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식당/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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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8회 작성일 20-12-03 18:04본문
심야 식당
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에서, 2019 -
* 이 싱거운 궁금증, 고작 이런 궁금증이 얼마나 귀한 요즘인가,
벗이랑 마주하고 먹든,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을 먹든,
맛을 맛으로 느낀다면 행복한 것이리라.
그것이 김치 국물의 맛이든, 새금한 맛이든,
시인은 고작 이러한 우리의 찐생활이 궁금하다.
그러나 시인의 시는 고작 이런 시가 아니다.
고작(高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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