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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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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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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1활연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62회 작성일 21-02-09 10:57

본문

어째서

 

임솔아

 

 

 

  잊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가 잡혔다.

  어떻게 이런 걸 입고 다녔을까 의아해하다

  의아한 옷들을 꺼내 입어보았다.

 

  죽어버리겠다며 식칼을 찾아 들었는데

  내 손에 주걱이 잡혀 있던 것처럼

  그 주걱으로 밥을 퍼먹던 것처럼

 

  밥 먹었냐, 엄마의 안부 전화를 끊고 나면

  밥 말고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잊지 않으려고 포스트잇에 적었지만

  검은콩, 면봉, 펑크린, 8일 3시 새절역, 33만 원 월세 입금,

  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는다.

 

  까맣게 잊어버린 검은콩이 냉장고에 있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콩엔 왜 싹이 돋아 있는지.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

  곰팡이 핀 잼을 식빵에 발라 먹던 엄마처럼

  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엄마도 나처럼 주걱을 잡았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는 매일 주걱부터 찾아야 했을 것이다.

 

  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

  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

  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멈춰버린 시계를 또 차고 나왔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

 

 

【감상】

 

  임솔아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시인 소개는, "시인 임솔아는 시와 소설을 쓴다. 장편소설 『최선의 삶』이 있다."가 전부이다. 

 

  다행 중 불행은, 우선해서 읽는 시집 뒤편의 해설이 없다. 감을 잡으려 작정했는데, 홍시가 이마에 떨어진 격이다. 어쨌든 시집에 시만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다.

 

  "힘차고 세심한 상상의 기류/ 이미지의 변주 시도한 수작"의 이수명, 김기택 평이 있었던 「옆구리를 긁다」 2013년 중앙신인문학상은, "빈대가 옮았다'는 사실인지 모른다. 이 시인은 가려움이 첫울음이었다.

 

  시는 그만의 자장과 아우라를 가지면 충분하다. 시는 시로써 말하고 시로 읽힌다. 산문은 하루 수십 페이지를 적을 수 있을 테지만, 시에선, 마디마다 꺾이고 휘고 또 좌절할지도 모른다. 자꾸 밀어 넣어도 부피가 늘지 않는 공기처럼, 액체의 정신은 울렁거렸을 것이다. 시집 한 권을 읽을 때 눈알을 끝끝내 당기는 건 흔하지 않은데, 이 시집은 악력이 생긴다.

 

  이 시는 "꽃무늬 원피스"로 그 조각(피스)이 시작된다. 그것은 일단, "의아한" 것이고, 죽음(식칼)과 생존(주걱-밥)이 양날의 칼처럼 작동한다. "엄마의 안부"와 "아무거나" 사이엔, 호구를 때우는 일과 "다른 얘기"가 대조되면서, 화자의 독거가 쓸쓸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의 다음'(post-it)을 기억할 수 없다. "검은콩"과 "썩은 내" "싹"이 대비되고 대조된다. 상황이 물화(物化) 되어 좀처럼 기분을 알 수 없으나, 침묵 속에 우렛소리가 깃들어 있듯이, 화자의 복화술은 잔잔하고 처연하고, 또 처절하다.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그것을 봉합하는 행위는 "밥을 퍼서 입에 넣"는 것이겠지만, 칼이 주걱처럼 춤출 수 없는 일. 주걱이 칼처럼 "밥"과는 "다른 얘기"를 도려낼 수 없듯이 엄마로부터 유전한 혹은 대물림한, 주걱을 드는 일은 "눈을 뜨자마자"의 다반사일 수밖에 없다. 주걱에 걸쇠(ㄴ)를 걸면 주검이 되는 건 당연하지만 일용할 양식이 어찌 밥 뿐이랴.

 

  "밥맛은 어째서"와 "경이로움은 어째서" 이 부조화는 화자의 심중에서 비틀리고 있는 "꽃들의 모가지"일 것이다. 수미상관하듯이 이 시는 "꽃무늬 원피스"로 그 한 조각(피스) 혹은 평화(피스)로 말문을 닫는다. "멈춰버린 시계"는 다시 돌아야 하고, "어떻게 이런 걸" "어째서"의 엄마와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는 화자는 격지자이면서도 "싹이 돋아" "주걱"으로 밥을 퍼서 입에 밀어 넣는 생존 방식의 흡사(恰似)를 공유한다. 그것이 엄마와 화자의 상관관계이며, 썩은 콩에서 싹이 돋는 이유일 것이다. 

 

  "꽃무늬 원피스"는, 아름다운 한때의 평화였다. 엄마와 화자 사이엔 "잊지 않으려고"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 "새절역"이 있다. 

 

 

     ㅡ 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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