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정복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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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8회 작성일 21-02-19 21:35본문
색채를 들고 다니는 아이들
정복여
알파색채 공장에서는
빛을 버무려 크레파스를 만든다
자동작업대 바닥을 지나온 양철 은빛은
창을 넘어오는 바람의 빛과 비의 빛 그리고
마른 꽃잎들을 모아
작업하는 스카프 속 흰 살빛을 버무려 색을 만든다
빛들을 꼭꼭 눌러넣은
서른여섯 개의 색들이 분류된 옷을 입는다
아이들은 투명한 가방에
색들을 넣고 다니며 그림을 그린다
달리아 꽃송이에 칠해지는 빨강색 위에서
팔각 작은 기둥에 가두어졌던 빛들이 뛰어나온다
나뭇잎 가깝게 떨어지는 고동빛과
아이 발등에 떨어져 양말이 되는 노랑빛
더러는 건너편 초록 기와가 되기도 하고
십자가 높이 뛰어올라가 회색 구름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꽃에 남아 있는 붉은 흔적을 들여다보며
그곳에 함께 있었던 바람과 소리들
그리고 젖은 꽃잎들을 이야기한다
저기 햇살이 길을 건너는 신호등 너머
비닐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아이들 작은 발꿈치에
수많은 색깔들이 따라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 시집 <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에서, 2000 -
* 서정주의 [상리과원]이 꽃과 아이들의 웃음이라면,
시인의 시는 색채와 아이들의 웃음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시의 이상향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서정주와는 또 다른 감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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