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하는 사람 / 이수명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체조하는 사람 / 이수명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15회 작성일 20-05-13 17:10

본문

체조하는 사람

  이수명




  나에게 체조가 있다. 나를 외우는 체조가 있다. 나는 체조와 와야만 한다.

  땅을 파고 체조가 서 있다. 마른 풀을 헤치고 다른 풀을 따라 웃는다. 사투리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대기의 층과 층 사이에 체조가 서 있다.

  누가 체조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일까.
  나는 구령이 터져 나온다.
  수목에 다름없는 수목을 잃는다.

  체조는 심심하다. 체조가 나에게 휘어져 들어올 때 나는 체조를 이긴다. 체조는 나를 이긴다.

  아래층과 위층이 동시에 떨어져 나간다. 나는 참 시끄럽다. 나는 체조를 감추든가 체조가 나를 영 감추든가 하였다.

  그렇게 한 번에 화석화된 광학이 있다. 거기, 체조하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 물끄러미 아침을 퍼 담는다. 체조라는 나에게 없는 대가를 가리켜 보인다.

  무너지느라고 체조가 서 있다.





  이수명의 『체조하는 사람』은 내가 육체를 통해 구축하려는 체조와 내가 무너뜨려야 할 육체의 체조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체조는 주어진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정한 순서로 움직이는 몸의 동작을 반복하고 외우면서 확립하는 육체의 형식이다. "나에게 체조가 있다"는 것은 내가 의식적으로 몸의 동작을 반복하고 외우면서 확립한 육체의 형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외우는 체조가 있다"는 것은 일정한 육체의 형식의 형식으로 확립된 체조가 육체에 새겨져서 내 의지보다 먼저 육체의 동작을 기억하고 불러오는 것을 의미한다.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체조의 형식과 내 의지와 무관하게 육체가 관성적으로 불러오는 체조의 형식. 시인이 확립하려는 시세계와 이미 확립된 시세계에서 관성적으로 씌어지는 시.   하나의 형식으로 완성된 체조는 육체의 특정 부위를 강화시키는 효과와 익숙함이 있지만 육체의 모든 부위를 강화시켜주지 않는다. 그 체조의 형식은 내가 확립한 것이므로 언제나 수행해야 할 의미가 없고 완전한 형식도 아니다. 체조는 본래 무정형의 형식이므로 체조의 형식은 없다. 체조의 형식은 그 '없음'에서 발생한다. 음악이 침묵 속에서 솟아올라 플루트를 통해 고유한 음색으로 현현하고 침묵 속을 드러내고 동작의 멈춤과 함께 사라진다. 무(無)의 체조와 내 육체의 체조와 수없이 많은 체조의 형식. 시인에게 하나의 시세계 확립은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절대적이지 않다. 시가 시인의 언어를 통해 하나의 형식으로 현현하고 고유한 시세계로 확립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지만 확립된 시의 형식으로 고착되어 관성적으로 씌어지는 시쓰기가 될 때 그 시세계는 무너뜨리고 무너져야 한다. 시인이 의식적으로 추구하는 시세계는 구축과 해체가 동시에 수행되어야 한다. "나는 체조와 와야만" 한다. 체조의 구축만이 있을 때 "한 번에 화석화된 광학이 있"고 "거기, 체조하는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시의 구축만이 있을 때 화석화된 시의 형식만 있고 시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체조는 "무너지느라고" 서 있고, 지금까지 씌어진 모든 시는 무너지느라고 씌어져 왔다. 지금 쓰는 시는 모두 무너뜨리고 다시 써야 할 시이다. 한 편의 시와 하나의 시세계는 시인의 언어라는 육체를 통해 구축한 시의 한 형식일 뿐이다. "체조는 나에게 없는 대가를 가리켜 보"이듯이 시는 시인에게 투명한 무(無)의 형식으로 있는 시를 가리켜 보인다.

    송승환 비평집, 『전체의 바깥』, pp. 152~155, 「육체의 형식과 시의 형식」 -이수명의 시 「체조하는 사람」에서.




  시를 날마다 쓴 적이 있다. 일기도 쓰는 것인데 날마다 쓰는 게 무슨 탓이랴, 면죄부를 주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므로 결국 그것들은 감정의 얼룩이었고 감상의 잎사귀였을 뿐이며 마음의 잉여이거나 여가선용이었다. 감정이나 감상이 나쁘다 탓하기 어렵지만 날마다 발생하는 느낌표를 시의 형식이랍시고 남발하는 것은 공부도 아니고 쓰기도 아니다, 라는 각성은 수년이 흐르고도 되질 않았고, 쓰기의 관성은 멈추지 않았다. 시의 공화국이라는 체제 안에 살기는 쉬워도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는 어렵다. 지상의 유토피아가 대부분 실패했듯이, 지상의 여타 믿음들이 구원이 아니라 동아줄로 묶은 커다란 관념이듯이, 시의 쳬계 안에서도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벨탑이 무너지듯이 절대적이라 믿었던 것들은 죄다 해체와 붕괴의 운명을 갖고 있다. 시는 끊임없이 돌연변이하는 이상한 종족이지만, 가끔은 특이한 족적을 남기기도 한다. 언젠가 가보았던, 공룡 발자국 화석지; 어떤 중력이 지상에 찍은 발자국이나 무늬를 감정이라 해얄지 감각의 파수꾼이 부려놓은 흔적흔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타성으로 구르는 무개차가 아니라 무동력 자가발전이라 믿는다. 자기 동력으로 정수리에 불을 켜고 무인도에 홀로 사는 인종처럼, 그 격지자와 나 사이에 시가 있다. ㅡ활's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40건 1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40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05 0 07-09
39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1 0 07-10
38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78 0 07-08
37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58 0 07-08
36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1 0 11-27
35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7 0 07-15
34
삵 / 김산 댓글+ 2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80 1 07-29
33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65 1 07-23
32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09 0 08-28
31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73 0 07-13
30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84 0 11-09
29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76 0 02-11
28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88 0 06-13
27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9 0 02-13
26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8 0 06-29
25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57 0 07-19
24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47 0 02-20
23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82 1 01-27
22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5 0 02-15
21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74 1 02-08
20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34 0 02-07
19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8 0 03-06
18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70 0 02-09
17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1 0 01-29
16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29 0 02-04
15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8 0 01-25
14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81 0 01-28
13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36 3 02-12
12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3 0 02-17
11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4 0 02-06
10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2 0 01-31
9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0 0 05-04
8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6 0 07-13
7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4 0 01-26
6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6 0 01-28
5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9 0 07-10
4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0 0 01-25
3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9 0 02-14
2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3 0 02-03
열람중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6 0 05-13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