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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 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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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77회 작성일 20-03-1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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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집을 지읍시다

박은영

점점 작게 점점 작게

세상의 집은 작아졌죠 설계도는 필요없어요 민달팽이 한 마리가 들어갈 만큼만 만들면 되거든요 집 없이도 살아갈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에겐 이 땅의 번지가 없죠 헐벗은 생을 가리는 가림막, 벽은 갈수록 얇아지고요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묻는 건, 분비물을 묻히는 일이에요 벌거숭이에게 세탁비를 지불해야 하는 일이에요

오늘의 문제로부터 풀리지 않는 민달팽이 세대, 연체(延滯)의 몸으로 바닥을 학습하는 그들은 쪽창 달빛으로 어둠을 풀어내고 가장 어려운 해법 속에서 꿈틀거립니다 채점을 마친 문제, 집엔 동선 없이 쉬이 지나간 풀이 과정만 있을 거예요

세상은 암기한 대로 달팽이 집을 짓고

점점 크게 점점 크게

고시촌의 태양은 떠오릅니다

-시집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실천문학사,2020

[감상]

민달팽이는 집이 없다. 집 없이도 살아갈 능력을 가진 종족이라 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 능력에 대하여 묻는 건 분비물을 묻히는 구차한 질문이며 그 능력을 보여달라는 건 벌거숭이에게 세탁비를 지불해야 하는 난센스라고 한다. 시인이 아닌 민달팽이라면 뭐라고 답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사람에게 비유하면 맞는 말이다. 어떤 흙수저도 배꼽에 달고 나온 특별한 능력은 없으니까.

집은 아침을 열고 숟가락을 씻으며 사랑을 나누는 곳, 집은 사람에게 모든 것이다. 세상에서 집을 지우면 돌아갈 곳이 없다. 오늘의 문제는 민달팽이 세대, 연체의 몸으로 태어난 그들에게 스스로 능력을 극대화 하여 집을 지으라는 것. 고시촌은 바로 그 '집'에 대한 절절함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쪽창 달빛으로 어둠을 풀어내고 해법을 찾아 꿈틀거리는 수많은 청년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며 자화상이다. 세상을 암기한 대로 집을 얻는다는 믿음,이 오늘도 고시촌의 태양을 떠오르게 하지만 점점 크게, 란 구호 속에서 그들의 충혈된 눈을 만나는 일은 무섭도록 슬프고 우울하다. 점점 크게,를 두 번이나 눌러 쓴 시인의 눈빛도 아마 그러하지 않았을까. ㅡ이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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