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필사본/ 김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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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16회 작성일 20-08-17 13:10본문
아버지의 필사본
김왕노
젊은 날 친구 현우와 새벽녘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와 마루 끝에 빈 병처럼 앉아 고개 주억거릴 때
너는 아버지를 속이지 못한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영락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나는 아버지의 후속편
아버지가 이 세상에 쓰고 간 필사본 한 권인 것이다
살고 살다가 삶이 서럽다 못한 분서갱유의 날에
나 한 권의 필사본으로 활활 분신하고 싶은데
하나 나는 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아버지가 남긴 역작
펼쳐진 나를 읽고 가는 숱한 바람과 빗방울
내 행간 행간에 스며드는 햇살과 구름과 목탁 소리
갈피로 스며들어 오래 머물고 가는 꽃 한 철
나는 그들의 베스트셀러
나는 그들이 서로에게 권하는 필독서 한 권인 것이다
[시 감상]
나이가 든다는 것은 닮는다는 말이다. 싫거나 좋거나 어쩔 수없이 목소리와 외양과 삶의 방식이 판박이가 된다는 말이다. 나는 계보에서 영원히 자유롭고 싶었고 독불장군이고 싶었으나 결국, 계보 속의 다만 다른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또 그 위 아버지의 아버지라는 계보는 정직하게 기록된 삶의 푸른 문장이었다. 닮고 닮은 우리들이 서로 닮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퇴주잔에 담긴 맑은 소주를 음복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각자의 필사본인 것이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김왕노 프로필] 경북 포항, 지리산 문학상외 다수, 시집[말달리자 아버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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