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어 (魴魚) / 사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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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01회 작성일 20-03-17 06:15본문
방어 (魴魚) / 사윤수
머리에 뼈만 달린 주검이다
피 한 방울 흘린 자국 없이 살점은
이미 한 점 한 점 잘 도려내졌으니
자신의 죽음을 방어하지 못한 방어,
형식은 죽었으나 내용은 죽지 않았다는 듯
머리를 꼿꼿이 세운 채 가끔 입을 뻐끔거린다
밀물로 밀려왔다가 썰물로 쓸려가는 쇠잔한 숨
입 속의 어둠이 열렸다 닫혔다 한다
기억은 주검 안에 아직 살아서
모슬포 푸른 바다를 건너가
저 살점들을 다시 뼈에 봉합하면
방어는 살아서 수평선 끝까지 헤엄쳐 갈 수 있을까
무슨 생각이 났는지
죽은 줄도 모르고 너는 또
파르르르 지느러미를 떨어본다
물고기 한 마리가 떠나도 바다는 허전한 법,
파도치는 무채와 오색 야채 데커레이션 위에
가지런히 누운 방어회
한 틀 꽃상여 같다
곡두는 없으나 먹기조차 아까운 순교다
* 사윤수 : 1964년 청도 출생, 2011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파온> 등
< 소 감 >
푸른 갈기 휘날리며 깊은 바닷 속 활보하던
제주도 모슬포 앞바다는 방어들의 요람이요 생활 터전
악마들의 검은 그물이 덮쳐올 때까지 방어는
누이 동생 손 잡고 물빛 찬란한 용궁 속을 유람했으리라
자신의 죽엄을 방어하지 못한 방어는
낄낄거리는 인간들 앞에서 죽은 눈만 번뜩일 뿐
弱肉强食의 처절함을 생각하지도 못했으리라
텅 빈 입 뻐끔이며 방어는 그리운 것이다
붉은 빛 저녁노을 바라보며 힘차게 뛰어 오르던 그 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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