로

기력 다 빠져나간 아버지의 밭에

폭 삭은 거름 한 짐 뿌리고 싶은데

지금쯤 아버지는

어떤 냄새로 접어들었을까

 

(*) 1961년 경북고령 출생-효성여대 졸업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 과정 이수

 

 

 

[심사평]

詩風 지양한 명징하면서도 깊은 울림의 시

 

...... 훌륭한 시인들의 요람인 신춘문예가 오랜 연륜을 거치면서 부지불식간에 신춘문예라는 시풍이 형성되었다. 새롭고 참신하고 실험적이라는 미명 아래 다다이즘(Dadaism)의 시, 시적 변용이 지나쳐 모호하거나 난센스적인 시, 꺾고 비틀어 그로테스크한 시들이 얼굴에 분칠을 하고 나서게 되었다. ......... ‘거름 이기심과 자기주장이 팽배한 사회상을 표출하여 서로 자신을 포기(버림)함으로써 소통하고 상생하는 이치를 사물에서 깨닫게 하는 깨달음의 시이다. 특히 가족의 유대가 무너져 가고 있는 이 시대에 가족의 거름이 되는 숭고한 아버지상을 잘 부각하였다.

(심사위원 ; 박종해)

 

감상 추가 ;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지탱하여 온 아버지의 모습에서 숨겨진 많은 고난을 읽어내고 아버지가 베어온 풀과 오줌과 똥을 섞어 퇴비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사회에 적응하는 양보와 버림의 미학을 일깨워주고 있다.

어울려 함께 하는 소통의 사회를 말하는 매우 신선한 시적 발현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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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 2020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 / 이유운

 

 

당신이 또 여름이 왔다고 말하는 것은

축축하게 땀으로 젖은 내 등을

바람으로 깎아놓은 거친 손으로 훑어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손가락 끝이 유독 단단했던 당신의 손톱은 언제나 창백한 회청색이었다

손톱이 왜 파랗지요 하고 물으면

요 안에는 바람이 담겨 있어서 그렇다고 대답하던

당신의 입술에는 뼈가 없었다

 

당신의 손이 습한 등을 훑으면 와사삭 소름이 돋아서

정말로 당신의 손톱에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바람으로 나를 만지며

내 등뼈는 당신 덕에 조약돌처럼 둥글어졌다

 

그리하여 아주 먼 미래에누군가 내 등을 만지면

나는 바람으로 깎여 둥글고 부드러운 짐승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 먼 미래를 생각하면서

당신의 부푼 무릎 위에 바람의 모양을 그렸다

 

이제 그 먼 미래가 되어서 바람으로 깎인 나는

이즈음에는 꼭 당신을 생각한다

바람을 담고 있던 당신의 손톱과

바람의 모양대로 부푼 당신의 무릎

 

나는 여름이 오면 반드시 당신의 뼈를 떠올리게 되어 있다

내가 만져보지 못한 당신의 뼈는 어떤 모양이었을까 하고

 

 

 

[심사평]

"바람으로 존재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헌사"

 

........시의 마법적 기능은 쾌락이고 인식이며 구원이다. ....... 시적 구원은 우선 시인에게 먼저다. 시인의 구원 이후에 독자의 구원이 온다. 이러한 시의 마법적 기능이 많은 사람들을 시에 빠지게 한다. ......... 시적 모험은 광기에서 오는 것이고 광기는 쾌락에서 나오는 것인데 지나치게 안정적인 음역과 음색으로 노래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식의 깊이가 깊어진 것도 아니었다. 역사적인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거나 시대정신을 추구하거나 사회의 병리현상을 들여다보거나 소외계층을 연민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이 적었다. 사물의 본질을 보려는 응모자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유운 씨의 '당신의 뼈를 생각하며'는 이 세상에 바람으로 존재하는 당신에게 보내는 헌사다. '바람을 담고 있던 당신의 손톱과/바람의 모양대로 부푼 당신의 무릎'은 이유운 씨의 독창적인 문장이어서 울림이 크다.

(심사위원 ; 김윤배·김명인)

 

감상 추가 ; ‘바람으로 존재하는 당신에 대한 시인의 사색이 겹겹이 둘러쳐 있는 듯하다.

바람으로 인하여 깎이고 다듬어져 서로 어울려 사는 사회적 삶에 순응하게 된 시인의 내면을 통과하는 사색적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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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2020신춘문예 시 당선작>

 

세잔과 용석 / 박지일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알게 되었다

 

세잔과 용석은 호명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하나의 인물이었다

 

나는 세잔을 찾아서 용석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하고 반대로 용석을 찾아서 세잔의 현관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용석은 빌딩과 빌딩의 높이를 가늠하는 아이였고

세잔은 빌딩과 빌딩의 틈새를 가늠하는 아이였다

 

세잔과 용석 몰래 말하려는 바람에 서두가 이렇게 길어졌다

(세잔과 용석은 사실 둘이다)

 

다시,

 

세잔의 몸은 기록 없는 전쟁사였다

나는 세잔과 용석을 기록하며 그것을 모르게 되었다

 

세잔은 새총에 장전된 돌멩이였다

세잔은 숲의 모든 나무를 끌어안아 본 재였다

세잔은 공기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프리즘이었다

 

용석아

네게서 세잔에게로 너희에게서 내게로

전쟁이 유예되고 있다

 

용석아

네 얼굴로 탄환이 쏘아진다 내 배후는 화약 냄새가 가득하다

 

세잔과 용석은 새들의 일회성 날갯짓, 접히는

세잔과 용석은 수도꼭지를 타고 흐르는 물의 미래, 버려지는

세잔과 용석은 공중의 양쪽 귀에 걸어준 하얀 마스크, 아무도 모르는

 

나는 누구를 위해 세잔을 기록하나

용석을 기록하나

 

도시의 모든 굴뚝에서

세잔과 용석이 솟아난다 수증기처럼 함부로

 

 

 

[심사평]

고유한 호흡, 긴 여운

 

....... 지금 한국 시에 부족한, 비어 있는 감각을 채워줄 만한 작품을 눈여겨보자는 것이었다. ........ 박지일님의 응모작들은 무엇보다 읽고 난 뒤에도 계속해서 머물렀다. 자신만의 고유한 호흡을 유지한 채 여간해선 서두르지 않았다. 따뜻하고 유려하다가도 일순간 차가워질 줄 알았다. 사유가 과장 없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두 사람을 호명하며 이룩하고 있는 당선작의 기체(氣滯)적인 시 세계는 정물적으로 보이면서도 또한 움직였다.

(심사위원 ; 김행숙·신용목·김현)

 

감상 추가 ; 얼핏 빌딩의 꼭대기, 고공에 매달려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세잔과 용석은 두 사람이었다가 한 사람이었다가 그 모습을 중첩시키며 시 속의 인물--상징으로 등장한다.

내밀한 이력은 관심 밖의 일이다.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내면적 풍경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몸에 기록된 것은 전쟁(=먹고 사는 일)의 흉터일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아 생기는 정체 현상도 일어난다. 일상적 일회성 소모품처럼 가치없이 평가되는 노동의 현장에 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쓸모없는) 돌멩이로, 혹은 바닥에 흩어져 뿌리를 감싸안은 재(), 여러 가지 색채로 투사되는 프리즘으로 형상화시켜 시적 감동으로 힘겹게 끌어당긴다.

지나친 상상력을 조합하여 읽어 내야하는 수고로움이 어설프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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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남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 / 한병인

 

 

계단을 오르다가 놓고 온 키를 생각 한다

 

키는 어딘가의 구멍에 꽂힌 채로 계단 하나 정도의 높이에 매달려 있을 것이고

 

키는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구멍 하나의 길이로 밖을 가늠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오늘이라는 높이에 매달려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상상한다

 

새의 감정은 한사코 키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구멍을 물고 있는 저 키의 속성이 새의 부리에서 왔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키와 새의 부리가 키, , , 웃음을 만들어낸다 서로 너무 꽉 맞아 떨어지는 속내를 키는 키 만큼의 길이로 유희하고 전유하는 까닭이다 쪼는 저들의 관성에서 부리는 점 점 더 높은 구멍으로 향하고, 그러나 언제고 다시 풀리는 키와 구멍들, 키를 닮은 수많은 부리들이 구멍을 통해 일제히 날아오르는 환상에 갇힌다 허공 어디쯤에서 키, , , 잠시 웃음을 만들어 낼 때에도 웃음이 울음에서 왔다는 소리의 의혹을 키, , , 웃음으로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키들은 단단한 부리를 부비며 한껏 오므려 보이는 것이다 오늘은 너무 뾰족하게 발음되는 키의 모양새를 제외하면 키, , , 웃음 몇 개는 여전히 내일에 남겨질 것이고, , , , 더 완벽한 웃음을 위하여 계단을 오를 것이고, 이제는 키, , , 울음에도 섞이고 키, , , 조금은 숨죽이다가 키, , , 낮게 흥얼거리다가 키, , , 울먹이다가 키, , , 소리 지르다가... 드디어는

 

,

 

,

 

,

더 깊은 구멍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다

 

 

 

[심사평]

사유·다양한 시적 구사 위한 궁리 돋보여

 

.......철이 덜 든 언어의 맛, 그리고 사유와 다양한 시적 구사를 적용해 보려는 궁리가 투고된 전체 시 가운데 가장 돋보인 때문이다.

.......키는 매달려 있지만 일이 있고, 새의 부리는 다물리고 아프지만, 날개가 있다. 인생은 고달프고 몸은 무겁지만 너와 나, 혹은 두 세계를 잇는 통로라 할 법한 흥얼거림이나 울먹임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심사위원 ; 황학주)

 

감상 추가 ; 이번 신문문예 당선 시 중에는 유난히 언어적 유희가 많이 등장한 것 같았다.

키가 가지는 열리고 닫힘의 기능적 통로에 자리한 키의 의미라는 시적 소통에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는 느끼지 않았으나 다양한 시적 궁리가 돋보였다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키득거리는 웃음이나 울음 동작에 자주 연결되는 낯선 연결 구가 왠지 감동으로 가는 길에 걸림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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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빗방울은 몇 겹의 하늘을 깨고 달아나는지 / 선혜경

 

그런 걸 뭐하러 세어두고 있겠어,

당신은 꿈에서도 폭우가 내린다는 사실을 모르나봐요, 창틀을 베고 누운 당신도 닫힌 서랍보다

늦게 눅눅해지는데

궁금해

그런 날의 당신은

그림자 대신 검은 석유를 품고 다녔는지

그런 날의 빗방울에게서

풍경의 심장이 뚝뚝 떨어져 나갈 때

벌려둔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팠는지

새벽의 혀를 길게 베어 문 촛불처럼

가장 빨리 죽는 건 악몽이라 믿으며

밤새 얼얼하게 녹아내리는 것들은 모두

내일의 미아가 되어 버리기를

,

이라 발음하면

옅어진 등불에 팔다리가 생겼는지

촛농이 굳어버린 하늘을 정면으로 마주치며

빛에 익사하길 바랐다

상처투성이의 손금을 털어내려고

손바닥을 자꾸만 흔들어도

온통 웅덩이였다

모르는 사람의 초상을 여기저기 그리고 다녔다

(*) 선혜경: -1996년 광주 출생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심사평]

지나칠수 없는 골똘함, 명랑한 머뭇거림의 미학

​​

.......선씨의 작품은 표면적으로 읽으면 시어의 의미가 선명히 다가오지 않는다. 그 점이 씨의 약점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골똘함, 명랑한 머뭇거림이 있다.

(심사위원 : 이대흠 시인)

 

감상 추가 ; 의미 전환을 노린 의도였는지 몇 군데의 문장 비틀기에 걸려 자꾸 넘어진다.

소통이 쉽지 않다는 말도 되겠다. 삼사위원이 숨겨놓고 간 머뭇거림의 자리에서 혼자만 즐기는 시가 되면 독자들은 무엇을 위해 시를 읽으려 할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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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 / 정희안

 

 

우선 헐거워진 안구부터 조여야겠어 의자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 네모난 메모는 너무 반듯했어 느슨해진 우리 사이에 필요한 건 떨림이잖아 사랑은 사탕 같은 것 길이와 깊이 중 어느 쪽이 좋을까 잠들지 않고 꿈을 꿀 순 없잖아 달리자는 남자와 달라지는 남자 수순은 잘못되었지만 수준은 비슷해 일용직 알바생의 심정을 너는 몰라 너는 내가 되는 경험을 해봐야 해 우리 모두 갑질 아래 새로 태어나곤 하지 사진을 정리하다가 시간을 정리해버렸어 미움은 마음에서 출발해 머리는 항상 미리를 준비했어 망설임은 사치야 네가 생일선물로 준 귀걸이처럼. 취업은 걱정 중 제일 으뜸이지 숲이 술을 대신할 순 없잖아 기능도 못 하면서 가능을 얘기했어 조직은 때로 조작도 해 유인하려면 유연해야 해 정말이지 절망스러웠어 그러니 우리 헤어지는 게 좋겠어 밀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빌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진절머리와 전갈머리는 무슨 관계인지 거울 속에 겨울이 있잖아 말 많은 세상 발밑을 조심해 그럼, 이제부터 그림 공부나 해볼까

 

 

 

[심사평]

가벼운 언어와 무거운 현실 균형감 잘 갖춰

 

........ 첫째, 참신함이다.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의 원형을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함이 있는가를 살폈다. 둘째는 정확함이다. 소통을 위해서도 공감을 위해서도 어설픈 시적 허용에 기대기보다 정확하게 문장을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점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였는가를 함께 살폈다. 마지막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발견하는 시의 눈을 갖추고 있는가를 살폈다. ........정희안 씨의 작품은 유사한 발음의 단어로 언어유희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면서도 삶의 세목을 깊이 있게 응시하는 시선을 담보하고 있는 점이 미더웠다. 특히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 한없이 가벼운 언어와 한없이 무거운 현실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감으로 말의 재미와 사유의 깊이를 함께 성취한 수작.........

(심사위원 ; 강은교 성선경 김언 시인)

 

 

감상 추가 ;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는 서로 어긋난 이미지들이 대립각을 세우며 대칭적인 구조로 억지를 밀고 가는 느낌이 든다. 대체 이웃하는 유사발음의 단어는 어떤 연결성으로 시적정서를 얽어매고 있는지 혼란스러웠다. 네모난 메모, 사랑은 사탕, 길이와 깊이 달리자는 남자와 달라지는 남자, 사진을 정리하다가 시간을 정리, 미움은 마음에서 출발, 기능도 못 하면서 가능을 얘기, 조직은 때로 조작, 유인하려면 유연해야 해, 밀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빌려서 여기까지 왔는지, 진절머리와 전갈머리, 거울 속에 겨울 등 11개나 되는 유사한 발음의 단어로 언어유희의 효과를 극대화했다지만 서로 충돌하는 이미지의 부자연스러움이 무엇을 연결하려 했는지 작자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 설거워진 이미지를 조이기 위해서는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하다는 정도의 설정이었을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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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신문 / 2020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풀씨창고 쉭쉭 / 이주송

 

 

멧돼지 한 마리

그 꺼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

산기슭이 들어있다

 

노루발, 뻐국새, 지칭개, 복수초, 현호색, 강아지풀,

질경이, 벌개미취, 금낭화, 산자고, 쇠별꽃

 

멀리 가고 싶은 풀씨들은 멧돼지 등에 올라타면 된다

 

제 몸에 눈 녹은 묵은 봄이 가려워

멧돼지는 부르르 온몸을 털어낼 터

씨앗들은 직파방식으로 파종될 것이다

 

북극의 스피츠베르겐섬에는 국제종자보관창고가 있다

먼 훗날의 구호(救護)를 위해 멧돼지 한 마리

그 쉭쉭거리는 씨앗창고를 기르고 싶다

 

이 산과 저 산

이쪽 풀밭과 저쪽 풀밭이라는 말

다 멧돼지의 등짝에서 떨어진 말일 것이다

 

그러니

너나들이로 섞이는 산

번지는 초록들은 멧돼지의 숨결

국경도 혈연도 지연도 없다

 

멧돼지 꼬리에서 반딧불이 날아오르고

꺼칠한 오해 속에서도

극지에서도 풀씨들이 움튼다

 

(*) 이주송 1961년 전북 임실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심사평]

밀고 가는 역량 섬세하며 힘차  야생동물과의 상생까지 다뤄

 

.......‘풀씨창고 쉭쉭은 강인한 생명력과 역동적인 힘이 느껴지는 시였다. 그저 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는 풀씨가 아닌 멧돼지의 등에 힘차게 올라타 대지를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씨앗의 모습은 당찼고, 시를 밀고 가는 역량은 섬세하면서도 힘찼다. 선자들은 몇 번이고 행간의 여백까지 반복해 읽어나가며 이 시에 결정적인 흠결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았으나, 마지막행까지 다 읽고 난 후에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멧돼지의 그 꺼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산기슭이 들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응모자는 말의 호흡을 나름의 방식으로 터득하고 있는 듯했다.

(심사위원 ; 곽재구 박성우)

 

감상 추가 ; 멧돼지의 등에 들러붙어 산야를 달리는 씨앗들의 당찬 종족번식을 향한 모습이 그려졌다. 씨앗들의 세계나 멧돼지의 거침없이 달리는 삶의 모습에서 질긴 생명의 모습이 읽힌다. “멧돼지 한 마리 / 그 꺼칠한 털 속에는 웬만한 풀밭이나 / 산기슭이 들어있다는 인식에서 씨앗들의 보존과 탄생하고 소멸하는 다양한 삶의 경이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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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N제주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부처님이 낸 소문을 들었다

- 실상사 약사전 / 황세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단 얘기 탓인지

불상의 양 손이 시커멓게 닳았다

누나 오나, 주윌 살피던 누군가

더듬었을 두 손에 목탁소리 이고 온

햇살이 올라서는데, 가만 곁을 살피니

사하라, 사나운 모래바람 앞인 듯

게슴츠레 뜬 저 두 눈!

피부 곳곳 긁히고 멍이 든 흔적!

혹시 그는 지금 공중에 앉아

부동으로 각 처를 돌아다니는 중이신가

 

하늘 안방에 들앉은 태양처럼

침거로 전국을 유람했을 법한

저 약사불!

그의 말씀이었을까

 

마사하면* 소원이 이뤄진단 얘기!

 

세간을 풍문으로 떠돌다 모른 척

 

가좌부 틀고 앉은 이 철제여래속설에

흑심의 손바닥이 얹힌다

 

문득 북적대는 소리, 솟을 꽃살문 틈을 보니

앞마당 석탑 앞 합장과 탑돌이 기와불사들

땡볕이 슬며시 두드리자 살갗문 열고 나와 뻘뻘

흐르던 불심(佛心)의 물주머니에 담기는 그들

 

정신을 다시 방에 들여놓으니

시커멓게 닳은 내 손을 불상이 쓰다듬고 있다

게슴츠레한 눈, 결가부좌로

허공에 올라앉은

내 양손을

 

 

 

[심사평]

"비유로 무장된 탁월한 시상"

 

.......<부처님이 낸 소문을 들었다>는 불상을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부처의 영험에 대한 작품이다. 너무나 사람들이 불상의 두 손을 만져서 반질반질 닳았다는 이야기다. 부처로 들어가서 시인은 부처도 사찰에 있는 부처가 아니라 열사의 사막 사나운 바람 쓸고 지나가고 피부가 긁히고 멍이 든 상태의 지극한 통고의 부처로 형상화한다.

러므로 침거로 전국을 유람하는 저 약사불이요 공중에 앉아 부동으로 돌아다니는, 또는 가부좌 틀고 앉은 변화무쌍의 부처이다. 시는 마지막 연에서 어느 순간 시커멓게 닳은 내 손을 불상이 쓰다듬고 있다는 반전의 극이다.

(본심위원 신달자, 강희근(), 허형만 / 예심위원 윤석산, 이어산, 현달환, 장한라)

 

감상 추가 ; 부처님의 손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소문에 불상의 두 손을 만져서 반질반질 닳았다. ‘사하라, 사나운 모래바람 앞인 듯 / 게슴츠레 뜬 저 두 눈과 표정에서 전국, 아니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부처의 고행으로 사바세계의 중생들의 고난을 구원해 주고 있다는 인식으로 확장한다. 법당 안으로 들어오니--심사위원들이 지적 한 것처럼--‘시커멓게 닳은 내 손을 불상이 쓰다듬고 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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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일보 / 2020년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봄날 / 문나은

 

 

아침 열시, 여자는 '주름'하고 입속으로 뇌까린다

블라인드로 스며든 몇 장 햇살이 일렁임조차 없이 마룻바닥에 고인다

여자의 삶은 곧 삶은 빨래처럼 표백되곤 한다

주름 팽팽하게 당겨 올라가 집게에 집힌 채 집게발을 들곤 한다

세 아이를 키우며 꼭두서니처럼 잘게 썰린 여자는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는다

여자는 이제 너무 많이 읽힌 문장이어서 시들 수도 없다

 

청소기 안 먼지들이 머리끄덩이를 잡고 실뱀처럼 엉긴다

부엌에서, 여자는 알약을 삼킨다

"이것 좀 봐!"

아이가 유리병을 흔든다

병속의 벌이 붕붕거린다

쓰레기통 옆 죽어가는 생쥐 위로

우울증 환자의 머리에 덧씌워진 비닐봉지 같은 햇살이 고인다

 

값싼 비닐처럼 추억은 야윈다

여자를 잘 따르던 비숑 프리제는 이유 없이 밥을 굶기 시작하더니 보름도 채 안되어 죽었다

남편의 사업은 말린 고사리처럼 불어나고 아이들은 옥수수처럼 자란다

비교적 순조로운 날들이다, 여자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단단했던 어제의 눈망울들은 어디서

물기를 버렸는가

 

그러나 저 살찐 햇살은 그늘의 혈연이다, 햇살은 그늘을 살찌운다

여자는 다시금 뇌까린다, 그나마 다행스런 날들이지 않은가

병속의 벌처럼 숨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만 빼면,

 

 

 

[심사평]

여성 특유의 현실 감각에 주목

 

........'봄날'을 응모한 분의 작품들에는 전체적으로 일관된 주제와 시선의 힘이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주제의식이 그것이다. 이 특징은 여성들이 현재 갖고 있을 여러 각별한 현실의 양상들로부터 나오는 것일 텐데, 이에 대한 응모자의 인식도 뚜렷하다. (심사위원 김명인(시인박수연(평론가) )

 

감상 추가 ; 아이를 키우면서 삶을 종종거리며 사는 삶이란 때로는 힘겨운 삶의 여정일 수도 있다. 어쩌면 판에 빅힌 일상을 생활하는 가운데 애완견이 죽고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빠듯해진 살림살이는 조금 더 팍팍해졌지만 자신에 대한 위로를 찾아내는 모습이 정겹다.

그래서 희망이라는 봄날을 찾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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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우유를 따르는 사람들 / 김동규

 

 

창가에 앉아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당신은 조용히 그것을 따르고 부드러운 빛이 쏟아졌다. 둘러맨 앞치마가 하얗고 당신의 얼굴이 희고 빛이 나는 곳은 밝고 빛이 없는 곳에서도 우유를 따르고

 

우연한 기회에 인사를 건네고 거기에서 우유를 따르고 다음 날에도 성실하게 우유를 따르는 그런 사람에게 매일 우유를 따르는 게 지겹진 않나요, 그곳은 고요하고 그곳에서 당신을 계속 지켜보기로 하고

 

어떤 날엔 TV를 켰는데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출연한다. 책에서도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등장한다. 당신이 앉아있는 지면에 부드러운 빛이 쏟아지고 서가가 빛나고 읽던 것을 덮어도 빛나는 창가에서 우유를 따르는 당신이

 

우유를 따르고 있었다. 여기서 우유를 마시는 사람도 없잖아요, 그런데도 차분하게 우유를 따르고 열 번을 쳐다보면 열 잔이 되는 우유가 있다. 실내는 눈부시고 새하얗게 차오르는 잔이 가득해지고

 

그런데 누가 우유를 옮겨요, 지켜봐도 우유를 옮기는 사람이 없는데 우유를 가져다준 적이 없는데, 당신도 환하고 실내도 환하고 당신이 우유를 계속 따라서 그런 거잖아요 문밖에서 발목이 젖고 우유가 넘치고

 

우유가 흐르는 골목이 차갑고 당신은 계속 따를 수 있겠어요, 당신의 손이 새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 1983년 서울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심사평]

 

일상을 이야기로 벼리고 여기에 재기를 담아 삶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흔드는 힘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다. .(심사위원 ; 조강석. 김혜순 시인)

 

감상 추가 ; ‘우유를 따르는 행동은 무엇을 은유하려 한 것일까? 고개가 갸웃해지는 작품이었다. 시의 제목이나 그 속에 장치한 비유는 시적정서를 아우르며 그 은유의 숲을 해체하고 재해석할 열쇠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열쇠가 보이지 않았다. 하여 오히려 정체된 혼란을 겪어야 했다면? 우리가 매일 매일 살고 있는 삶이란 게 그저 비슷비슷한 것이라는 일상을 은유하기 위해 우유를 따르는 표현을 반복했다면 그 이야기는 너무 단조로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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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문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남쪽의 집수리 / 최 선(최란주)

 

전화로 통화하는 내내

꽃 핀 산수유 가지가 지지직거렸다.

그때 산수유나무에는 기간을 나가는 세입자가 있다.

얼어있던 날씨의 아랫목을 찾아다니는 삼월,

나비와 귀뚜라미를 놓고 망설인다.

 

봄날의 아랫목은 두 폭의 날개가 있고

가을날의 아랫목은 두 개의 안테나와 청기聽器가 있다.

뱀을 방안에 까는 것은 어떠냐고

수리업자는 나뭇가지를 들추고 물어왔지만

갈라진 한여름 꿈은 꾸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오고 가는 말들에 시차가 있다.

그 사이 표준 온도차는 5도쯤 북상해 있다

천둥과 번개 사이의 간극,

스며든 빗물과 곰팡이의 벽화가

문짝을 7도쯤 비틀어지게 한다.

 

북상하는 꽃소식으로 견적서를 쓰고

문 열려있는 기간으로 송금을 하기로 한다.

꽃들의 시차가 매실 속으로 이를 악물고 든다.

중부지방의 방식으로 남쪽의 집 수리를 부탁하고 보니.

내가 들어가 살 집이 아니었다.

종료 버튼을 누르면서 계약이 성립된다.

산수유 꽃나무가 화르르

허물어지고 있을 것이다.

 

(*) 약력 : 전남대 법과대학 졸업. 현재 서울행정법원 근무

 

[심사평]

........ 꽃핀 산수유나무를 매개로, 자연과 계절의 변화과 순환에 따른 삶의 이치를 시로 넌지시 일깨우고 있다. 봄이 오면 저절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산수유나무도 '집수리'라는 부단한 자기 삶의 갱신으로 꽃을 피운다는 것이다.

.......삶의 시차와 간극을 좁힐 수도 없고 매양 어긋나기만 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불화를 체감하면서도, 북상하는 꽃소식에 귀 기울이며 봄이 오는 길목 어디쯤에서 자기 나름의 '남쪽의 집수리'에 골몰하는 인간살이를 적실한 언어로 표현했다. (심사위원 : 이태수 시인 · 송찬호 시인)

 

감상 추가 ; 꽃이 피는 봄을 상징하는 산수유나무를 매개로 남쪽으로부터 북상하는 봄의 움직임을 그려내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이상도 때에 따라 변화한다. 봄이란 희망의 이미지이고 힘든 세상살이이지만 그 희망에 우리의 삶도 세 들어 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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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의 나침반 / 하미정

 

 

풀잎하고 부르면 화살표가 나옵니다 당신이라는 낭떠러지는

나를 늘 그런 곳으로 이끌어 세웁니다

 

잠시 방위를 빌려보기로 하자 방향에 굴하지 않고

유연하게 나아가는 선택의 길에서 나는 늘 진로를 망설였고

우리의 목표는 정말 높고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후 3시가 목표라면 그 안을 보는 일에

그는 늘 바깥 방향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한번은 밀어내고 한번은 끌어당긴다

자성 강한 잡념들도 나의 몸이 끌어당긴다

누군가를 밀어내면서 누군가의 어둠을 끌어안는다

어둠의 강한 자성에 내 방은 결국 자력을 잃었고

나는 그의 자기장에서 일 년을 붙어살았다

 

기울어진 힘점이 있다

나는 하루에 한번 넘어지며 균형을 잃는다

힘점에서 나를 빼냈다 공평함이 사라졌다

힘점에서 기울어진다는 건

누군가를 믿지 못한다는 증거

 

복잡한 머리를 용서하면

나의 좌표는 간결해 질 수 있다

여행은 마음의 풍경을 향해 가는 것

저녁의 산책이 걸음을 이해 할 때

나침판은 내 가슴에 와 박힌다

 

 

 

[심사평]

내면 진술하면서 객관화 신진으로서 패기 엿보여

 

....... 어디서 읽은 발상과 소재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신진시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또 하나 주목되는 현상은 내면의식을 서사화 하는 산문적 경향이다.

...... 무엇보다도 언어를 끌고 가는 힘이 부쳐 호흡이 끊기거나 상상력이 빚어내는 언어의 탄력성을 갖춘 작품이 드물었다.

....... 자신의 내면을 진술하면서도 객관화 하는 힘이 주목됐으며, 언어가 수사에 끌려 다니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말을 과감하게 펼치는 점이 신진으로서 패기를 엿볼 수 있었다.

(심사위원 ; 노철 전남대 교수)

 

감상 추가 나침반이란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나 굳건하게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이미지 속에서 삶의 좌표를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진로를 놓고 높고 낮은 현실의 벽을 인지하며 선택적 방향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여행은 마음의 풍경을 향해 가는 것이라는 생의 선택적인 길을 밀어내기도 하면서 때로는 끌어안기도 하면서 사는 내면의 풍경을 표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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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침투 / 차유오

물속에 잠겨 있을 때는 숨만 생각한다

커다란 바위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손바닥으로 물이 들어온다

나는 서서히 빠져나가는 물의 모양을

떠올리고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을 잡게 된다

물결은 아이의 울음처럼 퍼져나간다

내가 가지 못한 곳까지 흘러가면서

 

하얀 파동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 하고

 

나는 떠오르는 기포가 되어

물 위로 올라간다

숨을 버리고 나면

가빠지는 호흡이 생겨난다

무거워진 공기는 온몸에 달라붙다가

흩어져버린다

물속은 울어도 들키지 않는 곳

슬프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모든 걸 지워준다

 

계속해서 투명해지는 기억들

이곳에는 내가 잠길 수 있을 만큼의 물이 있다

버린 숨이 입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심사평]

내면 탐색 능력 뛰어나 앞으로 큰 작품 쓰리라 기대

 

당선작 침투 잠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화자의 내면과 물속이라는 공간에 대한 미시적이고도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다. 이 시는 빈약한 숨통에 존재의 모든 것을 기대야 하는 물속의 상황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몸으로 침투하는 물의 압력과 숨 막힘, 밀폐된 공간에 대한 두려움, 볼 수 없는 사람의 손바닥이라도 잡아야 하는 치명적인 막막함을 냉정하게 관찰하는데, 그 시선에서 일상적 자아와는 다른 존재를 발견하고 사유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 익사할 것 같은 공포와 숨을 버려서 완전하게 혼자가 되는 자유가 교차하는 심리의 이중성이 시에 독특한 에너지를 부여한다. 광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물 밖에서 밀실이라고 할 수 있는 물속으로 가려고 하면서도 벗어나려는 심리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시의 비밀스러운 사건을 은밀하게 엿보게 한다. (심사위원 ; 문정희·김기택 )

 

감상 추가 ; ‘침투는 화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정황을 드러내면서 삶이 존재하는 공간을 마음대로 숨쉬기 힘든 물속으로 치환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삶이란 그렇게 자신의 의지대로 마음 놓고 활동하기 어려운 밀폐되고 조직화된 사회적 부대낌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곤고함도 있는 현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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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도서관의 도서관 / 임효빈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

누군가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나는 열람실의 빈 책상이었다 책상은 내가 일어나주길 바랐지만

누군가의 뒤를 따라갔으나 나의 슬픔은 부족했고 무수한 입이었지만 말 한마디 못했고 소리 내어 나를 읽을 수도 없었다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

당신은 이미 검은 표지를 넘겨 놓았고

반출은 모퉁이와 모퉁이를 닳게 하여 손이 탄 만큼 하나의 평화가 타오른다는 가설이 생겨났다

몇 페이지씩 뜯겨나가도 도서관 첫 목록 첫 페이지엔 당신의 이름이 꽂혀 있어

책의 완결을 위해 읽을 수 없는 곳을 읽었을 때 나는 걸어가 문을 닫는다

도서관의 책상은 오래된 시계를 풀고 있다

 

(*) 1966년 충남 부여 출생

 

 

 

[심사평]

 

도서관의 도서관은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당대 문제를 내밀한 정서 의식으로 예각화하면서,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자유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다. (심사위원 ; 김경복·조말선 시인)

 

감상 추가 ; ‘도서관의 도서관은 사회적 소통이 매우 개인적 서사에 달려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 노인의 죽음은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는 거라 했다는 언술은 공감력이 높은 대목이지만 대여 목록 신청서에는 첨언이 많아 열람의 눈이 쏟아지고 도서관은 이동하기 위해 흔들렸다는 표현은 정서적으로 집중이 되지 않는, 공연히 난해하게 비틀어낸 요설처럼 느껴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어떤 감동적인 결합물을 추출해 낼 수 있는지 한참을 서성거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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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폐사지에서 / 이봉주

 

 

부처가 떠난 자리는 석탑만 물음표처럼 남아 있다

귀부 등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아득히 목탁소리 들리는 듯한데

 

천 년을, 이 땅에 새벽하늘을 연 것은

당간지주 둥근 허공 속에서 바람이 읊는 독경 소리였을 것이다

 

천 년을, 이 땅에 고요한 침묵을 깨운 것은

풍경처럼 흔들리다가

느티나무 옹이진 무릎 아래 떨어진 나뭇잎의 울음소리였을 것이다

 

붓다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설법 하였으니

여기 절집 한 칸 없어도 있는 것이겠다

 

그는 풀방석 위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으니

불좌대 위에 풀방석 하나 얹어 놓으면 그만이겠다

 

여기 천년을 피고 진 풀꽃들이

다 경전이겠다

 

옛 집이 나를 부르는 듯

문득 옛 절터가 나를 부르면

 

천 년 전 노승 발자국 아득한데

부처는 귀에 걸었던 염주 알 같은 생각들을

부도 속 깊게 묻어 놓고 적멸에 드셨는가

발자국이 깊다

 

 

[심사평] 

 

..... ‘폐사지에서 허공에서 독경의 소리를 살려내고, 떨어진 낙엽에서 풍경의 소리를 복원하면서 절이 사라진 공간에 다시 절을 짓는, 멋진 정신의 노동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또한 천년을 피고 진 풀꽃들이/ 다 경전이라고 말해 모든 생명 존재 그 자체에 법성이 깃들어져 있다고 바라보는 대목과 있고 없음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담대한 상상력은 당선작으로서의 풍모를 충분히 갖추었다고 판단했다. (심사위원 ; 문태준 시인)

감상 추가 ; ‘부처가 떠난 자리는 석탑만 물음표처럼 남아 있다는 시의 화두에서 무너져 없어진 자리에서 시인은 붓다는 없는 것이 있는 것이다, 설법 하였으니 /여기 절집 한 칸 없어도 있는 것이겠다라는 말로 부존재 속의 존재를 이야기 한다.

부처가 가신지 2,500, 이미 천 년 전의 절터에서 깊이 음미할만한 홀로 깨달음을 건져내는 시인의 민감한 감성적 촉수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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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그림자 숲과 검은 호수 / 이원석

 

 

모든 것은 덤불 속에 감춰져 있지

거기까지 가는 길이 어둡고 어렵고 어리고

나뭇가지에 헝클어진 머리칼에는 마른 잎들이 견디기 힘든

날들이 따라붙었지 매달리고 매만지고 메말라

찬 공기는 조금씩 뒤섞였어

침상에서 내려딛은 발은 문 앞까지 낡은 마루가 삐걱이는

소리를 누르고 길고 고른 숨소리들

사이로 천천히 밀어내는 호숫가의 배

젖은 흙 다섯 발가락들 사이로 닿는 촉각 촉각 누르는

건반과 긴바늘 입술 위의 손가락

우거진 뿔이 덤불 속에 갇혀

머리를 숙이고 있지 포기하지 못한 자랑들이 엉켜 있는

낮은 덤불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지 다물지 못하는 입으로

숨을 뱉으며 뒷걸음질 끝에 꿇은 무릎과 마른 잎 위의 몸뚱이

내가 들어 올리고 싶은 뿔은 덤불 속에 잠겨 있어

달리는 덤불을 보여 줄게

춤추는 작은 숲을

바닥을 움켜쥔 모든 뿌리와 함께

흰옷은 흙투성이

물은 차고 어두워 소스라치는 살갗

걸어 들어오는 고요와 잠긴 청각이 듣는 물소리

물속을 만지면 물이 몸을 바꾸고 뒤집는 모양은

얼굴과 얼굴이 흐르고 잠기는 기억

길게 줄어드는 음이 끊기지 않는

몸에 선을 긋고 지나가지 손도 발도 없이

물의 틈을 찾아 결대로 몸을 틀며 가라앉는 숨

접촉경계혼란

피아노의 가장 낮은 건반을 무한히 두드리는

바닥

놓지 마 놓지 마

춤을 추는 팔과 파란

뒤집힌 호수 바닥 위에 검은 숲

그림자 속 덤불과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로

고개를 젓는 우거진 뿔과 큰 눈망울

진저리치며 흩날리는 입과 잎과 입김

호수 위엔

잔물결조차 일지 않는 검은 물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 숲엔 부러진 뿔과 나뭇가지

몸뚱이 위로 끝없이 떨어지는 마른 잎사귀

(*) 1976년 서울 출생 /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 접촉경계혼란이라는 심리적 현상을 숲과 호수의 데칼코마니를 통해 역동적으로 전개하면서 달리는 덤불 하나를 눈앞에 보여 준다. (심사위원 ; 나희덕·안도현 시인)

 

감상 추가 ; 여러 곳에서 산견되는 중복적이거나 유사성이 짙은 언술들이 언어조작처럼 늘어서 있다. 길이 어둡고 어렵고 어리고, 건반과 긴바늘 입술 위의 손가락, 매달리고 매만지고 메말라, 선을 긋고 지나가지, 손도 발도 없이 흩날리는 입과 잎과 입김...등과도 같은 언어조작을 통해 드러내려는 생경한 이미지는 무엇을 뜻하고자 함인지 어림잡기 힘들게 한다.

물론 호수 위에 비친 풍경의 데칼코마니를 통해 물결에 흔들리며 달려가는 듯이 보이는 역동성은 그 자체가 접촉경계혼란으로 보인다. 접촉경계혼란이란 환경과 개체 간의 경계가 매우 단단하거나 불분명할 때, 혹은 경계가 상실될 때 환경과의 유기적인 교류접촉이 차단되고 심리적 · 생리적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는데 생체적 혼란을 통해 얻게 되는 감동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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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 김지오(김임선)

 

 

그때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혹시, 당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세요? 어머,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도둑 아니고 강도 아니에요 당신의 왼쪽 바지 주머니라 해도 상관은 없어요 당신의 왼쪽 심장이라 해도 상관없지요

 

혹시, 사탕 있으면 한 개 주실래요? 에이, 거짓말! 나는 당신의 주머니를 잘 알아요 한 번 만져 볼까요? 꽃뱀 아니구요 사기꾼 아니에요 그렇게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그럼 당신 손으로 당신 주머니에 손 한 번 넣어 보세요 어머, 그것 보세요 사탕이 남아 있다니 당신에게 애인이 없다는 증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당신은 모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주머니에 사탕 있으면 한 개 주실래요? 에이, 거짓말! 나는 당신의 주머니를 잘 알아요 한 번 만져 볼까요? 꽃뱀 아니구요 사기꾼 아니에요 그렇게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그럼 당신 손으로 당신 주머니에 손 한 번 넣어 보세요 어머, 그것 보세요 사탕이 남아 있다니 당신에게 애인이 없다는 증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당신은 모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주머니에 사탕 한 개씩은 들어 있어요 사랑 말이에요 세균처럼 바이러스처럼 그 사탕 나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달콤한 것을 좋아해요 유난히,

망설이지 마세요 그 사탕 내게 주면 당신 주머니에는 또 다른 사탕 생길 거예요 사랑처럼 말이에요 경험해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 맞아요

 

사탕 대신 꽃은 어때요?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꽃을 나눠 가진 우리

이제 달콤해집니다

 

(*) 1962년 경북 경산출생 / 1993년 문예중앙 신인상 중편소설 그네 당선

 

 

 

[심사평]

대화체·소설 화법 활용한 발랄한 표현 신선

 

.......작품의 소재는 일상적인 삶의 체험이 주종을 이루었고 그 길이도 상대적으로 길었다. 압축과 긴장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상당수 있었다. 실험적인 시편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엇비슷한 작품들이 보여주는 일상에의 침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외설스럽게 읽힐 수도 있는 한 남자의 호주머니 속 심벌을 화두로 내세워 사탕·사랑·꽃의 의미로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시적 능력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 최동호·김영남)

 

감상 추가 ;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당신은 모를 수 있어요라는 행만 지운다면 똑같은 2연과 3연의 실체적 반복이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아무리 다르게 상상력을 동원해도 외설스럽게 읽히는 이 시는 진정 사탕·사랑·꽃의 의미로 발전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다만 감춤과 은유의 미덕이 살아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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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 2020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작 >

 

포노 사피엔스 / 금희숙

 

 

유모차는 미리 늙어갑니다

똑같은 장난감을 만지면 계속 넘어지고

인공위성의 속도로 걸음마를 배워야 하는데요

반짝거리는 액정을 젖병처럼 빨면

손바닥만큼 엄마가 웃고 있어요

터치로 선생님을 밀어내고

클릭으로 친구를 선물하고

종소리는 아무래도 허용하지 않아요

아무리 껴안아도 따뜻해지지 않는 방

매일 손잡이를 돌려도 나를 찾을 수 없어요

불안은 얼마나 뚱뚱해지는지

모자를 벗어도 표정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날개 없이도 새가 되고

오늘보다 더 빨리 오늘이 쓰러집니다

울음은 턱받이에서 말라가고

눈동자는 쉽게 예민해집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를 믿지마세요

여전히 풍선은 위험하니까요

이제 옹알이는 퇴화하고

우리는 기계보다 먼저 완벽합니다

 

 

 

[심사평]

"변화해 가는 신인류의 모습 경쾌하게 표현"

 

...... 개인의 고독과 상처, 상실과 죽음이야 시의 오랜 주제이지만, 올해 투고작들에서는 유난히 어떤 활력이나 전망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한 현실의 무게가 느껴지는 듯했다.

...... 간결한 언어의 배치와 행간의 여백을 통해 시적 함축성은 높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그의 시들은 서정적인 톤을 유지하면서도 스마트폰에 의해 변화해가는 신인류의 모습이나 현대인의 단절된 관계와 불안의 심리를 경쾌하고 리드미컬하게 보여줌으로써 자기만의 '명랑한 우울'을 창조해낸다. (심사위원 ; 나희덕 시인, 홍정선 문학평론가)

 

감상 추가 ; ‘포노 사피엔스란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여러 가지 동작이나 불안정한 행동, 또는 쉽게 변하는 행동의 틀을 보여줌으로서 자신만의 우울과 변명을 활용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간결한 언어로 행간에 의미를 채워놓고 그 의미를 알기도 전에 비약해 버리는 시적 분위기도 스마트.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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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일보 / 2020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객공(客工) / 한영미

재봉틀 소리가 창신동 골목을 누비고 있었다

담장이 막다른 대문을 맞춰 다리면

원단 묶음 실은 오토바이가 주름을 잡았다

스팀다리미 수증기 속으로

희망도 샘플이 되던 겨울

어린 객공은 노루발을 구르다 손끝에 한 점

핏방울을 틔우곤 했다 짧은 비명이

짓무른 패턴에 스미면,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

밤하늘의 별자리를 이었다

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붕대처럼 동여맨 구름

자수(刺繡)의 밤하늘은 그녀의 눈물을 진열한 쇼핑센터가 아닐까

화려하게 화려하게

너무나 눈이 부셔서

쪽가위처럼 날카로운 바람에

이따금 실밥처럼 잘려나가는 유성을 보았다

(*) 한영미 ; 서울 출생. 2019년 시산맥 신인 시문학상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심사평]

절망의 그늘에 햇살 녹아드는 모습도 포착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어린 객공의 작업을 떠올리며, 엉킨 실은 부풀어 오른 손가락 감고/밤하늘 별자리를 이었다/이제 그 슬픔도 완제품이다. 기시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 대한 객관적 거리에서 차분히 들여다보는 시선이 좋았다.

(-대표집필 김성주 시인)

 

감상 추가 ;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제재를 활용하여 상투성을 벗어난 사색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서 일하는 자의 곤고한 삶을 그려내고 있다.

70년대의 동대문 시장의 비좁은 봉재공장을 떠올리는 모습과 중첩되고 있지만 다소 상투적인 소재를 잘 삭여 육화시킨 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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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매일신문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나머지 인간 / 김범남

 

 

허름한 옷 입고 재즈만 듣는다. 사랑의 원가에 애착의 비용을 들인다. 가끔 일상은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거리와 집착의 변수에 비례해 망각된다. 비위에 거슬리는 언행으로 허덕거린다.

나머지도 인간이다.

이틀간 잠만 잔다. 수면 부족과 의욕상실증이 만든 침착함이다. 잉여가 없는 느린 속도를 즐긴다. 기억은 꿈을 만들고, 우연은 희망이 된다. 액세서리 지식을 걸치고 동굴로 들어간다. 틈을 타고 빛이 침투한다.

방관자도 나머지 일부다.

역방향과 정방향, 선택을 종용한다. 기울어진 생각으로 방향을 찾는다. 모순이다. 모서리와 모퉁이도 나머지다. 일부가 모여 전부가 된다. 구석을 찾을수록 신경은 예민해진다. 평면의 날카로움이 보인다.

남는 인간이 나머지다. 남은 인간도 나머지다.

 

(*) 김범남 1973년광주출생조선대경영학과  더펜 콘텐츠창작소 이사

 

 

 

[심사평] 시를 읽는 사유의 맛시인 역량 가늠하기 충분

 

........ 억지로 쓴 시, 형식만 시인 시, 엄살과 과장이 넘치는 시, 시적 자유란 이름으로 비문을 마구 늘어놓은 시, 밋밋한 문장을 행만 갈라놓은 시 등이 먼저 상자를 떠났습니다. 

........ 행간이 넓고 의미가 깊게 압축된 시였습니다. 언뜻 보면 불친절하지만, 촘촘한 의미의 집을 열고 들어가면 시를 읽는 사유의 맛을 한층 느낄 수 있는 시들이었습니다. 각 연과 행이 직조한 복층 구조는 시인의 역량을 가늠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심사위원 ; 이정록)

 

감상 추가 ; 얼핏 변방으로 밀려나 주목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잉여의 인간적 모습이 촘촘히 들어박힌 모습에서 역설적인 의미를 창조해 내며 일반적 희망과 삶을 노래하며 상상력의 공간을 확장해 내는 힘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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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골목의 번식 / 김은숙

 

발밑을 믿지 마세요 골목의 뒤통수는 백 년이 가도 썩지 않아요

미처 이름을 갖지 못한 태아도 봉지에 버려진 조약돌,

툭툭 발길에 채여요

어둠이 눈감아줬다면 당신은 그것을 바람 빠진 축구공쯤으로 여겼을 거예요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나자마자 봉지 속으로 꼬깃꼬깃 숨겨진 첫울음,

도심에는 한 방향만 암기한 검은 사각형들이 살아요

정육면체 어둠이 검은 시냇물이 되어 흘러요

밤이면 먹물 같은 골목, 징검다리는 없어요

그 안에 더 이상 비밀을 숨기지 못할 때

종착지는 캄캄한 땅속이거나 고래 뱃속이었어요

뭔가를 산란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 지난밤 그 골목은 비좁았어요

집안 어디쯤에서 폐품이 되기 좋은 질긴 산책로를 발견했나요? 창문 밖 골목 저 끝말이에요

! 저기! 저것 좀 봐! 소리친 게 당신이었나요?

노을을 뚫는 검은 새떼의 비행은 사실상 누군가 목을 비틀어서 유기遺棄한 비닐봉투였죠

은밀함을 목 졸라 죽일 때는 낯선 저녁 역광 뒤쪽이 최고예요

역광을 믿지 않았던 고래는, 죽은 봉투를 해파리로 읽었어요

그것들은 간혹 뱃속에서 심장을 갉아 먹다 고래의 사인死因이 되기도 하죠

검정을 죽이고 돌아와, 비닐봉투가 피살되었다는 뉴스특보를 보더라도 웃음 짓는 것이 중요해요 한잔의 블랙커피를 삽으로 파고서 떨리는 증거들을 감쪽같이 묻어버리세요

지난밤에는 어둠을 자백하라고 길고양이들이 나를 포위했어요 묻어버린 시간과 폐기한 말들을 뱉어내라고 난리에요 그렇지만 최후의 단서를 들키지는 않았어요

귀소본능이 없는 것은 발명가가 깨트린 새 소리예요

길게 누운 골목, 졸음의 이마 위로 갓 태어난 개똥을 조심하세요

골목 왼쪽, 삐쩍 마른 나뭇가지 꼭대기에 흙을 잔뜩 묻히고 입을 헤- 벌린

깃발처럼 펄럭이는 검은 농담들, 맞아요

어느 아르바이트생이 20원짜리 비닐봉투 도둑으로 몰린 사건 아시죠?

두께도 없고 입구도 없는 혐의는 아메바보다 지루해요

괜찮아요 밀봉된 태아의 캄캄한 몸과 비명도 따지고 보면 고무장갑과 같은 족속

붉어서 아무도 구별 못 해요

매일 밤 태어난 어둠은 막다른 모퉁이에 검은 무덤을 만들고, 아침이면

기지개 켜는 코스모스가 그것들을 화려하게 변호하죠

 

 

 

[심사평] 다양한 목격서사 통해 우리 시대 골목론 새롭게 써

 

...... 들인 흔적이 역설적으로 기성품을 보는 것처럼 익숙했고 개성이 없었다. 기존의 시 미학에 갇혀 안정적인 포즈를 취하는 것으로는 결코 신인이 될 수 없다.

....... 올 한 해 국내외에 주목할 만한 사회현상들이 있었음에도 그러한 곳에 눈길을 보낸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적 충동과 사유에 충실한 작품도 고르기 어려웠다. 이상하다싶을 정도로 개인 서사에 집중하는 시들이 많았는데, 미시적인 시·공간 속에서 사소하다 싶은 세목들을 짚어내는 데 치중하고 있었다. 이런 시들을 읽으며 우선 논의한 내용은 시의 소통 가능성이었다. 요설에 가까운 언어 비틀기나 이미지 왜곡 등이 지적되었고, 익숙한 것을 익숙한 방식으로 나열하는 무딘 언어 감각도 건강하게 소통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

..... 자기 목소리에 충실하다는 점....... 골목 유기된 생명체와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목격서사를 통해 이 시는 우리 시대의 골목론을 새롭게 써나가고 있었다.

(심사위원 ; 허영자 시인·문신 시인)

 

감상 추가 ; 지난 10여 년간 울궈먹은 소재가 다시 등장한 느낌이다. 2020년에도 골목이라는 주제가 다시 등장하였다는 기시감이 드는 것은 신춘문예를 통과한 작품들을 마주한 적이 있는 독자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골목에서 일어나는 서사적 사건들을 조합하여 도시의 비정함과 무관심의 세계를 조명해내려는 노력하려 한 것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너무 장황한 내용의 기술이 시적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 이 원고를 작성 중에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품 중에서도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의 작품이 함께 시 창작 공부를 하던 습작생의 시 비닐봉투의 원죄 중에서 많은 부분을 표절한 흔적이 발견되어 당선이 취소 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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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바이킹 / 고명재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 1987년생 / 영남대 국문학 박사 수료

 

 

 

[심사평]

 

...... 한 남녀가 놀이기구 바이킹을 타면서 한순간 겪게 되는 고통과 공포를 통해 우리 삶의 절망과 희망이 교직되는 순간순간을 절실하게 잘 드러내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재적 삶이 바이킹을 타는 행위로도 재해석되었다. (심사위원 ; 문정희. 정호승 시인)

 

감상 추가 ; 놀이기구의 하나인 바이킹을 타는 행위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표정과 감각이 어우러지는 고통과 공포, 그리고 서로 다가갈 수 없는 절망과 희망이 교차되는 현대적 삶의 한 모습으로 직조되어 그 순간에 만들어지는 상상력의 공간속에서 의미 확장을 도모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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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신문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릴케의 전집 / 김건홍

 

 

그 집의 천장은 낮았다.

천장이 높으면 무언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했다.

 

그 집에 사는 목수는 키가 작았다.

그는 자신의 연인을 위해 죽은 나무를 마름질했다.

 

목수보다 키가 큰 목수의 연인은 붉은 노끈으로 묶인 릴케 전집을 양손에 들고 목수를 찾아갔다.

 

책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커다란 관이 돼버렸다고

목수는 자신을 찾아온 연인에게 말했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지도 모르겠다고 연인은 답했다.

 

해가 가장 높게 떴을 때 마을의 무덤들이 흐물흐물 무너져 내렸다.

 

목수는 연인이 가져온 책 더미를 밟고 올라서 연인과 키스를 했다.

목수의 입에서 고무나무 냄새가 났다.

 

(*) 1992년 경북 상주 출생 / 홍익대 예술학과 졸업

 

 

[심사평]

 

문학적 상투성을 답습하지 않은 시적 압축미...... (심사위원 ; 송재학·손택수·안현미 시인)

 

감상 추가 ; 심한 비틀림과 다소의 난해함이 문장의 연결을 돕고는 있으나 소통의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잘못된 느낌이었을까. 마을의 무덤들이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는 풍경이나 목수의 입에서 고무나무 냄새가 나는 현상은 혼자만의 비의였는지 작자의 사색적 비약이 난독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릴케의 전집을 넣을 책장을 짜려고 했는데 릴케의 전집이 들어갈 관이 되었다는, 그래서 무덤이 되었다고 읽어야 할지, 쉽게 읽히지 않는 이 시의 시읽기는 독자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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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 2020 신춘문예 시 당선작>

 

침착하게 사랑하기 / 차도하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심사평] 단단한 세계를 뒷받침하는 천진한 어투

 

...... 심사위원은 수많은 응모작 중에 당선작 일부를 골라야 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지 최근의 문학 흐름을 짚는 선지자나 응모작의 전반적 수준을 평가하는 심판자가 아니다. .......다소 작은 세계를 말하려는 듯한 제목과는 달리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용기가 돋보였다. 천진해 보이는 어투가 단단한 세계를 뒷받침하고, 너른 시선이 가벼운 문체를 단속했다. 이 같은 특성을 묶어 범박하게도 새로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리라. 무엇보다 기성 시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게 한 개성의 충만함이 눈부셨다.

(심사위원. 박상순 시인, 김민정 시인, 서효인 시인.)

 

감상 추가 ; 알기 쉬운 듯 하면서도 다소 비틀린 대화가 자신과 신과의 대화로 치환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과 소통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깊은 사색적 의미는 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차분히 자신을 다스리는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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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 2020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순환선/이도훈

 

 

한 사람이 죽었고 법의학자들은

그의 사인(死因)을 알아내기 위해

부검을 했다.

먼저 바쁘게 오르내린 계단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몇 바퀴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지구를 돌고도 남는다는 혈관엔 무수한

정차 역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더 울리지 않을 휴대폰에서는

남은 문자들이 재잘거렸고

생전에 찍은 사진들은 모두 뒷모습이었다.

몇 개의 청약통장과

돌려막기에 사용된 듯한 카드와

청첩장과 부의 봉투가 구깃구깃 들어있었다.

그 중 몇 건의 여행계획서가 나왔고

퇴근길에 쭈그려 앉아 쓰다듬는

고양이 한 마리와 찰칵찰칵

열고 닫았을 열쇠 소리도 들어있었다.

읽다만 책들의 뒷부분은

다 백지상태였다.

 

사람들 몰래 지구는 자주 기우뚱거렸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계획을 쏟거나

계획에서 쏟아졌다.

오늘은 순환선에서 내려

애벌레의 마음으로 길고 긴 한숨을

느릿느릿 기어가 보고 싶은 것이다.

 

(*) 이도훈(본명 이양훈)

1971년생.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온새미로 동인. 시마(詩魔) 발행인

 

 

 

[심사평] 열차 순환선에 숨 멎은 도시인의 삶

 

....... 합당한 길이에 반해 너무 긴 것들이 많았다. 표현하려는 내용에 걸맞은 길이가 아니라 신춘문예를 의식해서인지 길게 잡아 늘려 집중력과 긴장감이 떨어지곤 했다. ...... 숨 멎은 한 도시인의 삶이 열차의 순환선에 비유되고, 그것은 마침내 읽는 이로 하여금 일상의 반복적 삶을 각성하게 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심사위원 ; 김병택(시인. 평론가) 나기철(시인))

 

감상 추가 ; 한 사람의 주검을 해부하여 들여다보는 풍경이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모습으로 바뀌어 그 속에서 삶의 반복적 일상을 순환선으로 치환하여 놓고 있다. 어차피 우리는 많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 또한 순환한다는 의미를 담아 현대적 삶에 자리 잡고 있는 휴대폰에 담긴 다양한 삶의 궤적을 비유하며 우리의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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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20년도 신춘문예 당선 시 작품 감상 후기後記

 

모두冒頭에서 필자는 감동을 언급하였다.

문학작품에서 감동을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

이 시대에 현란한 표현기교나 이미지 비틀기를 통해 요설과도 같은 언술로 난해함 속에 시적정서를 감추고자 하는 저의는 무엇일까? 고급의 취미를 향유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교감하고자 하는 대상을 좁히고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기 위해서인가.

얼마간의 감춤이나 내적 충동과 깊은 사유를 위해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도록 장치하는 기교는 그 문맥의 흐름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온당하다 할 것이다.

무작정 쉽게 쓴다고 좋은 일은 아니지만 요설에 가까운 언어 비틀기나 이미지 왜곡 등으로 치장한다고 좋은 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신춘문예가 이미 90여년이나 계속되어 진행되어 왔고 그러한 흐름의 역사를 형성하면서 발전적 역할을 일부 해 왔다는 사실은 가치있는 일이지만 지나치게 선민의식에 빠져 신춘문예라는 은연중 고매한 등단이라고 믿게 하는 흐름으로 형성되고 있는 시적 흐름은 그다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함축의 어려움을 비켜가고자 하는 한 방편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전반적으로 시가 길고 또 산문성이 짙은 경향을 보이는 현상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기성 시인들조차 자신이 선택한 시 형식에 대한 치밀한 의식이 뒷받침되고 있지 못한 것 같아 보인다.

시가 왜 이런 형식을 선택해야만 했는가? 또 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는가?에 대한 물음의 뒷면에는 시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반영되어야 한다.

자유시를 쓸 경우에는 그 시 형식을 선택하게 된 시인의 내밀한 의도와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 경우에도 분명 시의 행 가름에는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또 연을 나누는 데에서는 그 연을 나누는 이유와 그 의도(=또는 의미)가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 역시 행 가름이 없이 이어쓰기를 하는 경우에도 그렇게 써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당연히 고민하고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당연히 산문시에서도 산문시라는 형식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와 그 목적이 존재할 것이며, 산문시에 존재하는 내재율을 어떤 형식으로 형성시켜 운율적인 의미를 담아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도 또한 시인의 마음과 정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며 그에 대한 판단에 따라 그러한 시 형식을 선택하게 된 이유와 철학이 투영되어야 한다.

요즘의 시가 지나치게 산문화 된다든가 혹은 산문시의 경계에 바짝 다가서는 모습은 시의 행을 지나치게 길게 만들고 요설에 가까운 비틀기나 이미지 왜곡을 부추기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행이 금년에는 행 가름이나 연 나누기에 대한 감성적 분화는 전보다 좀 더 긴밀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적 긴장감은 완화되어 감칠맛이 나는 시, 깊이 음미할만한 시가 현저히 줄어든 것도 하나의 경향으로 보인다.

여전히 시적 소재의 한정으로 시 창작의 유사성이나 이미지의 유사함에 대한 베끼기 혐의가 짙게 드리워지는 시 창작 활동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신춘문예 당선작에 나타나고 있었던 낯익은 소재가 되어 버린 것들, 예를 들면 구두 또는 신발, 구름, 요리, 골목과 같은 시적 소재는 유사성이나 그 이미지의 변용에 대해 왜 우리 신춘문예가 이러한 오래된 소재들과 협력해야만 하는지, 왜 수 많은 소재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과제를 떠나 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것들에 대한 시선을 가지지 못하고 젊고 발랄한 신인들이 꼭 편협한 소재주의자처럼 그 주변을 어슬렁거려야 하는지, 왜 그것들에 목을 매게 만드는지, 시를 강론하고 시를 지도하는 일군의 신춘문예 양성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품 중에서도 전북일보(골목의 번식/김은숙)의 작품이 함께 시 창작 공부를 하던 습작생의 시를 많은 부분 표절한 흔적이 발견되어 당선이 취소되었다.)

표절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소재의 활용 측면에서 시 창작을 지도하는 양성자들(?)이 공통 소재를 활용하는 이러한 성향은, 서로 다른 이미지나 낯선 행을 은연중에 베끼게 하고 표절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혹여 심사위원들과의 내통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씁쓸한 입맛을 남긴다.

심사위원들의 교체는 서서히 진행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아직도 별천지에서 놀고 있는 장기 집권 시인 귀족들은 금년이 자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다른 귀족들이 생겨나 다시 새로운 시인 귀족이 되고 심사위원으로서 장기집권을 하게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젊은 신인들이 배출되어 시적 발전에 합류하게 되는 것은 현대시의 발전에도 크게 반가운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활동하는 전문 문학지도 함께 병행발전 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시들, 발표할 지면도 찾지 못해 사장되어 버리는 시는 얼마나 될 것인지?

그럼에도 하나의 소명이라 믿고 시 창작 작업에 매달리는 시인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 감상을 마치려 한다.

새해에는 무수한 시를 쓰는 시인들에게 커다란 시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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