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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십의 부록 /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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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강북수유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57회 작성일 20-04-1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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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십의 부록


  정숙자

 


  편지는 내 징검다리 첫 돌이었다
  어릴 적엔 동네 할머니들 대필로 편지를 썼고
  고향 떠난 뒤로는 아버님께 용돈 부쳐드리며 "제 걱정

은 마세요" 편지를 썼다
  매일 밤 내 동생 인자에게 편지를 썼고
  두레에게도 편지를 썼다
  시인이 되고부터는 책 보내온 문인들에게 편지를 썼고
  마음 한구석 다쳤을 때는 구름에게 바람에게 편지를
썼다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울 때는 저승으로 편지를 썼고
  조용한 산책로에선 풀잎에게 벌레에게 공기에게도 편지
를 썼다
  셀 수 없이 많은 편지를 쓰며 나는 오늘까지 건너왔노라
  희망이 꺾일 때마다 하느님께 편지를 썼고
  춥고 외로울 때는 언젠가 묻어준 고양이 무덤 앞에서 우
울을 누르며 편지를 썼다
  어찌어찌 발표된 몇 줄 시조차도 한 눈금만 들여다보면
모습을 바꾼 편지에 다름 아니다
  편지는 내 초라한 삶을 세상으로 이어준 외나무다리,
혹은
  맑고 따뜻한 돌다리였다
  편지가 있어 내 하루하루는 식지 않았다
  한 가닥 화려함 잃지 않았다
  편집봉투 만들고, 편지지 접고, 우표를 붙일 때마다
  시간과 나는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또 믿었다
  그리고 그 조그만 빛이 다음 번 징검돌이 되고는 했다

 

 

 -시집『열매보다 강한 잎』(천년의시작, 2006)

 

 

 

  편지하면 떠오르는 시인이 있습니다. 청마 유치환입니다. 청마는 여성들에게 많은 편지를 썼는데 1967년 교통사고로 홀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20 년간 한 여인(이영도)에게 사과상자 세 상자를 채울 만큼의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또 문학지망생 반희정, 강릉의 박명자, 목포의 김정숙 시인과도 편지 연락이 있었다고 하는데 생전에 그가 쓴 편지는 5000통 정도로 추정이 된다고 합니다.

 

  유치환의 시를 좋아하던 시기에 청마에 대한 책이 출간되었기에 사본 기억이 나서 찾아보았습니다. 그 때는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글인 줄 알고 있었는데 꺼내보니 반희정 편저 「내죽어 바위가 되리라」 입니다. 1980년 3월301일 초판 발행이고 책값은 2.200원 세로 쓰기로 되어있는데 반희정과의 편지가 ‘청마와 사색의 그림자들’(1970) 이 먼저 출간된 걸로 봐서 이 책은 제목을 바꾸어서 재출간된 모양입니다.

 

  이 책에 보면은 반희정과 유치환이 만나는 계기는 반희정이 유치환에게 문학모임에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만남이 시작되는데 수락하는 답장에서 독실한 기독교도인 반희정에게 '반 선생님께서 미리 알아주셔야 될 일은 내가 예수장이 질색으로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 혹시 어떤 무례를 저지를지 저어되는 것입니다' 하면서 초청을 수락합니다.

 

  당시 38살인 반희정은 14년이나 위인 청마의 첫 인상이 자기가 좋아하는 타이프가 아니었으며 어딘가 투박해 보이는 듯한 얼굴 모습과 걸걸하면서 여성적인 음성을 지니고 있었다 고 하는데 청마는 첫만남에서 자기가 여기 온 단 한 가지 이유는 반선생을 만나기 위해서 온 거라고 말을 합니다.

 

  반희정을 만나고 돌아오자마자 청마는 편지를 보내기 시작하고 몇 번 편지를 보낸 후에 청하靑霞라는 아호도 지어줍니다. 청마가 이영도를 만난 것이 37세였다고 하니 반희정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15년 후가 됩니다. 청마는 부인 권재순과도 주일학교에서 만나 편지를 보내 사귀고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그에게 있어 편지는 단순한 대화만이 아닌 듯 합니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에 그 많은 편지를 끊임없이 썼을 것이고 어떤 고독감이나 허무함, 애련의 정서에서 나오는 극한 외로움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쉰이 넘어서도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정열적인 편지쓰기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청마를 두고 평자는 '의지의 시인' 이라고 하는데 청마는 스스로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흔히들 나를 의지의 시인이라고 일컫는데 그것은 아예 틀린 판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판단은 나의 작품상에 나타난 경향을 보고 말하는 것 같으나 작품상의 그러한 경향은 어디까지나 나의 본질이 의지적인 아닌 때문에 그것을 갈구하는 나머지의 허세에 불과한 것입니다.  사실 나같이 흔들리기 쉽고  꾸겨져 쓰러지기 쉬운 비의지적 나약한 心志의 인간은 드물 것입니다.'

 


  의지의 시인이면서 아울러 비의지의 시인인 청마는 다분히 낭만성으로 편지의 산물인 고품격의 연시 「행복」을 남겼습니다. 시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일반인들의 연애편지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행복」은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시작이 되는데 반희정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시의 첫구절이 되는 글이 보입니다.

 

  '나의 청하에게.
  글 안 준다고 그렇게 짜증하셨는데, 오늘은 사진과 함께 받아보셨습니까? 청하는 세 번이나 글을 보냈는데 한 번밖에 안 보내니 밑진다고 이제는 안 쓰겠다고요, 그러면서도 글 주시니 당신 정말 고마워요. 그런데 진실로 애정에는 밑가는 일이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을 받은 이보다 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니 말입니다. 나의 따뜻한 사랑 속에서 당신이 봄풀처럼 살게 할 것입니다.' 로 쭈욱 이어집니다.

 

  그리고 대화속에서 청마는 '나는 노둔한 사람이요. 시를 쓰지만 요즘의 난해한 시들에 대해 실상 나 자신도 알 수가 없거든.....' 이라는 구절도 보입니다. 정확한 연대는 안 나와 있지만 50년대 후반기쯤인 걸로 봐서 현대 도시문명의 주지적, 감각적 기법으로 처리하는 후반기 모더니즘의 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제 편지를 우체국을 통해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습니다만 이전 시대에는 펜팔이라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연서를 보내놓고 답장이 없으면 받아보았는지 몹시 궁금하여 우체부가 지나는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는데 지금은 메일이라는 편리한 우체통이 생겨서 제대로 편지가 갔는지 뿐만 아니라 몇 시에 읽어보았는지 알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실시간 소통이 되는 카톡과 밴드라는 초스피드 창이 생겨서 궁금증도 그리움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편리한 시대에 청마가 살아간다면 오천 통이 아니라 만 통을 넘게 쓰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임보 시인은 부제목을 <시의 길을 가는 젊은이에게 띄우는 글>로 붙이고 시를 지망하는 한 젊은이에게 보내는 서간체 형식의 '시창작 강좌'를 쓴 글도 있습니다만 편지를 쓴다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이고 시를 쓴다는 것은 편지를 쓰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의 구절처럼 '초라한 삶을 세상으로 이어준 외나무다리. 징검다리 같은 맑고 따뜻한 돌다리, 마음 한구석 다쳤을 때는 구름에게 바람에게 편지를' 쓰듯이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요. 부모 형제간에 보내는 안부도 친구간의 소식도 연인끼리의 연통도 편지보다 문자나 휴대폰이 먼저 대신 하는 요즘 급한 일이 아니라면 사색을 겸한 긴 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떠실지. 꽃이 춤을 추듯 마구마구 피어나는 이 좋은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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