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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절/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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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45회 작성일 21-01-12 18:13

본문

좋은 시절 




김현





다 늙은 자식들을

타지에 둔 부모가

영혼을 단속하던 시절의 일


키우던 이 있었으나

버려진 새 한마리를 아버지 주워 와

쓸고 닦은 후에

홀로 두었다


우거졌다


어여뻐라

식물들의 일이란


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러 가는 아버지를 떠나보냈다가

마주했다


아버지도 새를 자식처럼 여겨

물 주고 기도하고

이름 붙여준 후에 이름을 잘 보살폈다

해피였다


어머니라면

여름이라 불렀을 것을

아버지가 어머니를 저세상에 둔 건

지지난해 겨울부터 지난해 봄까지

그해 봄 산 너머 뉴타운이 들어서고

아내는 감감무소식

앵두나무에 꽃이 달리지 않아

사람 잃은 아버지의 심정이

자식들 못잖게 어둑하여

마당에 분갈이용 흙이 수북했다


어머니는 식물에 정을 주고

그 정이 든 것을

어느 것 하나 가져가지 못했다

남겨진 자식들에게는 짐이 되고

남편에겐 병이 되던

봄에

도다리쑥국을 밥상에 올리고

쑥이 좋을 때니 먹고 힘내라

다 큰 자식들에게 기별을 넣던 둘이었다

아버지

밥상을 물리고

마당에 화분을 세워두고 물을 주었다

식물을 지나온 물은 참으로 우렁차서

바닥에 무늬를 남겼다

곁에서 소피를 보던 어머니도

참말로 있었기에 망정


어스름한 가운데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서면 

해피


쑥이 좋을 때니 먹고 힘내라


아버지는 어디에 올려놓지도 못하는 그것을

허벅지에 올려두고

밥을 먹고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깨운 건

그로부터 밤낮이 지난 일

마당에 물기가 사라지고

마른 흙 위에

해피가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어여뻐라

동물들의 일이란


우거졌다

어머니는

대문을 열고 닫으며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는 대신

앵두를 사 와 앵두주를 만들고

항아리에 담아두고

석달 열흘 앵두를 보았다

흰 새 한마리가

어머니 머리 위에 떨어져서

그것을 함께하였다

이번 비는 반가운 손님입니다만

어머니는 새를 쫓지 않고

받아들였다

아버지 밥상을 물리고

물었다

오늘 밤 몸 섞을까요?

아니요

그럼, 오늘은 편히 자겠소

아버지는 말 잘하는 해피를 칭찬하고

해피는 아버지를 내쫓지 않고

받아주었다


이렇게 시간이 가는데도

부모는 시간이 참 느리다

인생은 길어

살아생전을 그리워하다가

깨닫고는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림을 차린 게 이맘때였습니다만

자식들도 하나둘 죽었다



- 시집 <호시절>에서, 2020 -





* 이 긴 시를 타이핑하는 것만큼이나 시는 길게 호흡한다.

  길게 잠영하듯 읽지 않으면 재미없는 시지만,

  수면 속에서 잠시 고개를 내밀어 공기를 들이마시듯

  시를 한 홉 한 홉 빨아당겨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 해피의 시절이 흘러가고 있다.

  길다면 긴 대로, 짧다면 짧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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