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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詩人社會 - 오늘의 구름/ 서정임 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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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77회 작성일 20-12-2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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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은 詩人社會



- 김부회 시인, 평론가



* 오늘의 구름/ 서정임

* 표류/ 이인숙

* 줄눈 스케치/ 김영경



한 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한 해다. 시간이라는 강물에 작대기로 금을 그은들 강물은 변함없이 흐를 것이지만 새해는 분명하게 왔다. 올해는 신축년이다. 신축년辛丑年의 신辛은 하얀색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얀 소띠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하얀 소는 신성한 기운을 갖고 있다. 좀 더 확장해서 유추하면 신성한 한 해라고 볼 수 있다. 축丑은 계신기癸辛라고 풀이한다. 계신기가 두드러지는 달은 변수가 많다는 말이다. 좀 더 역학의 측면에서 분석하여 정리하면 이별 준비와 미련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첫 호에서 역학을 꺼낸 이유가 있다. 코로나다. 작년 초부터 시작한 코비드 19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었다. 다행히 올해는 백신이 개발되고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접종을 했다고 한다. 올해는 백신으로 인해 빠르면 상반기 늦어도 하반기 중엔 출구가 보일 것이라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렵다. 이 글을 쓰는 지금 2020년 일일 확진자 수가 최고점이다. 95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여 도시마다 병상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친다. 이 글이 독자에게 전달되는 시점은 연말, 연초다. 그때쯤 확산의 고리가 줄어들어 사회적 거리 두기가 1단계로 하향 조정되길 기원한다. 다시 신축년의 의미로 돌아가 본다. 신성한 한 해, 혹은 이별 준비와 미련의 한 해가 되길 바란다. 하얀 소의 신성한 기운이 코로나를 종식 시키고 인제 그만 이별해야 한다는 말이다. 2021 신축년 한 해가 변곡점이 되어 사람들이 사람의 집으로 돌아오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전처럼 평범한 일상을 회복한 어떤 날, 2020의 코로나가 또 다른 변화된 사회로 진입할 수 있는 시금석의 한 해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 해 첫 호를 시작하면서 글의 제목을 정하는 것에 상당히 많이 생각했다. 또한, 평론이라는 장르에 대해 깊이 고찰해 봤다. 필자의 글을 계속 읽으신 분은 짐작하겠지만 필자의 평론은 평론보다는 감상에 가깝다. 정통에서 벗어난 이런 방식의 글짓기는 때론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그 반대의 것을 갖고 오기도 한다. 장, 단점이 분명히 양립한다. 그런데도 이런 방식의 평론을 하는 것은 필자의 소신이다. 시는 감동의 공감이라고 해도 옳은 말이다. 평론 역시 공감이라는 것에서 벗어나면 다만, 평론이라는 장르에 머물 것 같다. 장르문학이라는 말이 있다. 판타지, 무협 소설 등등의 일정한 마니아층을 가진 문학을 이야기한다. 필자는 평론이 특정 마니아층을 가진 한정적 장르를 벗어나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언제 읽어도 공감이 갈 수 있는 보편타당과 개연성에 더해 가독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1% 혹은, 어떤 계층의 일부만 소유하고 해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일반론이라는 것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어쩌면 평론의 범주가 시에서 말하는 해체시解體詩 혹은 기타 정의된 것에서 머문다는 말과 같을 것이다. 시가 그래야 한다는 말이다. 1% 혹은, 어떤 계층의 일부에게서만 정의되고 수준이 결정된다는 것은 문학의 저변확대라는 말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대중성이 없는 문학은 중심을 잃은 어름사니가 된다. 대중성에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울림이다. 시인이 본 울림의 세계를 자기만의 표기법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구름을 부고장으로 읽는 것과 줄눈에서 삶을 보는 것이나 경로당에 처음 간 날을 삶의 표류라고 읽는 것이다. 그 모든 풍경의 배후를 감각적으로 풀어 독자에게 전달하면 되는 것이다. 새끼 꼬듯이 배배 꼬아 새끼줄을 만들 필요는 없다. 본대로, 느낀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거짓이 아닌 진심을 듬뿍 담아야 한다. 다만, 그것을 언술하는 방법은 시라는 장르에서 규정한 몇 가지 진술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것, 우리는 글이 아닌 (시)를 쓰는 것이라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시인, 시인이라는 말의 정의를 생각해본다. 시를 쓰는 사람이다. 동시에 시를 읽는 사람이다. 항간에 떠도는 말 중에 서글픈 말이 하나 있다. 시인 중에 시를 읽는 사람보다 시를 쓰는 사람이 더 많다는 말이다. 시를 읽는다는 것은 공부이며 기본이다. 시를 읽지 않는 사람은 7시 뉴스를 보지 않고 사회를 말하는 것과 같다. 매일 바뀌는 삶의 사조와 변화와 트렌드를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다른 사람의 시를 읽는 것은 시의 변화와 트렌드trend를 읽는 첩경이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부다. 나도 남의 시를 읽지 않는데 나의 시를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기적이며 위험한 일이다. 예를 들어보자.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어떤 사람은 고음 부분이 안 올라가거나 어떤 사람은 정확한 음정을 모르거나 박자를 따라가기 힘든 박치가 있다. 음치다. 음치 클리닉에 가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노래를 많이 들어라)는 말이다. 언어와 같다. 영어를 잘 말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듣기를 소홀한 발음은 엉망이다. 방언처럼 특정 계층만 이해하거나 심한 경우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게 된다. (자신도 이해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럴 것이라는 추정이다. 물론 특정 종교와는 상관없는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음치의 대략 절반 정도는 자신이 음치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남의 것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이 쓴 글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가장 좋은 시 쓰기 방법이다. 들어야 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아기 때부터 들린 소리를 따라 옹알이를 하다가 말을 하게 되는 이치와 같다.


간혹, 필자에게 글을 배우시는 분들이 있다. 대부분 조급하다. 시인이라는 허울과 환상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무작정 글을 쓴다. 좋은 시를, 멋진 시를, 시인님이라고 불러주는 호칭에 감격할 준비를 먼저 하는 것이다. 쓰신 글을 첨삭하여 보내드리면 즉시 답장이 온다. 다른 글이다. 첨삭한 글은 첨삭한 그대로 본인 것이 되고 다음 글을 보내온다. 별로 바뀐 것이 없다. 3/4 박자를 잘 맞추는 법을 말씀드렸는데 4/4 박자로 변환되면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필자의 첨삭에 대한 깊은 생각과 숙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조급하다. 다른 작품이라고 보내온 것은 다른 작품이 아닌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같은 작품이 대부분이다. 다시 생각해보자. 시인, 시인은 시인是認이다.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의 울림을 시인하는 것이 시인이다. 반드시 내 작품이 최고, 최선의 작품은 아니다. 다른 시인의 시를 읽고 그 울림에 깊이 감동하는 것이 시인이다. 시를 처음 배우고 시를 짓다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면 쉽게 지치는 분들이 많다. 대부분은 다른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는 안도현 시인의 작품은 안다. 시는 무수하게 많이 출간되고 세상에 나온다. 안도현과 정호승의 작품을 읽는 것도 좋다. 하지만 문단에 신예로 등단해 날카로운 예기를 뿜어내는 신예들의 작품도 읽어야 한다. 그들이 가진 신선한 감각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언어의 기술 방법, 시의 구성에 관한 깊은 번민과 고뇌의 순간들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 내 위치가 보인다. 어느 지점에서 당황하고 있는지, 어느 부분에서 멈춰있는지 내 글의 방향성을 짐작하게 된다. 필자가 시를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 권면하는 것은 (아직)이라는 말이다. 지금은 시를 쓰실 때가 아닙니다. 읽어야 할 때입니다. 시는 1 –2년 이상 타인의 작품을 읽은 후에 쓰시는 것이 좋은 시인이 되기 위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가장 기본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아직)에 대해서 시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스스로 시에 대한 권위를 만들고 스스로 시에 대해 겸손해질 때 비로소 시를 쓸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커피가 우리 삶에 들어와 일상이 되었다. 이름도 신기한 많은 브랜드의 커피집들이 동네에 그득하다. 싼 곳도 많지만 비싼 곳도 많다. 한 잔에 8,000원짜리 커피도 있다. 커피 한 잔과 담소를 나누며 삶의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한 잔 값이다. 시집 한 권의 가격은 커피 한 잔에 약간 보태면 신작 시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시집은 높은 가격을 매기고 달에 얼마 할부로 유혹하지 않는다. 시집 한 권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고 우린 그 인생을 엿볼 수 있다. 그 인생이 말하는 것에 공감하여 어느 한순간 울컥했다면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맞교환해도 좋은 것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공짜에 익숙하지 말자. 공짜로 얻은 것은 소홀하기 쉽다. 말 그대로 공짜라는 생각에 투자 대비 가치를 따지는 경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시집이 안 팔리는 시대라 그런지 몰라도 공짜로 배부하거나 보내주는 시집들이 천지다. 모두 생각해 봐야 한다. 무료 배부하는 시인은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닌지? 받는 독자는 무료라는 생각에 더 소홀한 것은 아닌지? 시가 독자에게서 멀어진 탓을 독자에게만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명징하게 생각해보자. 혹, 우리 시인이라는 사람들이 더 먼저 시에서 멀어진 것은 아닌지? 물론, 고마운 마음으로 보내주는 시집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준 것은 준 것이고 같은 책을 서점에서 한 권 더, 내 돈을 투자하여 사서 읽는 것은 배려다. 필자는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시집을 받는다. 아니, 필자에게 보내주신다. 고운 서명과 함께. 가능하면 서점에서 한 권을 더 주문한다. 보내주신 작가의 친필 사인본은 소장하고 돈 주고 산 같은 시집은 오래 낙서하며 밑줄을 그으며 너덜너덜할 때까지 읽는다. (물론 전부 다 그렇다고 하면 거짓말이다.)후에, 깨끗한 원본과 너덜너덜한 또 다른 원본을 같이 비교해보면 뿌듯하다. 8,000원짜리 커피와 비교할 수 없는 향기가 있다. 그 속엔 내가 바라보지 못한 세상이 있고, 갈 수 없다고 생각한 나라가 있다. 내 그리운 나라의 사본이 그곳에 있으며 미지의 이데아와 유토피아가 숨죽이고 있다.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다. 첫날 하고 싶은 이 말이다. 올 한해는 시를 쓰지 마십시오. 2021 한 해는 시를 읽기만 하세요. 올해는 한 달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총량을 조금 줄여 시집을 사세요. 문예지에 발표되는 시 한 편 한 편을 눈을 부릅뜨고 읽어 주세요. 그래야 당신의 작품을 누군가 눈을 부릅뜨고 읽습니다. 뭣이 중한데라는 말을 시에 붙이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당신의 작품에 영혼을 불어넣었듯이 시 한 편에 그들의 영혼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좋은 것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며 서서히 느껴지고 인식되는 것이다. 시가 그렇다. 당장 배고픈데 시 한 줄이 무슨 의미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다. 인생은 길다. 삶은 끝없는 배움과 공부의 연속이다. 당장 배고픈 것도 인생이지만 긴 것도 인생이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필자의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진심으로 권하고 싶다. 올해, 신축년의 올해, 2021 한 해만 한 줄의 시도 쓰지 말아 주세요. 그동안 읽었던 만큼의 시집을 읽어보세요. 10년을 읽은 만큼의 분량을 2021년 한 해 동안 읽어보세요. 다음 해에 여러분 모두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될 것입니다. 듣기 공부를 많이 했으니 유창하게 영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인詩人은 시인是認해야 시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가짜 시인이 아닌, 진짜 시인이 된다는 말이다.


신축년의 첫해 첫 호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삶이라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삶의 방향성에 대한 시인의 목소리들이 한 해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에 대한 바른 인도를 하는 것 같다. 이 글의 소제목인 시를 읽는 것과 관계가 밀접하다면 밀접하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을 선별하여 소개한다.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서정임의 (오늘의 구름)이다. 서정임 시인의 글은 필자가 몇 번 지면을 통하거나 신문의 기고 면을 통해서 소개한 적이 있어 익숙하다. 2020년 연말에 (아몬드를 먹는 고양이)라는 두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서정임 작품의 장점은 단아하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는 것이며 동시에 세상을 보는 눈이 따듯하다는 점이다. 때론 날 선 비판도 하지만 그 비판 속에는 답답한 세상에 대한 굵은 목소리가 포함되어 있으며 단호함 속에 부드러움을 겸비한 느낌의 작품들이 많다. 근친의 수사를 잘 이용하고 있으며 시적 비유가 선선하고 자연스러운 점이 좋다. 다작보다는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하는 열정이 글에 녹아있다. 소개하는 작품은 구름과 비에서 연유한 사람의 그림자. 갑자기 다가온 구름과 비와 부고의 관계에 대해 자기 생각을 촘촘하게 얹어 둔 것이 장점이다. 갑자기 내리는 비와 갑자기 온 부고를 연상하며 시를 읽으며 오늘의 구름이 예고하는 것과 나의 삶의 어떤 부분들이 겹쳐 보일 것이다. 본문에서 등장하는 (예상치 못한, 예고)를 생각하며 작품을 읽으면 더 좋은 공감이 구름처럼 다가올 것이다.


오늘의 구름


서정임


하얗다 올려다본 하늘

티끌 한 점 용납하지 않는 구름이다


유난히 하얗다는 것은 불안이다

흑과 백 어느 한쪽으로 마지노선을 그은

어느 한 사람의 굽히지 않는 소신이다


어디선가 포르말린 냄새가 난다

예상치 못한 이상기후처럼 멀리서 몰려오는 비의 행렬


부고였다

그것은 그동안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던

유난히 하얀 구름이 거느린 검은 날씨였다

그가 그를 위해 그를 애도할

이 세상 남은 사람들에 대한 말 없는 예의의 통첩이었다


그를 위한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그를 단 한 방에 떨어뜨린 절벽처럼

우뚝 선 빌딩 숲 위에 뜬

저 유난히 하얀 구름


추측이 난무했다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브라인드 속 죽음의 이유


흑을 모르던 백이 어느 순간 흑이 묻은 것을 알아버렸다거나

백이 더욱 백이고 싶어서라거나


먹기 좋은 아이스크림처럼 피어나는 말들이 뭉게뭉게

하늘의 선명한 파랑을 덮었다



하늘은 삶이다. 구름은 인생이다. 하얀 구름에서 서정임이 읽은 것은 어느 한 사람의 굽히지 않는 소신이라고 한다. 비스므리가 아닌, 소신이라는 말에서 시가 주장하고 싶은 주제의 단면을 읽는다. 작품은 긍정에서 시작하여 부정으로, 부정이라는 의미를 암시하면서 펼쳐진다. 하얀 구름이 몰고 온 것, 하얀 구름 뒤에 숨어있는 검은 날씨. 비는 부고라고 한다. 어느 날 예고 없이 날아온 부고 한 장.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지만 구름 뒤에 숨어있다 몰려오는 비의 행렬과 같은 것이 죽음 이기도 하다. 암시라는 말이다. 모든 행위 혹은 모든 풍경의 뒤에는 알 수 없는 예고가 존재한다. 예고는 미리 준비할 수 없는 것을 준비하게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예고는 불현듯이 다가온다. 삶이 그렇다. 삶의 하얀 구름 뒤에 숨어있는 것은 비의 행렬이다. 마치 어느 날 날아온 부고장과 같은 준비 없는 이별을 익숙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디선가 포르말린 냄새가 난다

예상치 못한 이상기후처럼 멀리서 몰려오는 비의 행렬


부고였다

그것은 그동안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던

유난히 하얀 구름이 거느린 검은 날씨였다

그가 그를 위해 그를 애도할

이 세상 남은 사람들에 대한 말 없는 예의의 통첩이었다


포르말린, 예상치 못한, 하얀 구름이 거느린, 이 모든 것이 암시하는 것은 말 없는 예의에 대한 통첩이다. 통첩의 사전적 정의는 결정된 것을 문서로 통보하는 것이다. 필자는 결정된 것이라는 것에 비중을 두고 읽었다. 운명이다. 특별한 어느 경우를 제외하고 우린 우리의 운명을 선택할 수 없다. (물론 삶과 죽음에 한정된 말이다.)필자는 운명의 부고에 대해 말 없는 예의와 통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저 예의가 아닌, 말 없는 예의다. (말 없는)을 예고 없는 이라고 바꿔 읽는다. 예의다. 구름이 몰고 온 검은 날씨, 비의 행렬, 부고, 이 현상 속에서 시인이 읽는 것은 예고 없는 이라는 말이다. 삶이 그렇고 운명이 그렇다. 오늘, 하늘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은 보이는 것이며 보이는 것의 그 너머 경계에는 보이지 않는 운명이 존재하고 있다. 그 운명의 속내를 살펴본다.


추측이 난무했다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브라인드 속 죽음의 이유


내리는 비를 보지 않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린 것인지, 최근의 코로나로 인한 어떤 죽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어떤 예고에 대한 결말과 브라인드로 대변하는 이유에 대한 의도적인 화자의 불분명을 말하는 것은 죽음의 이유조차 예고와 암시에 의한 것임에도 목적성을 두고 싶지 않은 시인의 마음이다.


그가 그를 위해 그를 애도할


이 부분이 시의 무게중심을 정확하게 잡아낸 것 같다. 그를 위해 애도할, 이라는 말속에 숨어있는 어떤 존재에 대한 형상화된 진술의 깊이를 볼 수 있어야 작품이 의도하고 있는 숨긴 메시지의 정답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를 위한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그를 단 한 방에 떨어뜨린 절벽처럼


대상이면서 대상이 아닌, 모호한 진술의 언저리에 숨어있는 (그)라는 존재의 암시성이 시를 무겁게 만든다. 문맥은 가볍지만, 행간이 깊다는 말이다. 쉽게 표현했지만 어렵다는 말이며 그래서 좋은 시라는 필자의 말을 섞을 수 있다. 필자는 서정임 시인이 다른 시인의 작품을 많이 읽는지 알 수 없다. 행간의 깊이로 유추하면 많이 읽은 것이라는 결론을 내고 싶다. 같은 상황과 풍경에서 다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시의 내공이다. 시의 내공은 끊임없는 겨룸에서 비롯되며 겨룸은 시 읽기라는 수련방법이다. 행간에 깊이가 있다는 말은 수없이 많은 행간을 읽었다는 말이다.


흑을 모르던 백이 어느 순간 흑이 묻은 것을 알아버렸다거나

백이 더욱 백이고 싶어서라거나


굽히지 않는 소신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어느 순간 묻은 것을 알아버렸다거나/ 더욱 백이고 싶어서라거나/ 소신은 소신이라는 말로 인해 소신의 겉을 벗는다. 소신이 소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소신이 소신에 불과한 소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쩌면 그것은 /그가 그를 위해 그를 애도할/이라는 행간에 답이 된다는 말이다.


하늘 = 삶

구름 = 운명

검은 날씨 = 암시

비 = 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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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는 말들이 하늘의 선명한 파랑을 덮었다.


이런 등식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서정임만의 어법이 좋다. 어쩌면, 단지 가정이지만 내 삶은 남아 있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는 척할 뿐이다. 부고의 순간에만. 결국, 나는 나를 위한 장례를 치르고 애도할 누구에게 말 없는 예의를 보내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추측이 난무했다


오늘의 구름과 구름 뒤에 몰려온 비의 행렬에 대한 정의다. 바로 (지금) 오늘의 속살이다.


두 번째 소개할 작품은 이인숙의 (표류)다. 나이가 들면 눈빛도 늙는다. 감정도 늙는다. 누군가는 늙는다는 것은 익어간다는 것이라고 했지만. 늙는 것은 늙는 것이다. 대개 공감하는 것이지만 열정도 기다림도 만남도 이별도, 그 모든 감정의 깊이와 폭이 확연히 좁아지고 얕아진다. 아무 일도 없는 어느 날, 어머님 눈을 봤다. 어머님 눈이 아니다. 때론 애잔하게 때론 따듯하게 때론 기쁨에 겨운 눈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난 눈이다. 어머님 눈을 읽는 내가 더 애잔하다. 하루에 한 번 경로당 다녀오시는 것도 힘들어하신다. 이인숙 시인의 (표류)에는 그런 감정들의 시발점이 있다. 난생처음 경로당에 간 날의 분위기와 나의 머쓱함 그것에서 비롯된 내 감정의 과잉과 본능이라는 의식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의 마음이 잘 담긴 작품이다. 이인숙의 작품 역시 매우 쉽게 쓰는 것을 선택했다. 주지하지만 시는 어려운 말을 쉽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독백처럼 써 내려간 작품의 행간엔 삶이라는 것이 강조하는 여정의 간곡한 Narration이 있다. 표류라는 시제 자체가 시다. 지금 공감하거나 얼마 뒤 공감할 수 있는 내가 있다. 필자는 그것을 울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울림의 반향이 얼마간 나를 두렵게 만든다. 준비하게 만든다. 간접 경험의 원칙이다. 서정임 시인이 말한 구름이 몰고 온 검은 날씨, 곧 내릴 비에 대한 Identity다.



표류


이인숙


처음 경로당에 간 날

늙음을 수백 번 확인했다

늙음의 집합소 또는 수용소

이전을 잊고 지금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

등 뒤가 먼 곳처럼 아득했다


문을 열면 한꺼번에 쏠린 시선들

어디에 눈길을 둬야 하지 어색함이 창밖을 응시했다

질문들이 쏟아졌다

증언대에 선 사람처럼 묘한 감정이 끼어들었다

대답할 이유를 모른 채 대답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과장법이 뛰어들었다

나는 절대로 버려진 게 아니다

나는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다

본능적으로 거짓말 위에 거짓말을 덧씌웠다


그런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땅거미 내리는 저녁을 한참 헤매다 되돌아왔다

표류의 시작이었다


표류는 정처가 없다. 정해진 것이 없다. 목적지나 방향에 대한 상실이며 동시에 감각의 상실이다. 전혀 낯선 곳에서 낯선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한다는 것은 내가 나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 만든다. 당혹이다. 준비하지 못한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과장하게 만든다. 그 과장의 행동의식 속에는 경계가 있고 보호 본능이 있으며 더 정확하게 지금을 인정하기 싫은 부정적 현실의식이 존재한다.


증언대에 선 사람처럼 묘한 감정이 끼어들었다


낯선 사람들의 낯선 질문에 대한 증언대에 선 것과 같은 감정. 증언대에 오르기 전 선서를 한다. 사실만을 말할 것을 다짐한다. 과연 우리는 삶이라는 증언대에서 사실만을 말할 자신이 있는지? 이인숙 시인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것에 대한 답도 한다. 당신들도 그럴 것이라는 전제를 의뭉스럽게 깔아두고 독백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한다.


대답할 이유를 모른 채 대답을 했다

아무렇지 않게 과장법이 뛰어들었다

나는 절대로 버려진 게 아니다

나는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다

본능적으로 거짓말 위에 거짓말을 덧씌웠다


장소는 처음 간 경로당이 아니어도 좋다. 살다 보면 처음 가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마주치는 순간들이 무수하게 존재한다. 대답할 이유도 모른 채, 아무렇지 않게 과장법이, 그런 환경과 상황이 인정해 주는 것은 과장법이다. 나이가 들었기에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이라는 (낯선)이라는 환경이 과장하게 만든다. 그것이 나이 들어 처음 가는 경로당이라면 더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나를 과장하는 그것에서부터 표류가 시작된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과 지금이라는 시간 앞에 선 사람의 모습, 그 일반성이다. 본능과 본능적이라는 것의 차이는 크다. 본능이 거짓말에 거짓말을 덧씌우는 것이 아니라 본능이 본능적으로 거짓말에 거짓말을 덧씌우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아닌데, 나이가, 세월이, 환경이, 낯섦이 본능에 본능적으로라는 핑계를 만들었다. 그것이 표류의 시작이라는 말을 다시 하게 만든다.


그런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와 나의 이율 배반 같은, 그래야 했던 나를 내가 포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숨기고 사는 것, 과장하며 사는 것을 포괄하여 경로당을 당겨왔다. 삶은 거대한 경로당이다. 모든 처음은, 모든 낯섦은 내가 나를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부정은 포장을 암시한다. 포장은 경계다. 내가 나를 경계하는 것. 처음과 낯섦에 대한 경계 너머의 경계, 내가 나를 경계하는 심리, 그 어려운 심리의 과정을 한 편의 작품에 엮어냈다. 의도적인 중의의 표현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작품의 복선은 그렇게 읽힌다.


시는 하나의 단어와 한 개의 행간으로 한 개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다. 행간과 행간의 연결은 다음 암시에 대한,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과 발견에 기인한다. 시를 읽는 것의 매력이 그 지점이다. (국한)이 아닌, (확장)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내가 바라보는 질감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그런 단서를 제공한 단어를 몇 개 인용해본다.


늙음을 수백 번 확인했다

늙음의 집합소 또는 수용소


나는 절대로 버려진 게 아니다

나는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다


위 행간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보자. 당시의 상황을 나에 빗대 읽어보자. 수용소가 암시하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자.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말에 대해,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다는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버려진 적이 없다. 우리는 모두 한 번도 불행한 적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버려진 적이 없다고, 불행한 적이 없다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필자와 독자 모두 시작해야 할 이인숙이 말하는 표류의 시작이다. 지금.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김영경의 (줄눈 스케치)다. 줄눈은 다 알고 있는 말이기에 부연 설명은 생략한다. 주목할 것은 줄눈과 줄눈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시를 발견했다는 점이 매우 신선하다. 일상의 모든 것이 시가 된다는 세간의 말이 무색하다. 단순하고 포괄적으로 말하면 삶은 그 자체가 시다. 시를 읽으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묘사다. 단순 묘사가 아닌 적절한 비유를 섞은 묘사다. 가끔 묘사 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필자의 생각은 무척 단순하다. 묘사 시는 묘사가 아니다. 描寫는 어떤 대상이나 현상 따위를 있는 그대로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나타내는 것이다. 묘사 시는 다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 따위가 그렇게 보이게 되는 과정, 결과, 혹은 풍경 너머의 것을 비유하여 나타내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김영경의 줄눈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묘사에 그치지 않고 묘사의 대상이 가진 의미를 구현했다.


줄눈 스케


김영경


뜯어내자는 것이다 드러눕고 보자는 것이다

후벼 파고 도려내고


아름다운 너 매끄러운 너에게 깊이를 더해야지

손목을 그어서


혼자 할 수도 함께 할 수도 있다

동업자나 전문가는


아름다운 넌 비명을 지르겠지 갈라지고 쪼개지면서

오 더욱더 아름다워지겠지 깊어지겠지 날카로워지겠지


어제는 흘러넘쳤다 오늘은 타일 공사를 해야지 종일 쪼아야지 쪼였다 풀렸다 온통

바닥은 범벅이 되겠지 흥건하겠지


흔들리는 말은 뜯어내거나 고정해야지 그러므로 하얀 줄눈을 쳐야지


돼지들은 범람하고 오늘의 선들은 반란 중

막아서는 오르막마다 죽죽 줄은 그어서 아름다운


오르락

     내리락


흘러넘치는 것들은 길몽이었다, 꿈이라면 칠갑을 해도 좋아라


다시 줄을 쳐야지, 선만 잘 그으면 모든 게 아름다워지는 거야 죽죽

긋기만 한다면


오래된 타일에 묵어있는 때를 벗겨내고 줄눈을 시공해 본 사람은 안다. 매우 힘든 작업이다. 세상의 線 이란 선은 모두 그곳에 있는 것 같다. 하고 나면 또 할 것이 기다린다. 후벼 파고 도려내는 과정이 지나면 매끄럽게 도포하기 위해 세심하게 다시 줄눈에 바짝 신경을 쓴다. 그것이 내 몸에 새겨진 묵어 오래된 줄눈이라면 더 신경이 쓰인다. 뜯고 파내는 과정이 그렇다. 흔들리는 말을 뜯어내고 고정하기 위해 하얀 줄눈을 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어려운 것은 언젠가 다시 뜯어내고 도려내고 후벼 파야 한다는 것이다. 반복이다.


다시 줄을 쳐야지, 선만 잘 그으면 모든 게 아름다워지는 거야 죽죽

긋기만 한다면


줄눈은 영구적이 아니다. 줄눈만 친다고 아름다워지는 것도 아니다. 죽죽 긋는다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줄눈이 없는 마루를 깔아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타일 공사를 하고 살 게 된 것이다. 나는 태생이 타일 바닥이었다. 흔들리는 말이 될 수밖에 없는, 다시 공사하다 보면 범벅이 되고 흥건해질 수밖에 없는 어떤 삶의 또 다른 바닥이라는 말이 들린다.


돼지들은 범람하고 오늘의 선들은 반란 중

막아서는 오르막마다 죽죽 줄은 그어서 아름다운


오르락

      내리락


돼지가 의미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다. 다만, 돼지를 돼지라고 읽는다. 그것이 본드의 일종이든, 삶에서 발견하는 돼지인 척하는 돼지들인지 모른다. 범람이라는 말에 주목한다. 차고 넘친다는 말이다. 적절하지 않고 적정하지 않다는 말이다. 줄눈을 쳐야 하는데 바닥은 온통 범람이다.


흘러넘치는 것들은 길몽이었다, 꿈이라면 칠갑을 해도 좋아라


이 행간은 반대로 읽어야 할 것 같다. 길몽이 아닌 악몽으로 칠갑을 하면 좋지 않다는 말로. 그래야 결구에서 말하는 것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각인할 것 같다.


다시 줄을 쳐야지, 선만 잘 그으면 모든 게 아름다워지는 거야 죽죽

긋기만 한다면


反語法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정을 선택했다. 흘러넘치는 것들을 길몽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돌릴 수 없는 것을 돌릴 수 있다고 돌리는 척을 했다. 그런 문장으로 시를 만들었다. 김영경의 작품에 높은 점수를 매길 수 있는 타당한 이유다.


혼자 할 수도 함께 할 수도 있다

동업자나 전문가는


이 작품을 읽는 모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전문가인가? 그도 아니면 동업자라도 지금 옆에 있는지? 아니면 바닥은 범벅이 되고 흥건할 것 같다. 전문가도 동업자도 없다는 것은 다시 줄을 치는 지금, 줄눈 옆에 범람하는 난장을 만드는 일인지도 모른다. 김영경 작품의 깊숙한 지점에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의 결계와 결계의 시작점이 있다. 그렇게 읽는다.



신축년이다. 신성한 기운의 한 해다. 부디 코로나가 극복되고 아무것도 아닌 그 흔한 우리의 일상이 다시 아무것도 아니게 느끼면 좋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창밖에 눈이 내렸다. 2020년 처음으로 눈다운 눈이 왔다. 하얗다. 질감이 따듯하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하다. 아울러 필자도 좀 더 생각 있는 글을 여러분에게 전할 것을 다짐해 본다. 하얀 행운을 드리고 싶다. 창밖에 제법 눈이 하얗게 쌓였다. 행운 더미라고 생각한다.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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