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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로버트 프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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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0회 작성일 21-02-02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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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로버트 프로스트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 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걸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

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

오색 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

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 더미를 쓸어 치운다면

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내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 말라 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

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번 휜 채 오래 있으면

다시 꼿꼿이 서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여 세월이 지나면

머리 감은 아가씨가 햇빛에 머리를 말리려고

무릎 끓고 엎드려 머리를 풀어 던지듯

잎을 땅에 끌며 허리를 굽히고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얼음 사태가 나무를 휘게 했다는 사실로

나는 진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소를 데리러 나왔던 아이가

나무들을 휘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시골 구석에 살기 때문에 야구도 못 배우고

스스로 만들어낸 장난을 할 뿐이며

여름이나 겨울이나 혼자 노는 어떤 소년.

아버지가 키우는 나무들 하나씩 타고 오르며

가지가 다 휠 때까지

나무들이 모두 축 늘어질 때까지

되풀이 오르내리며 정복하는 소년.

그리하여 그는 나무에 성급히 기어오르지 않는 법을

그래서 나무를 뿌리째 뽑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나무 꼭대기로 기어오를 자세를 취하고

우리가 잔을 찰찰 넘치게 채울 때 그렇듯

조심스럽게 기어오른다.

그리고는 몸을 날려, 발이 먼저 닿도록 하면서,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땅으로 뛰어내린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자작나무를 휘어잡는 소년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아서

얼굴이 거미줄에 걸려 얼얼하고 근지러울 때

그리고 작은 가지가 눈을 때려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날 때면

더욱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이 세상을 잠시 떠났다가

다시 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운명의 신이 고의로 오해하여

내 소망을 반만 들어 주면서 나를

이 세상에 돌아오지 못하게 아주 데려가 버리지는 않겠지.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

하늘을 향해, 설백(雪白)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가는 것도 돌아오는 것도 좋은 일이다.

자작나무 흔드는 이보다 훨씬 못하게 살 수도 있으니까.



- 시집 <불과 얼음>에서, 정현종 역, 민음사 간, 1973 -








* 이 시집을 구하기 위하여 부산 서점 구석구석 찾아 헤매던 때가 생각난다.

  구했을 때의 그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특히 정현종 시인의 번역본이 내겐 가장 잘 읽힌다.

  [가지 않은 길],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 서서]가 두루 사랑받는 시지만

  내겐 이 시집 중에서 [자작나무]가 마음 깊숙이 와 있다.

  어려운 말 하나 없고 멋부리는 수사 하나 없지만 

  읽을수록 고개를 끄득이며 수긍하게 만드는 시다.

  걱정이 많아지고 인생이 정말 길 없는 숲 같을 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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