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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방에서 생긴 일 /최명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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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강북수유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78회 작성일 20-09-02 09:52

본문

승방에서 생긴 일

 

최명란

 

 

평창동 산꼭대기 오뚝 앉은 승방에서 한참을 놀다가
우리는 돌아오고 늦게 찾아온 그 여인은 승방에 남았더라
어쩌면 좋아요! 저 뽀얀 가슴살을 가지고 스님 혼자 있는 승방에 남았어요
스님이고 보살인데 어떨까 아니야 내가 알기론 앙증맞은 그 여인의 품에 스님은 몇 번이나 드나들지 몰라
아니 스님이 집적이면 여인은 귀찮아할까 멀쩡한 사지로?
시간이 더 늦어지면 돌아오기란 더 만만치 않을 텐데
집에서는 어떤 핑계로 나왔을까
여기서 밤을 지내기까지의 변명을 채워 넣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늘여놓았을까
내가 마음속으로 물었을 뿐인데 여인은 용케도 들었다는 듯
낮에 들꽃축제 갔다가 오는 길이라고
머리칼이 숭숭하고 화장도 반쯤 지워진 까닭을 설명하듯 말하더라
아니, 남편이 있는 여인일까 아닐까? 남편이 죽었을까 아닐까? 이혼했을까 아닐까?
여인은 토끼띠라 했는데 그렇다면 사십 초반의 나이
스님은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라니까 부녀관계 나이쯤은 좋게 될지 몰라
법당 일이며 설거지며 조금도 서투름 없이 척척 해내는데
나는 속으로 아하! 아마도 몇 번은 이곳을 드나든 솜씨다 싶어
그럴 때마다 스님과? 아이쿠 스님의 저 큰 머리를 어쩌나
나는 그만 자꾸 웃음이 쿡쿡 나서 애써 우스개로 시간을 모면했더라
밖에는 뜻 모를 바람이 울고 바야흐로 절 받으랴 고기 먹으랴 야단법석의 스님
승방에 오소소 앉아 있는 여인의 목덜미 위에 군림하며 천하를 호령할 듯한 스님
두 배나 되는 덩치로 여인을 버둥고 저 스님 어쩔까 싶어
명실상부 어떤 전투를 벌일 것인가 여인은 흐뭇해 고개를 끄덕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럼 여인의 귓불에 무당벌레처럼 딱 붙어있는 저 귀고리는 어찌할까
존엄한 혼인서약헌장은 어찌할까
그런 다툼에도 시비가 있을까 없을까
자리는 지옥에 깔까 천당에 깔까
법당에 계시는 키 작은 아미타불 여전히 눈을 내리깔고 못 본 척하시므로
허허만년 음양이 있어온 이래 암수 서로 엉기고 풀리고 죽어갔더라
스님의 바랑 속에 든 법이며 물이며 범패며 취기며 연(緣)이며 눈물이며 모두 고무줄에 재워서라도 한번 버팅겨 보시라
하룻밤 인간기생충이 되어 서로의 살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가 보세나
그럴 때 글쎄 등줄기에서 무수한 강물이 쫙쫙 흘러내리더라만, 웃을 일만은 아니라보네 마는
창자 속을 훑고 지나가는듯한 골목을 한참 지나 이른 평창동 산꼭대기
바늘 끝 같은 바람이 웬 창자벽에 그렇게 우수수 와 꽂히는지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서울 야경
하늘만 아니라 발 아래도 저렇게 무진한 지상의 은하가 있고나
그렇다면 여인의 저 얼크러진 머리칼 한 올 한 올에도 내일 아침 동이 틀 것인가 말 것인가

 

 

 

―시집『쓰러지는 법을 배운다』(램덤하우스, 2008)




  시가 감동이거나 깨달음이 있어도 시를 읽는 맛이 나지만 재미있는 시도 이렇게 눈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평창동 산꼭대기 승방이면 산은 북한산(삼각산)이고 절도 유추가 가능한데 여기서 어느 산 어느 절이 중요한 게 아니죠. 무언가에 들킬새라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가만가만 훔쳐보는데 햐! 관찰력과 상상력도 이쯤이면 가히 글 속에 홀딱 빠질 만 하지 않습니까. 어조 또한 자부자분하여 글을보고있는 사람을 글 속으로 막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승방에 밤 늦게까지 남아있는 사십 초반의 보살을 보면서 뻗어나가는 상상력이 절이 있는 북한산 주능선의 줄기보다 길고 재미있습니다.

 

  보살과 스님이라... 아니 어쩌면 남여가 한방에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생각만 해도 땀이 송골송골 날것 같은데 시 속에 나오는 보살은 화자의 상상력처럼 수많은 거짓말을 할 것 같기도 하고 복잡한 사연도 있어 보입니다. 아니면 우바이님께서 불심에 안기어 하룻밤 편하게 쉬어 가고 싶은 것을 속인이 피안의 눈으로 고정된 관념으로 온갖 편견의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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