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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 김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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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1활연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85회 작성일 21-02-09 11:03

본문

언어는 사기다
─ 김경주, 외계(外界)를 중심으로

/ 활연



1. 외계(外界) 전문


외계(外界)

김경주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2. 사기

사기는 여러 뜻이 있다.
①[詐欺]: 못된 꾀로 남을 속임.
②[沙器/砂器]: 점토, 장석, 규석, 도석 등의 무기 물질을 원료로 하여 성형한 다음 열을 가하여 경화(硬化)시킨 그릇 따위의 물건.
③[辭氣]: 말과 얼굴빛을 아울러 이르는 말, 말하는 태도나 상태.
④[射技]: 활 쏘는 재주.
⑤[斜攲]: 산이나 언덕이 가파르게 기울어진 정도.
⑥[些技]: 변변치 못한 기예(技藝), 또는 사소한 기능.
⑦[肆氣]: 자기의 기분대로 성미를 부리고 함부로 행동함.
등등 많다.


3. 시인은 어떻게 사기 치는가?

우선 한 문장을 보자, "양팔이 없이 태어난 그는 바람만을 그리는 화가(畵家)였다"
'양팔이 없다', '바람만을 그린다'는 사기(⑦肆氣)다. 시인의 성미가 함부로 작동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화가는 지상에는 없고, 외계에나 있을 법하니까. 그런데 이 사기는 독자를 유인하는데, 독자를 감아쥐는데 그 악력이 압도적이다. 궁금증 대폭발이다. 이 사기(③[辭氣])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성공한 사례이다.

"입에 붓을 물고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을/ 그는 종이에 그려 넣었다"
이 문장은 사기(④[射技]) 충만한 사기다. 화가도 그렇거니와 화자도 불가능한 상황을 가역성으로 끌어들인다. '아무도 모르는 바람들'은 우리가 모르는 행성에서나 부는 바람일 테고, 그것을 '종이에 그려 넣었다'면 사기(⑥[些技])가 아니라 탁월이다.

"사람들은 그가 그린 그림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붓은 아이의 부드러운 숨소리를 내며/ 아주 먼 곳까지 흘러갔다 오곤 했다"
이 문장은 사기(⑤[斜攲]) 가파른 언덕에서 쏟아부으면 하얗게 흩어질 듯도 싶다. 붓이 부드러운 숨소리를 낸다면, 그 붓은 태초와 맞닿아 있다. 아이라야 시원(始原)에서 방출된 지 가장 이른 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초의 호흡과 같다는 뜻일 것이다.

"그림이 되지 않으면/ 절벽으로 기어올라가 그는 몇 달씩 입을 벌렸다/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색(色) 하나를 찾기 위해/ 눈 속 깊은 곳으로 어두운 화산을 내려 보내곤 하였다"
이 문장은 바람을 경화(硬化)시킨 사기(②[沙器/砂器])다. 온몸을 벌리고 그것도 절벽 끝에 서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하는 것, 그것은 세상에 없는 그릇에 세상에 없는 색(色)을 담는 일이겠는데, 바람으로 그린 색(色)은 아주 먼 곳으로부터 불어와야 가능하겠다. 귀하게 이걸 시라 부르기도 한다.

"그는, 자궁 안에 두고 온/ 자신의 두 손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문장은 그야말로 사기(①[詐欺])다. 우리가 경악해 마지 않는 바로 그 사악한 속임수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장에서 왜 전율을 느끼나, 왜 거대한 아우라와 자장에 휘감기나, 외계가 책상에 엎질러져 모든 필기구가 자지러지나. 그렇다면, 시인의 사기는 전략적인 사기였고 우리 선조들이 가마에 굽던 사기와 닮았다.

이런 지점에서 경이로운 개벽과 창조를 느낀다. 외계를 데려온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화자의 사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전도되고 전복되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전율을 오래, 자전시키고 싶다. 이것이, 시라는 사기의 전말이다.

그렇다면 이 시에 등장하는 화가(畵家)는 어디에 사는 누구인가. 대한민국 일산에 사는 김경주다. 그와 당대를 사는 희열이 느껴진다. 선조도 아니고 후대도 아니고 우리의 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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