木器에 담긴 밥을/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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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9회 작성일 20-08-10 08:21본문
木器에 담긴 밥을
유홍준
목기에 담긴 밥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수육을 먹을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생선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때가 올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인데
왜 수저를
왼쪽에 갖다놓는 거야
향냄새가 밴 나물, 향냄새가 밴 과일
목기에 담긴 술을 마실 때가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떡을 뗄 때가 올 것이다
나도 알지 못하고 너도 알지 못하는
글자들이 잔뜩 새겨진 병풍 뒤에서 동태를 살필 날이 올 것이다
나는 저 과일이 먹고 싶은데
내 아이들은 자꾸
고기 위에 젓가락을 갖다 올려놓는 날이 올 것이다
두 자루의 촛불을 켜 놓고 내 아이들이 자꾸 절을 하는 날이 올 것이다
목기에 담긴 부침개에 젓가락을 갖다 댈 날이 올 것이다
[시 감상]
올해처럼 사고가 잦은 해도 없는 듯하다. 코로나, 대형화재, 물난리 등등, 모든 사고 후에 밝혀지는 진실은 인재라는 말이다. 사람으로 시작하여 사람이 원인이 되는 인재. 누구에게도 삶은 소중한 법이다. 적어도 목기에 담긴 밥을 먹기 전까지는. 그 어떤 날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는 현재의 삶에 대한 처세술에 달렸다. 영혼이 담긴 밥상과 영혼이 안 담긴 밥상의 차이는 매우 크다. 산다는 것은 죽음 이후가 아닌, 죽음 이전의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정성스럽게 살아야 한다. 지금부터.[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유홍준 프로필] 경남 산청, 시와 반시 등단, 시작문학상, 소월 시 문학상, 시집 [나는 웃는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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