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화 / 진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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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46회 작성일 20-07-27 02:45본문
목판화 / 진창윤
목판 위에 칼을 대면
마을에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골목 안쪽으로 흘러들어 고이는 풍경들은 늘 배경이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여자의
문 따는 소리를 들으려면 손목에 힘을 빼야 한다
칼은 골목을 따라 가로등을 세우고 지붕 위에 기와를 덮고
용마루 위의 길고양이 걸음을 붙들고
담장에 막혀 크는 감나무의 가지를 펼쳐준다
나는 여자의 발소리와 아이의
소리 없는 울음을 나무에 새겨 넣기 위해
밤의 골목 끝에서 떼쓰며 우는 것도 잊어야 한다
불 꺼진 문틈으로 냄비타는 냄새가 새어나오더라도
칼을 놓지 않아야 한다, 그쯤 되면
밤 열두 시의 종소리도 새겨넣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여백은 언제나 좁아서
칼이 지나간 음푹 팬 자리는 서럽고 아프다
지붕 위로 어두운 윤각이 드러나면 드문드문 송곳을 찍어
마치 박다 만 못 자국처럼 별을 새겨 넣는다
드디어 캄캄한 하늘에 귀가 없는 별이 뜬다
여자는 퉁퉁 불은 이불을 아이의 턱밑까지 덮어주었다
내 칼이 닿지 않는 곳마다 눈이 내리고 있다
* 201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작
< 소 감 >
사각사각 칼질 소리에서 물 흐르듯 새겨나오는 풍경이 정겹다
초롬초롬 돋아나는 화자의 사유는 목판위를 넘쳐 온 마을을 감도는데
시각에서 후각으로 청각에서 행위로 공감각이 슬쩍슬쩍 끼어들면서
삶에 대한 형성력이 돋보이고
칼이 지나간 자리마다 소박한 삶들이 자르르 별빛처럼 쏟아진다
칼끝에서 일어나는 서정이 재미있고 신기한데 자꾸 끈적거림은 무엇인가?
사람 사는 모습이겠지?
한 폭의 그림 같은 서사가 독자의 심상 속을 휘돌아 미지의 세계로 다름박질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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