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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검거나 희거나 혹은, 회색이거나 -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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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0회 작성일 20-03-26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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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검거나 희거나 혹은, 회색이거나

 

-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후회는 모아 쥔 손 안에서 잠들고/ 김진수

√달력 도둑이 들다/ 이호준

√미세먼지를 날리다/ 서정임

 

 

1970년대 말 중국의 개혁과 개방을 표방했던 덩샤오핑이 펼친 경제정책을 다른 말로 흑묘 백묘 론이라고 한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말이다.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관계없이 중국 인민을 잘살게 하면 그것이 제일이라는 정책의 이름이다. 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흑묘백묘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어쩌면 최소한 시의 영역에서 인용할 무엇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다. 예를 들어 검은 고양이를 난해시라고 가정하고 흰 고양이를 비 난해 시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시를 쓰면서 시에 대한 그림을 머릿속에 먼저 그리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시제에 대한 문제를 생각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본문을 먼저 쓰고 시제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시제를 선정하면서 중요한 지점은 시 한 편에 담겨있는 나의 주장이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일종의 언술 혹은 진술, 묘사 등등을 담아낼 그릇이 필요하기에 시제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 쓰기의 하나이다.

 

현대시에 있어 시제를 정하는 것은 여러 가지 고려할 부분이 많이 상존한다. 단순하게 시제를 정하는 시인도 있고, 전체의 주제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은 후 본문이 연상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 일반적인 시제 정하기라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은 시제를 정하는 이 지점에서 흑묘백묘론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본문의 내용이나 표현이 무겁고 진중한 것을 이야기한다면 시제는 본문에 비해 가볍거나 다소 지근거리게 있는 것이 좋을 듯하다. 시제는 독자의 시선을 끄는 힘의 첫 단추이며 본문에 대한 부분적이거나 혹은 확대적인 심상이 떠오를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최근 현대시에 있어 시제의 몫은 시 한 편을 백으로 볼 때 50점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그만한 역할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시제 = 암시라고 생각하면 정확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암시에 빤한 암시가 된다면 어느 경우에 있어 본문을 읽은 필요조차 없게 만드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진달래/사랑/이별/눈물/빗물/봄/나는 그대에게/ 외로움의 방식/ 등등의 본문 내용이 짐작이 들게 시제를 정하는 것은 가능한 자제 하면 좋을 듯하다. 시를 읽는 독자 입장에서 볼 때 가장 먼저 시에 대한 첫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 시제라고 본다면 신선한 것에 방점을 찍을 것 같다. 본문의 내용을 유추하거나 짐작하기에 좋은 것보다는 그 반대의 경우가 시를 신선하게 만드는 것이 팩트다. 검은 고양이/ 흰 고양이라는 방식의 시제 짓기는 자칫 시를 식상하게 만든다. 우리는 쥐만 잡기 위해(쥐= 시) 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시라는 장르에서는 삶의 철학이 깃들어 있어야 하기에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를 절반쯤 섞어 회색 고양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좀 더 문학적인 측면에서 가치 있는 생각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2020년도 신춘문예 당선작품들의 시제를 보면 알 듯 말 듯한 명제를 시제화 한 작품들이 많다. (물론 신춘문예 당선작품들의 시제가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대시의 시제에 대한 경향을 보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2020 신춘문예 당선작 시제를 살펴보면 부산일보 당선작은 임효빈의 [도서관의 도서관]/ 경향신문 당선작은 박지일의 [세잔과 용석]/ 국제신문 당선작은 정희안의 [십자 드라이버가 필요한 오후]/전남 매일 당선작은 김범남의 [나머지 인간]/ 세계일보 당선작은 김지오의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매일신문 당선작은 최선의 [남쪽의 집수리]/등등이다. 모든 작품을 소개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필자의 논고에 맞는 부분을 일부 인용한 것을 밝힌다. 세밀하게 보면 위 인용한 시제들은 본문에 대한 추정을 하기 어렵다. 그나마 도서관의 도서관은 그런대로 짐작이라도 조금은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등은 전혀 본문에 대한 짐작을 할 수 없다. 필자의 요점은 본문에 대한 추정이 가능한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시제를 보면서 가장 먼저 느끼는 생각은 신선하다는 것이다. 시제만 놓고 보면 작가의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본문을 읽고 난 후 다시 시제를 보면 본문과 시제의 거리감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본문과 시제의 거리감이라는 말은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너무 가까운 거리는 시를 검은 고양이 혹은 흰 고양이로 만들 수 있다. 또한 너무 본문과 동떨어진 시제는 시를 좀 더 난해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본문 전체를 포용할 수 있으며 본문 전체의 구성 혹은 단어의 채집과 사유의 확장성을 고려하여 시제를 정하는 것은 검고 희다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즉 회색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전혀 낯선 시제를 대하고 본문을 읽은 후, 아하! 하면서 시제에 대한 감탄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시제라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시제는 시의 명함이나 시라는 집의 명패이기도 하지만 시라는 집에 사는 주인의 질감이기도 하다. 요컨대 명함이나 명패 같은 극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좋지만 더 좋은 것은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인이 갖고 있는 글의 질감이나 사유와 성찰, 생각과 시를 보는 직관이 질감이 신선하게 나타날 수 있는 시제가 좋다는 말이다. 그렇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이 검은 것, 흰 것이 아닌 회색, 시인 자신의 색에 좀 더 덧칠을 해야 본문이 더 살 수 있다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이다.

 

본문을 다시 생각해 보자. 시의 본문 역시 빤한 구성에 빤한 단어의 채집은 시 한 편을 휘익 한 눈으로 보게 만드는 경향을 만든다. 시쳇말로 시는 100점 만점 기준으로 시제가 50점 첫 행이 30점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필자는 시제, 첫 행, 본문 이 모든 것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지만 솔깃하게 된다. (필자 역시 독자의 한 사람) 위 언급한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김지오 시인의 작품의 첫 행은 “그때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로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다가 아니라 ”그때“라는 지점이다. 시를 읽으며 그때가 어느 때인지를 알려면 첫 행 이하를 주목할 수밖에 없다. 시제도 호기심을 유발하지만 첫 행 역시 시제 보다 더 많은 호기심을 부른다. 가장 좋은 독자 유인법은 본문을 읽으며 뭐지? 뭐지? 하게 만드는 것이다. 빤하지 않기에 주목하게 되고 빤하지 않기에 좀 더 생각하게 되고 검고 희지 않기에 질감을 추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본문과 시제 첫 행의 관계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양의 각도를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최종 방향성은 시적 질감이라는 것에 두어야 한다. 전혀 다른 것이 아닌 대동소이하면서도 다르게 보이는 기법을 사용하여 파란 하늘을 회색 하늘로 만들 때 시의 형상화가 잘 이루어진 것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묘사와 형상화는 분명 다른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같은 문제이기도 하다. 묘사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기본이다. 형상화는 형태로는 분명하지 않는 것을 어떤 방법이나 매개체를 통하여 구체적이며 명확한 형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시문학에 있어 형상화는 어떤 소재를 예술적으로 재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시문학에 있어서 묘사는 국어사전의 묘사와는 조금 다른 질감을 갖고 있다.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그것에 대한 자신을 생각이나 느낌의 옷을 입혀 다른 형태를 만들어 낼 때 잘 된 묘사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상이 있는 것과 대상이 없는 것은 중간지점, 묘사와 형상화의 중간 지점을 선택하여 시를 구성하게 되면 그것이 예술적인 재창조의 범주로 볼 때 [회색]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서로 다른 모양의 각도로 진행하다 결국 만나는 지점이 시인의 명징한 사유다. 묘사와 형상화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시인이 독자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이며 동시에 시의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묘사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있는 것에 (현상) 시인 자신의 옷을 입히는 것은 개별 시인 노력의 산물이며 사유의 깊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부분의 시가 그렇다. 묘사에서 출발하여 형상화로 진화하는 것이다. 단어를 단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가 품고 있는 그 단어의 배경을 어떤 눈으로 보는 가 하는 문제가 시인이 해결해야 하는 숙제인 것이다. 물론 어떻게?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것 역시 시인의 몫인 것이다. 어떻게 시를 쓰면 잘 쓰나요? 질문을 많이 듣는다. 이 말 저 말 좋은 말 다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타인의 관점이라는 것이다. 나의 관점, 시를 쓰는 나의 관점이 아닌, 질문에 답한 사람의 관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에 대한 답은 누구도 풀어줄 수 없다. 시를 쓰는, 쓰고자 하는, 이미 시를 쓰고 있는 우리 모두가 스스로 답을 찾아내야 한다. 물류창고를 본다. 모두 다 같은 눈으로 본다. 하지만 그 물류창고 속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것은 이수명 시인이 다르고, 내가 다르고, 당신이 다르다. 무엇이 있는지를 유추하는 것이 형상화라는 작업이다. 살아온 환경이나 삶의 범위가 다를수록 물류창고 속의 내용물은 다를 것이다. 시스템을 보는 사람, 운반하는 지게차를 보는 사람, 사람을 보는 사람. 그것은 마치,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구두부터 보게 되듯, 옷을 만드는 사람은 옷부터 보게 되듯 시선이 고정되게 되어있다. 옷과 구두를 만드는 사람은 옷과 구두부터 보게 된다. 그것이 형상의 확장이다. 구두만 이야기하는 작품과 구두와 옷을 이야기하는 작품 중 독자는 어느 것을 선호할지? 독자가 아닌 시를 쓰는 시인 입장에서 구두만 사유할지? 구두와 옷을 사유할지? 답은 필설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검은 것, 흰 것이라는 한 가지에 주목하는 것도 좋지만 시문학에 있어서는 검고 흰 것을 섞는 시료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회색의 시에서 검은 것과 흰 것을 뽑아내는 것은 어쩌면 독자의 몫인지도 모른다. 친절하게 이것은 검은 것입니다. 흰 것입니다. 하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 시다. 시를 잘 쓰려면 외곽부터 공략하라는 말이 있다. 외곽을 찾아내는 일, 아니 외곽을 만드는 일이 시인의 몫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이번 달의 소제목을 [검거나 희거나 혹은, 회색이거나]로 정했다. 누누이 강조 하지만 시는 정답이 없다. 정답은 정답을 만드는 시인 혹은 독자 모두에게 있다. 정답을 찾으러 다닐 시간에 정답을 만든다면 그것이 가장 잘된 시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달에 소개할 세 편의 작품은 위에 언급한 필자의 논리에 부합하거나 비슷하거나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질감은 같다는 점을 밝히며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김진수의 [후회는 모아 쥔 손 안에서 잠들고]라는 작품이다. 살면서 살아가면서 후회 없는 사람은 없다. 그 후회의 대상이 사람이든, 재물이든, 사업이든, 관계든, 사랑이던. 하지만 후회를 후회에서 멈추게 되면 다만 그것은 후회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후회가 사전적인 의미의 후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일들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며 후회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자기변명이 없어야 한다. 후회는 한자로 뒤늦게라는 의미의 (後)와 뉘우침이라는 의미의 (悔)를 사용한다. 후회에 대한 정의를 잠시 인용해 본다.

 

후회(後悔)는 이전에 자신이 내린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끼는 감정이다. 보통, 후회의 크기는 '크다/작다'로 표현되고 자신이 내린 결정의 중요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커지며, 반대로 낮을수록 작다. 만약 사람이 자신의 잘못에 후회를 느끼고 다음부터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한다면, 이것을 뉘우쳤다고 한다. 죄책감과 비슷하나 꼭 도덕적 또는 법적 의무를 위반했을 때에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

 

「위키 백과사전」일부 인용

 

시를 논하기에 앞서 후회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장황하게 인용, 설명한 것은 시인이 만들어 나가는 후회의 방식이나 후회로 인한 삶의 변화와 가치관의 변용에 대한 것을 미리 짐작하고 시를 읽는 것이 또 다른 매력으로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후회라는 일반적인 말에 대해 심도 있게 생각해 본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별 시인의 가슴에 들어가 어떤 작용을 하게 되는가를 살펴보는 것 역시 회색의 질감을 만드는데 매우 중요한 기반을 갖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후회는 모아 쥔 손 안에서 잠들고

 

김진수

 

손가락 사이에 끼어 기회를 엿보던 그가 허물을 벗는다

 

새끼손가락부터 힘을 주어 꼽다가

다시 곰곰이,

다 꼽아 가두어야 할지 아니면 멈추어 풀어놓아야 할지 종종거리는

 

저물녘, 귀에 익은 벨 소리는 자지러졌고

제발, 제발 애원하는 것 같았던,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고 수화기 저편에선 물 흐르는 소리만 질금거렸다

 

눈을 깜빡여 봐도 손안에 그를 가둘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마저 꼽지도 펴지도 못하는 당혹감

한 마디 뜯어 먹여 틈을 보인 새끼손가락 사이로 드러나는

그가 출구를 찾을 수 없을 때

끓던 마그마가 분노를 촉매로 솟구치는

 

죽어서도 한 곳에 머물지 못할 불새의 눈물은 그 빛을 잃고 말라붙어

 

아무리 오므려도 손톱은 미로의 비밀을 풀 수 없기에

길이를 늘려 그 날카로움으로 바닥을 파 헤쳐보아도 발굴되지 않는

주문이 가득한데

 

간간히 입소문으로 얻어들은, 그녀가 지금껏 왜 잊지 않고 있었는지는 탓하고 싶지 않다 그녀가 어떻게 살았고 그날의 선택을 후회 한다 한들 나의 저녁은 어제와 다르지 않을 테지만

까닭모를 그녀의 눈물이 지금 내 가슴골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미로 속에 숨겨 놓았던 그를 잠깐 끄집어내 바람을 불어 넣는다 부풀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려도 눈빛은 닿지 않아

 

술을 마시고 거리를 배회하고

퍼질러 앉아 가슴을 쳐보았지만 가라앉지 않던,

조율되지 않은 손가락 사이에서 불협화음을 연주하던 그는

자정을 넘기자 언제 그랬냐는 듯 숨 잦아들고

낯가림 심한 불안은 끝내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으름장을 놓기에

 

꿈을 불러 모은다

손가락 사이사이, 마디마디 흔적으로 남은 그의 안식을 위해

 

나는 두 손을 모아 그 안에 다시금 풀 수 없는 주문을 새긴다

 

 

살다 보면 수 없이 많은 이별을 하고 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무수한 이별 속에서 이별이 다만 이별이 아닌, 간직해야 할 무엇으로 남은 이별이라면 그 이별의 의미는 다른 이별이 갖고 있는 이별의 속성과 다를 것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 친구와 친구의 관계, 이웃집과 이웃의 관계, 이 모든 이별 중 가장 아린 것은 아마 첫사랑에 대한 이별일 것이다. 화자가 만들어 낸 이별은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이별이다. 후회를 넘어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드는 이별이다. 자책을 넘어 다시 뒤로 돌리고 싶은 이별이다. 하지만 그 이별은 그것으로 종료다. 다음부터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자기 연민의 뉘우침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별의 등식이다. 이미 모든 것은 끝난 뒤, 눈을 감으면 세상은 없고, 눈을 뜨면 다시 생기는 세상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이별의 무게가 무거워진다면 그 이별은 하지 말았어야 할 이별인 것이다. 하지 말았어야 후회에 대한 시인의 자책을 잠시 훔쳐본다.

 

간간히 입소문으로 얻어들은,

 

나는 미로 속에 숨겨 놓았던 그를 잠깐 끄집어내

 

부풀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를 끌어안고

 

저물녘, 귀에 익은 벨 소리는 자지러졌고

제발, 제발 애원하는 것 같았던,

 

이별의 현재 시점과 과거 시점에 해당하는 문장을 발췌했다. 오랜 이별의 끄트머리 어디쯤에서 통화가 되었고 잘 지내느냐는 간단한 인사가 전부였지만 화자의 기억 속에서 만들어낸 형상은 화자 자신의 자화상과 같은 생각들이다. 제발, 이라는 애원은 상대의 애원이 아닌 화자 자신의 애원이라고 추정되며, 화자가 만든 애원이라고 생각된다. 기억은 온전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기억의 대부분은 이미 훼손되어 재조립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조립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기성복을 사 갖고 수선집에 맡겨 수선하는 것이 기억이다. 내 팔에 맞게 내 다리에 맞게 늘리거나 줄이거나 몸에 맞추는 것이다. 그렇기에 후회하는 기억의 현상은 늘 내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기억의 단초라는 것 역시 나의 입장인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은 이미 이별했다. 남은 것은 오롯이 나의 입장에서 다시 만들어진 ‘기억’이기에 기억은 늘 아름답다. 어쩌면 이별의 끝은 어디에도 없기에 간간히 입소문으로 얻어들은 것이 아니라, 간간히 귀를 솔깃하게 세운 것이다. 술을 마시고 거리를 배회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연민 이전에 자신에 대한 연민이 먼저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별이 그렇다. 이별을 먼저 말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내가 먼저라는 것은 죄책감이 따른다. 어떤 형식이든 당신의 입에서 이별이 나와야 내가 편한 것이다. 적어도 나는 아니라는 자기변명으로 사는 것이 내가 먼저보다는 좀 더 수월하기에.

 

꿈을 불러 모은다

손가락 사이사이, 마디마디 흔적으로 남은 그의 안식을 위해

 

나는 두 손을 모아 그 안에 다시금 풀 수 없는 주문을 새긴다

 

모든 이별에서 누가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는 없다. 다만 그럴만한 이유와 그랬음직이라는 합리화와 그래야 했어라는 변명이 수반된다. 꿈을 불러 모으는 것도, 그의 안식을 위해 두 손을 모으는 것도 어쩌면 변명이다. 아니, 이별 후에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일 것이다. 화자 자신이 결구에서 말하듯 다시금 풀 수 없는 주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후회는 모아 쥔 손에서 잠들 것을 알기에 시인의 후회 방식은 안타까움, 회한, 되돌리고 싶은 후회가 아닌 시인 자신 후회의 방식으로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후회도 연민도 아닌 회색빛의 후회. 다시 생각해 볼 작품이다.

 

두 번째 소개할 작품은 이호준의 [달력 도둑이 들다]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언젠가 필자의 작품 속에서 언급한 적이 기억난다. 시제를 그리움이라 해놓고 본문에 단 한 줄 ‘아버지’라고만 써도 한 편의 좋은 시라고 말한...

 

화자는 도둑과 달력, 달력과 아버지, 그 속에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들었다. 아니, 아버지에게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아버지의 말을 빌어, 달력을 빌어 이야기한다. 제사 때마다 드리는 영혼 없는 절과, 우리들 입맛에 맞는 제사 음식에 담겨있는 형식에 치우친 그리움이라는 것의 실체를 가감 없이 단순하게 하지만 뼈를 담아 이야기한다. 부연하자면 아마도 제사는 더 이상 유산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요즘 시대가 그렇다. 제사는 우리 세대에서 지내는 마지막 조상에 대한 의례라는 느낌이 든다. 최근에 제사 대행업이라는 업종이 유망하다고 한다. 어느 종교단체 혹은 제사를 대행해 주는 업체에 맡기면 때마다 기일마다 한 상 가득 제수용 음식을 차려놓고 경을 읽어나 절을 하거나 하는 사업이다. 사업, 제사가 사업이 된다는 것, 사업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이호준의 작품 말미에 있는 말을 경각하게 만든다. ‘ 벽에는 달력 대신 꾸중이 잔뜩 걸려있었다.’ 바쁜 세상이고 할 일도 많은 세상이라 어느 측면에서 볼 때 제사 대행이라는 것도 수긍은 간다. 제사를 안 모시는 것보다 최소한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유교적인 습관에 젖은 필자 세대와 입장에서는 차라리 안 모시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경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영혼이 없는 절이나마, 우리 입맛에 맞는 음식들로만 채워 놓더라도 남의 손에 맡길 일은 아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바쁘거나 제사를 모시지 못할 형편이라도, 물 한 잔에 술 한 잔에 마음과 성의와 예의를 다 해 잠깐 고인의 넋을 기리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제사는 자신에 대한 예의다. 고인에 대한 회상과 넋을 기리는 것도 우선이지만 거듭 생각해 보면 제사라는 것이 반드시 귀찮은 허례나 의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사는 경건이다. 제사는 마음이다. 제사는 내 삶의 뿌리를 더듬어 보는 것이다. 나와 내 후손에게 ‘가족’이라는 유대관계를 상기하는 일이다. 음식의 가짓수나 절차의 반복이 아닌 일 년에 한 번 고인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달력 도둑이 들다

 

이호준

 

집에 도둑이 들었다 오늘 새벽 이었다

문은 단단히 잠겨 있고 열린 창문 하나 없는데도

도둑이 다녀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잃어버린 것을 확인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쪽 벽이 텅 비어 있었다

누가 달력을 훔쳐 간 모양이었다

 

그깟 달력쯤이야 사라진들, 웃다 말고 흠칫했다

아버지 제사가 언제였더라?

명지바람이 강을 건널 무렵이라는 건 알겠는데

달력이 없어지니 날짜가 막막했다

새 달력을 걸 때마다

헌 달력 갖다놓고 행사부터 표시했는데

이제 누구에게 아버지 오시는 날을 물을 까,

걱정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버지가 달력을 거둬가셨구나

저희들 입맛에 맞는 음식 한 상 차려놓고

영혼 없는 절 몇 번 하고

배 채우기 바쁜 아들 손자가 얼마나 섭섭하셨으면

그깟 제사 지내지 말라고 먼 길 다녀가셨구나

 

오늘 새벽에 집에 도둑이 들었다

벽에는 달력 대신 꾸중이 잔뜩 걸려있었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양력 밑에 음력이 있는 달력이 있었다. 가족들 생일이나 행사가 있는 날마다 해당 날에 동그랗게 표시가 되어있었다. 해마다 달력이 바뀌면 작년 달력을 보고 행사가 있는 날에 표시를 하여 기억하곤 하는 것이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모종 하거나 파종하는 날, 오촌 누구네 생일, 환갑 날자, 결혼 날짜, 당숙 기일... 등등의 행사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달력을 보며 미리 준비하거나 손꼽아 기다리는 것이 어르신들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요즘에야 스마트폰 일정표라는 편리한 것을 많이 이용하지만, 아직까지는 음력이 병기된 달력이 더 좋은 것 같다. 가족 구성원 모두 달력을 볼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그 표기된 달력이 잃어버린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그깟 달력쯤이야 사라진들, 웃다 말고 흠칫했다

아버지 제사가 언제였더라?

명지바람이 강을 건널 무렵이라는 건 알겠는데

달력이 없어지니 날짜가 막막했다

새 달력을 걸 때마다

헌 달력 갖다놓고 행사부터 표시했는데

이제 누구에게 아버지 오시는 날을 물을 까,

 

누구에게 아버지 오시는 날을 물을 까, 하는 문장에서 문득 나를 보게 된다. 그깟 달력 하나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준비해야 할 기억의 전부를 잃어버렸다는 것, 더 나아가 아버지의 기일을 물어볼 곳이 없다는 것, 한 번 더 나아가 나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허상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것에 시의 맥점이 있다. 달력 도둑이 문제가 아니라, 기일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모셔왔던 제사의 전부가 어쩌면 영혼 없는 절이었다는 것에 화자의 반성이 있다. 

 

아버지가 달력을 거둬가셨구나

 

화자의 이러한 생각이 좋다. 도둑이 아니라 아버지가 달력을 거둬 가셨다는 생각의 배후엔 자신에 대한 반성이 듬뿍 담겨있다. 의식처럼 제사를 지내고 주린 배를 채우기 바쁜 우리들, 어쩌면 제사라는 것의 진리가 그 속에 담겨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바빠서 못 만나고 연락도 못하는 가족 간에 모여 한 끼 식사라도 같이 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달력에 동그라미로 기표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수 음식을 아버지가 드시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나 한 끼 맛있게 먹고 싸우지 말고 다정하게 지내라는 것이 ‘제사’의 본 뜻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문한 필자의 생각엔 화려하고 수사가 많고, 깊은 배경지식이 많거나, 서양 철학자의 이론을 교묘하게 시에 인입해 풍성해 보이고 문학적 가치가 있는, 말 그대로 있어 보이는 잘 된 시도 좋지만 필자는 이런 작품이 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화자가 써 놓은 대로 따라 읽다가 문득, 눈물이 핑 돌거나 얼굴이 화끈해지거나 하다 나를 반성하게 되는 것. 시의 순기능을 문학적 가치에 두는 것도 좋다. 하지만 기본적인 기능은 삶 돌아보기가 아닐까 싶다. 글로벌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다. 동, 서양의 철학을 글줄에 갖다 붙여도 좋다. 그건 그것대로 좋아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잘 차려진 뷔페 음식보다 토종 된장찌개가 좋다면 부끄러운 일인가? 시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정확하게 존재한다. 시는 마음을 울리는 글이다. 영변 약산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님이 가시는 길에 놓아두고 싶은 마음이 유치하고 부끄러운 글인가? 어쩌다 한 번은 현상학이라는 학문을 이론의 토대 위에 놓고 재단하지 말자. 말 그대로 현상학이다. 시를 재단하는 것은 필요한 경우에만 재단해야 한다. 일상에서 시는 말 그대로 시다.

 

벽에는 달력 대신 꾸중이 잔뜩 걸려있었다

 

결구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면, 그리고 얼굴이 화끈해졌다면 모범 독자다. 그리움은 기억하는 사람의 몫이다. 이별은 보낸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것이다. 제사는 남아 있는 사람의 몫인 것이다. 일 년에 한 번, 그것이 그렇게 힘들다면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사는지? ane고 싶다. 이호준의 시 속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매우 세밀하게 세필로 그려져 있다. 자화상을 보는 사람과 보지 못하는 사람의 차이는 얼마나 클지? 묻고 싶다. 평 글로 쓴 매우 깊은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서정임의 [미세먼지를 날리다]이다. 최근에 사회문제로 종종 대두되는 스미싱, 피싱 등등의 사기 행위를 중국 발 미세먼지로 비유한 작품이다.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해외 발 미세먼지, 해외에 사업체를 둔 피싱 업체들의 전화사기, 그 모든 것이 해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지만 해외 사람들만의 행위도 아니지만, 사기라는 행위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당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런 반인륜적 행위들은 뿌릴 뽑아야 한다. (해외라고 표기한 것에 대한 양해를 구한다. 해외의 대상에 대한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성실하게 살아도 힘든 세상이다. 아닌 것을 맞다 우기며 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딸을 보호하고 있으니 돈을 송금하시오라는 전화를 받는다면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다 나도 모를 헛똑똑에 사로잡혀 송금 버튼을 누르게 된다. 지혜롭다면 딸에게 전화해 확인을 하겠지만. 누구나 그런 상황이라면 그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독자 여러분은 같은 상황에서 절대 침착하길 바란다. 우리나라 속담에 범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말은 가벼운 말이 아니다. 누천년을 이어 온 삶의 지혜를 속담이라고 한다. 화자는 그런 상황들을 매우 적절하게 미세먼지에 빗대 표현했다.

 

미세먼지를 날리다

 

서정임

 

낚시 바늘에 걸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아가미 걸린 눈앞이 뿌옇다

 

들려오는 울음소리가 드높다 집 전화기 속에서 간절히 나를 부르는

 

내가 딸려간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떨리고 호흡이 가팔라지는 폐부

우리는 때로 메꽃과 나팔꽃의 명확한 구분 앞에 혼동하기도 하는가

 

 

휩싸인 미세먼지 속에서도 익숙했던 길과 나무가 그림자처럼 보이고

후크를 누른다 이내 그 단호함 속으로 밀려드는 정적

 

마스크를 쓴 듯 터져 나오지 않는 음성이 딸의 안부를 묻는다

스마트폰 속에서 들려오는 밝고 맑은 목소리

 

견고히 닫아두었던 문이라 생각했던 빈틈을 비집고 들어선 미세먼지에 일평생 모아둔 돈을 한꺼번에 날렸다는 어느 노인을 말하던 친구는 국세청이라는 한마디에 통장비밀번호와 주민등록번호를 고스란히 불러주었다던가

 

깊은 숨을 내쉰다

허공에는 딸 아닌 딸이 딸을 가장한 미세먼지들이 떠돌고

그 낚시 바늘에 걸린 울음소리들이 뜨겁다

 

주목할 것은 시제가 미세먼지를 날리다 이다. 날린다가 아닌, 날리다 이다. 날리다는 내가 아닌 주체가 따로 있다는 말이다. 누군가의 날림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본다는 말이다. 미세먼지가 말리다/ 미세먼지가 날린다/ 미세먼지를 날리다/ 비슷한 말이지만 자세하게 보면 주어가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그 주어가 의미상의 주어이든 문법상의 주어이든 상관없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보여주는 시제다. 더불어 피싱이라는 단어를 적절하게 낚시에 비유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낚시 바늘에 걸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아가미 걸린 눈앞이 뿌옇다

 

피싱이라는 검거나 흰색이 아닌, 낚시 바늘이라는 회색을 사용해서 시적 환기를 했다.

 

내가 딸려간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떨리고 호흡이 가팔라지는 폐부

 

 

낚시꾼이 던진 바늘에 딸려가는 물고기의 심정은 아마, 피싱 사기의 습격을 받은 부모의 심정과 같을 것이다. 낚시꾼 입장에서야 미끼를 덥석 문 초릿대의 느낌, 손맛이 황홀하겠지만 그 반대에 존재하는 물고기의 심정은 초릿대의 황홀한 느낌이 아닌, 생명을 걱정하는 목숨이 달린 일이다. 피상이 그렇다. 사기로 가져가는 돈의 부피야 얼마가 되었든 그 돈의 역사와 돈이 만들어진 땀과 눈물의 부피는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화자는 지속적으로 피싱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며 긴장을 조성한다. 마스크와 스마트폰과 미세먼지와 바늘에 걸린 아가미의 상관관계를 나열하며 시의 본색을 드러나듯 아닌 듯 결론을 끌고 간다. 우리는 그런 구조를 문장을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라고 한다.

 

후크를 누른다/

 

낚시 바늘에 걸렸다/

 

마스크를 쓴 듯/

 

견고히 닫아두었던 문이라 생각했던 빈틈을 비집고 들어선 미세먼지/

 

그 낚시 바늘에 걸린 울음소리들이 뜨겁다/

 

화자가 만들어가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머리에 영상을 만든다. 누구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글의 배후를 화자도 독자도 모르는 척 따라간다. 따라가면서도 호기심을 유발한다. 알면서도 속는 척한다. 화자가 무엇을 더 포장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검은색이나 흰색이 아니면서도 회색의 포장을 덮어쓴 채 결구까지 달리는 시의 질주를 보며 꼬리 물기를 하는 필력을 감상하게 된다. 약간의 긴장을 더해. 시는 그런 것이다. 보여줄 듯 말 듯하면서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말 대로 다 하는 것. 서정임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 자연스럽고 적절한 비유를 의뭉스럽게 눙치는 재주가 탁월하다. 도너츠가 구워지는 오후에서도 즐거운 감옥에서도 서정임의 비유는 서늘하다. 검은 것과 흰 것이 아닌 회색으로 포장하는 언어적 기술이 뛰어난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작품이다.

 

한 해가 시작하고 벌써 4월이다. 베르테르와 목련의 사월이다. 하지만 예년의 사월이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팬데믹을 선언하게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발적 셀프 자가 격리를 하며 몇 달을 보내고 있다. 와중에 영세업자를 비롯한 경제적 손실이 가히 천문학적이다. 낚시 바늘이 없어도, 미세먼지가 없어도 우리의 하늘엔 안타까운 울음소리들이 뜨겁게 걸려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종료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것은 공포라고 한다.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좀 더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한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받거나 읽는 시점이 되면 코로나 종식이라는 뉴스를 접하면 좋겠다. 그 이전이면 더욱 좋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두 힘들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자제하고 참고 질병관리 본부의 정책에 잘 따르면 목련이 만개할 즈음, 백색 그 꽃의 끄덕거림에 마냥 즐거울 봄날이 올 것이다. 건강을 기원드린다.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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