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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라이벌이 있어야 한다 - 검은 말이 온다/ 우유진 외2 -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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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556회 작성일 21-02-24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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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라이벌이 있어야 한다


- 김부회 시인, 평론가



* 검은 말이 온다 / 우유진

* 감정 편집 / 이서빈

* 기미幾微 / 지 연



  한해가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났다. 3월이다. 필자가 올해 첫 평론에서 부탁드린 것은 올해는 시를 쓰지 말자는 당부다. 두 번째는 시를 쓰더라도 너무 어렵게 쓰지는 말자는 말씀을 드렸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묻고 싶다. 필자의 말에 공감하고 실천을 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그저 소나기 지나가듯 스쳐보고 말았는지?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필자가 부정하는 말이다. 절대 바뀔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말에 숨어 있는 속뜻은 긍정이 절반이고 부정이 절반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당신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며 나는 절대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산다. 쉬운 말로 시쳇말을 인용하자면 ‘내로남불’쯤 될 것 같다. 타인에게는 단호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문제의 정답은 그 점에 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용을 베풀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단호해야 하는데 호모 사피엔스라는 타이틀은 그것을 정반대로 만드는 묘약 같은 명함이 된다. “Homo sapiens라는 표현은 라틴어 명사 homo(인간)와 동사 SAPIO*(현명하다, 슬기롭다)의 현재 분사형인 sapiens가 합쳐진 용어로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원래 SAPIO는 "향이 나다"라는 뜻이지만 비유적으로 "현명하다"라는 뜻으로 자주 사용됩니다.”


『다음 카페 라틴어 포털: 라틴어의 모든 것』 일부 인용.


  직역하면 슬기로운 사람 혹은 賢者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슬기로운 사람의 생각이 자기에게 한없이 관대한 것이라면 슬기로운의 칼끝은 잘못 설정된 것 같다. 물론 모든 점에서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최소한 학문, 혹은 문학의 범주 속 공부와 배움과 성찰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늘 칼끝은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해 본다. 누군가의 작품에서 "사과를 깎는 과도의 칼끝은 항상 내게로 향하고 있었다."라는 행간이 기억난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어느 시인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행간의 요지는 이렇다. '과일을 깎게 어머니에게 과도를 달라고 했더니 손잡이를 내게 내민 손잡이의 반대, 칼날의 방향은 어머니에게 있었다.'라는 행간이다. 대개 그럴 것이다. 누군가에게 칼을 주기 위해서 우린 손잡이를 타인에게 내밀고 칼끝은 내게 향하고 있다. 사람이 바뀐다는 말은 그런 것이다. 과도를 당신에게 전달하기 위해 칼끝을 내게 향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며 예의에 맞는 행동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 과도로 깎은 사과의 단맛을 기억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고 싶다. 사람은 바뀐다.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은 선택하는 사람의 몫이다. 칼을 쥔 사람의 몫이라는 말이다. 올해는 시를 쓰지 말자는 칼을 손에 쥐었다면 그 칼날이 자신에게 향해있어야 한다. 그것이 글에 대한, 시에 대한 예의다. 너무 어렵게 쓰지 말자는 칼을 쥐었다면 그 역시 칼끝의 방향은 나를 향해야 한다.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사유라고 말하는 ‘성찰’이다. 성찰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배달음식을 시키듯 전화 한 번에 집까지 갖다주는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다. 성찰은 사골을 우려내듯 핏물을 빼고 24시간 이상 우려야 비로소 맛볼 수 있는 진한 맛이 되어야 한다. 일상화된 것들 중에서 일상이 아닌 모습을 봐야 한다. 그 질감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 단련을 해야 한다. 더 많이 쓰기 위해 일 년을 쉬어야 하며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더 어렵게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시가 그렇다. 시 한 편에서 얻는 감동의 깊이는 무한이다. 반면에 시 한 편에서 얻지 못할 언어적 화의는 아무짝에도 효용 없는 무가치한 다만, 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글)이라는 말은 아픈 말이다. 시가 아닌 글이라는 말로 바꿔보자. 무가치한 것을 무슨 이유로 쓰는지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말장난에 불과한 글을 시라고 쓰면 안 된다. 말장난이라는 말에 발끈하여 필자에게 항의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필자에게 항의하기 전, 과연 내가 말장난을 한 것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내야 한다. 타인의 눈이 아닌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우리 때때로 그것을 망각하고 산다. 타인의 눈이 자신의 눈인 듯, 자신의 눈이 타인의 눈인 듯. 성찰은 자신의 눈으로 타인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다. 눈의 칼끝은 자신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슬기롭다는 말은 자신과 타인을 모두 포용해야 성립되는 말이다. 자신에게만 슬기로운 것과 모두에게 슬기로운 것은 다른 말이다. 이것이 올해 세 번째로 독자에게 드리는 당부다. 라이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Rival은 서로 겨룬다는 말이다. 겨룬다는 말은 경쟁자가 있어야 성립한다. 경쟁의 우선순위는 타인이 아닌 자신이어야 한다. 같은 분야에서 같은 목적을 위해 경쟁하는 사람의 상대가 자신이 될 때 흔히 말하는 시적 질감의 완성이 이루어지고 공감과 울림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 없는 시는 없다. 하지만 생각이 생각대로 전달될지는 의문이다. 필자가 강조하는 퇴고는 객관적으로 하라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초고는 주관적이지만 퇴고가 객관적으로 되어야 공감과 소통이라는 완성이 되는 것이다. 공감과 소통은 깊은 성찰만이 줄 수 있는 과실이다. 아무나, 누구나가 되어서도 안 되지만 동시에 아무나, 누구나를 만족시켜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그것도 말이 아닌 글로 내가 본 것을 당신도 같은 시선으로 볼 것을 유도하는 일은 설득 이전의 무엇이 존재해야 한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기 고백이다. 일종의 고해성사다. 삶이라는 유한의 시간 속에서 사는 일이라는 공식을 만드는 일이다. 고차원의 공식이 아니면서도 고차원의 풀이를 담아내야 하는 어렵지 않게 보이는 문제 풀이가 시다. 고해성사가 사람이기에 필요한 것이라면 바로 그 점이 시에 대한 정답이 될 것이다.


  라이벌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라이벌의 상대가 자신이 될 때 시의 문학적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라이벌의 기준을 타인에게 둘 때 시는 객관성을 잃고 주관적으로 된다. 옹알이와 같은 자기 말에 불과한 작품보다는 설득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작품이 될 때,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시를 왜 쓰느냐는 질문에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 역시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관성적으로 혹은 하던 일이라는 대답은 좋은 답이 아니다. 시는 허풍이면서 허풍이 아니다. 상상력이라는 범주 속에는 무한이라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허용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허용할 수 있는 공감의 영역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 문예지의 수록된 이승하 교수의 심사평을 잠시 인용해 본다.



중략...

그런데 모두 산문적입니다. 형식상 산문시도 있고 운문의 형식을 갖춘 것도 있는데, 문장은 왜 이렇게 긴지, 말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시란 맺고 끊는 맛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현대인들은 다 바쁘다고 하는데 시인은 촌철살인을 지향하지 않고 만사태평입니다. 일찍부터 영어를 배워서 그런지 중문(重文)이나 복문(複文)을 쓰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는 ‘일목요연’과 ‘정문일침’을 지향하기에 운문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다 읽어도 머리를 벙하게 하는 시가 아니라, 감동을 받아 머리가 멍하게 하는 시를 쓰기를 바랍니다.


『상상의 날개를 펴고 먼바다로, 시베리아로/ 이승하 중앙대 교수 심사평』 일부 인용


  위 심사평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감동을 받아 머리가 멍해지는 작품을 쓰자는 말이다. 다 읽고 난 후 머리가 벙해지는 작품, 혼란스러운 중문 형식의 작품, 촌철살인의 한 줄이 없는 작품, 난해로 포장한 그럴듯해 보이는 작품은 가급적 배제하는 것이 옳다. 자신만의 세계관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세계관을 모두의 세계관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기성찰의 눈을 만들어야 한다. 무한팽창보다는 유한팽창을 선택해야 한다. 유한 속에는 ‘한계’라는 단어의 속성이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쯤으로 해석하면 좋겠다. 유한의 한계가 아닌, 무한으로 인한 혼란보다는 유한으로 인한 포용과 범위를 갖는 것이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드는 일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라이벌의 기준을 타인에게 둘 때 시의 화의성은 증폭한다. 자신에게 둘 때 시의 질감은 다채롭고 신비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신만의 글 색을 보편화하는 것, 답은 자신이 쥐고 있다. 모두 시인이면서 모두 시인이 아니라는 말과 같다.


  정갈하다는 말이 있다. 형용사다. 모습이나 솜씨가 말쑥하고 깨끗하다는 말이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시인은 정갈해야 한다. 외양보다는 내면이다. 꾸미는 말이 많을수록 정갈하지 않다. 생각이 많을수록, 성찰이 많을수록, 사색의 바다가 깊을수록, 정갈한 시인이 된다. 라이벌의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나와 다른 것은 열등이나 우열로 판단하면 안 된다. 인정해야 한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숙이는 자세가 될 때, 완성형 시인이 된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우리가 시인이다.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앞에 내세우는 사람일수록 시는 얕은 물이 된다. 시 앞에서 겸손한 사람만이 등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 옳다. 시 앞에 시인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시에 포함되는 것이 시인이 될 때 비로소 좋은 작품 한 편 건지는 것이다. 여러 작품을 오래 읽고 교감을 해 보니 그렇다. 필자는 시인이 아닌 독자로 남고 싶다. 그것이 필자가 시에 대한 라이벌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번 달 글제와 부합되면서도 아닐 수 있는 세 편의 작품을 선별했다. 선별된 시인 세 분을 필자가 정확하게 어떤 분인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누군가 행동하지 않는 글은 죽은 글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면서 틀린 말이다. 성경대로, 법대로, 기준대로, 규칙대로 살기에는 많이 힘들다. 다만, 노력해 볼 뿐이다. 행동하는 글이 되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라면 변명일까? 앞뒤의 기준을 명확하게 해야 명징한 논리가 된다.


  첫 번째 소개할 작품은 우유진의 [검은 말이 온다]라는 작품이다. 말은 馬이며 言이다. 우유진의 문장은 교묘하게 비튼 흔적이 없다. 자연스러운 행간에 자연스러운 단어를 조합했다. 상상력의 확장을 위해 문장을 갖고 온 것이 아닌, 근친에서 쉽게 보이는 것에서 생각에 사유를 덧입혔다. 어색하거나 과한 공치사가 없는 점이 장점이다. 사유의 깊이에 질감을 입히는 것을 선호하는 시인으로 읽힌다. 검은 말과 검은 말의 차이를 되새기며 작품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시인이 말하는 살찐 말의 의미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기가 흐르는 살찐 말이라고 말하는 것의 속내는 분명 다른 효용을 갖고 있다. 필자는 이런 부분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자신의 라이벌. 그 경쟁을 통해 얻어낸 시인의 독립적인 질감은 매우 친근하다. 스르르 스며드는 느낌이다.


검은 말이 온다


우유진


아주 아주 작은 방에

둘러앉은 식구들은 입이 없다


고개를 돌리면 겹치는 눈동자

그 속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밀려오는 물결을 따라


검은 말이 온다


정교한 앞다리를 높이 쳐들기에는

방은 좁고 불편하였지만

자리를 내어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기가 흐르는 살찐 말이라고 믿었다


배고픈 밤 아껴둔 자유를 먹이 대신 내어주며

푸른 숲에 대해

숲을 이루는 나무에 대해 상상한다


벽 너머 한 점인 저 나무는

꿈속의 나무였고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영원한 꿈이라는데

커지는 나뭇잎 소리에 귀를 세우는 검은 말


구두 위에 구두를 신으며

검은 말의 크고 흰 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숲 냄새에

얼굴을 묻으며 식구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검은 말이 정교한 앞다리를 높이 쳐들기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 좁고 불편하다는 말이다. 검은 말이 의미하는 것과 우리의 현재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검은 말에게 자리를 내어준다는 말이다. 자리를 내어주며 필요한 것은/ 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리를 내어준다는 말은 의도적인 양보를 말한다. 의도적이라는 말은 뭔가 다른 계획이나 계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기가 흐르는 살찐 말/이라고 결론을 내렸으면 명징한 시가 될 수 없다. 단서조항을 달았다. 믿었다/라는 단서조항으로 인해 전체 행간이 검은 말에 대한 긍정문이 아닌 부정문이 된다. 믿었다/ 라는 말을 꺼내기 위해 깊이 성찰했을 시인의 흔적이 보인다. 이 흔적은 다만, 이 작품 한 편에서가 아닌, 시인의 생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말로 생각된다. 믿었다/라는 말이 가진 무게는 의도적, 비 의도적 을 배제하고 관성적으로 나왔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 부분을 여러 번 읽어보면 우유진의 세계관을 좀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검은 말이 온다


정교한 앞다리를 높이 쳐들기에는

방은 좁고 불편하였지만

자리를 내어주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기가 흐르는 살찐 말이라고 믿었다


  행간의 당위성과 개연성을 강조하면서도 시인이 놓지 않은 주제가 가장 강렬하게 돋보이는 곳은 6연이다.


벽 너머 한 점인 저 나무는

꿈속의 나무였고

꿈꾸는 사람들에게만 영원한 꿈이라는데

커지는 나뭇잎 소리에 귀를 세우는 검은 말


  우유진의 시적 기교가 돋보이는 행간이다. 시적 기교라는 말보다 시적 질감의 무게와 다채로움이라고 하면 더 옳은 표현일 것 같다. 벽 너머 한 점인 저 나무/역시 명제를 던지고 이어서 부정을 하는 방식으로 다음 단어를 삽입했다. 꿈속의 나무였고/ 라는 과거형과 꿈을 우아하게 배치한 점이 좋다. 벽과 한 점과 나무 = 꿈속이라는 고백을 한다. 고백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별개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나무

한 점

---------------

  꿈/ 꿈꾸는 사람에게만 영원한 꿈 (사람에게만을 주목해 읽어야 한다.)


커지는 나뭇잎 소리에 귀를 세우는 검은 말


  검은 말이 상징하는 것에 대한 개별적 해석을 마쳤다면 나무와 나뭇잎의 관계, 소리와 귀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결구가 답을 내렸다.


구두 위에 구두를 신으며

검은 말의 크고 흰 이 사이로 흘러나오는 숲 냄새에

얼굴을 묻으며 식구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구두와 구두가 상징하는 것들, 口頭, 句讀, 구두 등등의 구두에 대하여 검은 말이 오는 것을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의외로 시는 모든 긍정에서 부정이 출발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문학 장르인지도 모른다. 99%의 부정이라도 단 한 단어로 긍정을 강조하는, 아니 긍정의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포함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우유진의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은 이서빈의 [감정 편집]이다. 이서빈의 작품은 대체로 논리정연한 것이 특징이다. 특유의 섬세함과 차분한 감정의 기조가 적절한 행간으로 잘 표현된 것이 많은 것으로 기억된다. 감정 편집이라는 작품 역시 그간 이서빈이 보여준 큰 틀에서 어긋나지 않았다. 작품의 구도는 툭툭 던지듯 쉽게 말하는 듯하지만, 무게 있는 말들이 내포하고 있는 깊이가 깊다. 다른 말로 글의 외양은 의도적인 가벼움을 입혔고 내면은 촘촘한 무게를 갖고 있다면 맞을 듯하다. 감정 편집은 감정을 편집하지 않고 민낯의 감정으로 살고 싶다는 말로 해석하고 싶다. 편집은 의도한 방향이다. 기획, 편집 등의 단어가 가진 어감은 공통으로 인위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방향성이 이미 제시되어있는 현상을 말한다. 살면서 이미 정해진 방향의 표정으로 짓거나 감정을 만들거나 한다는 것은 어쩌면 재미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아름다운 화장은 민낯이라는 말이 있다. 민낯도 화장이다. 색조를 덧바르거나 기초를 바른다거나 마스카라를 덧칠한다거나 하는 것의 큰 범주가 화장이라면 민낯도 화장이라는 말이 가진 성찰은 매우 크다. 그런 관점에서 이서빈의 작품을 읽으면 이서빈의 손맛이 찰지게 다가올 것 같다.


감정 편집


이서빈


까마귀로 태어나고 싶진 않았지

어떻게 하면 사람으로 태어나는지 알지도 못했지

세대가리 부정不淨 혐오스러움 같은 말꾸정물 덮어썼지만

피눈물 감정 편집하며 군림하지 않고

경계도 긋지 않지

다만 육체 하나 지탱하기 위한

최소 먹이만 필요할 뿐

건물 주고 받으며

옥쇄 계급 노예 문서 만들지도 않지

절망 희망 같은 말 따로 분리하지도 않지

맘껏 세상 호령하던 시간들 사라질까 전전긍긍하지도 않지

인간처럼 빈부라는 말 자체 존재하지 않아

언제나 오늘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지

이 세상 모든 것들

지고 보고 먹는 것

잠시 임대 쓰다가 기한 끝나면 자연에게 반납하고

까아악, 검은 노래 한 방울 떨구고

갈, 뿐, 이, 야,


  어떤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의 부정적 Moral이 된 富의 불균형과 그것에 예속된 우리 가치관의 변용에 대한 비판일 수 있을 것이며 (자신에 대한 부분을 포함한다.)글과 문단, 현대시에 대한 비유적인 비판일 수도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빈부貧富의 자리에 詩를 놓고 읽어도 유사한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시라는 장르 역시 생활, 사회, 계급, 인식, 위치, 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악, 검은 노래 한 방울 떨구고/는 검은 노래 = 시라고 읽을 수 있을 것이기에 결구의 갈, 뿐, 이, 야, 가 울림이 되고 공감이 되는 것이라는 심증이 든다. 이서빈이 주목하는 편집된 감정의 편린을 모아본다.


건물 주고 받으며

옥쇄 계급 노예 문서 만들지도 않지

절망 희망 같은 말 따로 분리하지도 않지

맘껏 세상 호령하던 시간들 사라질까 전전긍긍하지도 않지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시를 주고받으며 옥쇄, 계급, 노예 문서 등등과 연계해 보는 것도 시를 읽는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이다. 절망과 희망이라는 말의 분리에서 시작하는 요즘 시대의 청년들, 그 감정의 편집이 가져올 세대와 세대의 단절은 상상하기 힘든 미래를 보여줄 듯하다. 어쩌면 세대 사이의 단절보다 더 큰 단절이 될 수 있는 요즘 현실이 유독 이서빈의 작품에서 더 깊게 느껴지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이 되었다.


언제나 오늘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지

이 세상 모든 것들

지고 보고 먹는 것

잠시 임대 쓰다가 기한 끝나면 자연에게 반납하고

까아악검은 노래 한 방울 떨구고

,


  특별할 것 없는 행간이다. 단어다. 구성이다. 기시감이다. 하지만 이서빈 만의 단어, 구성, 기시감으로 변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새롭다. 기시감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권장하고 싶다. 하지만 필자의 권장 속에는 이서빈의 작품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이서빈만의 질감이다. 체화한다고 하면 맞을 듯하다. 전체 문장이 개연성과 당위성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민낯이 돋보이는 효과. 이서빈의 글이 그렇다는 말이다. 기본이 단단한 작품은 쉽게 태클을 걸 수 없다. 평이함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각색하여 만드는 것은 자신과의 라이벌 경쟁에서 이겼다는 말이다.


/까마귀로 태어나고 싶진 않았지/


/다만 육체 하나 지탱하기 위한

최소 먹이만 필요할 뿐/


/,/


  위 인용된 부분을 주목해서 읽으면 더 즐거운 시 읽기가 될 듯하다.



  세 번째 소개할 작품은 지 연의 [기미幾微]다. 기미라는 말은 느낌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나 상황의 되어가는 형편을 말하는 것이다. 일종의 눈치라고 하면 더 쉽게 이해할 듯하다. 기미라는 한자어를 장황하게 서두에 놓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 연이 이야기하는, 눈치 챈, 눈치채고 있는 것들에 대한 선입견을 품고 작품을 읽자는 말이다. 필자는 글에서 선입견을 품고 읽지 말자는 말은 많이 했지만 선입견을 품고 읽자는 말은 처음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이나 사물 또는 주의나 주장에 대하여, 직접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리 마음속에 굳어진 견해가 선입견이다. 이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품고 읽자는 말이다. 왜? 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선입견을 품고 읽지 않는 것이 통례인데 갖고 읽자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답은 단순하다. 의표를 찌르는 행간이 많다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제시하는 제시어가 본래 의미와 다른, 혹은 본래 의미를 변용하여 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글의 진화가 숨어 있는 것이 지 연의 작품이다. 볕, 마루, 발치/에서 멈춘 것이 아닌, 모래를 갖고 온다. 발치와 모래는 근친성이 있지만 발랄한 상상이다. 볕이 나에게 흘러와 오래 앉아있는 거/ 그사이 내가 점점 작아지는 거/ 두 문장은 차별성과 동질성의 양면을 갖고 있다. 동질과 차별의 경계에 시적 자아를 은밀하게 감추고 있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다.


기미幾微


지 연


볕이 좋아 마루에 자주 앉아있었을 뿐이지

봄볕이 발치에 모래를 뿌려주었어


나는 모래 표정이 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어


웅덩이 같은 검버섯이나 파도가 흘리고 간 주름이나

크고 작은 모래알 속


볕이 나에게 흘러와 오래 앉아있는 거

그사이 내가 점점 작아지는 거


누구에게 나눠줄 것도 없이

볕은 쪼일수록 모래가 깊다


수영을 못하는 나는 아들을 등에 업고

바닷속을 잘박잘박 기어 다녔지


바닥을 잘못 짚으면 둘이 죽는 줄 알아

말 못 하는 다섯 살 아들은

내 목을 조이며 끌어안았어


괜찮아 바닥이 있어

자꾸 오그라드는 다리를 뒤로 뻗을 때


바닥에 낀 무의 물을 고등어가 빨아대는 것처럼

풀어진 살이 피를 뱉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손과 발을 늘어뜨리고 있어야 할 때가 있어


모래알로 남았다가

모래알이 되었다가

기별 없이 꺼져야 할 때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바다는 모레 가기로 했어


  필자는 이 작품을 읽으며 현대시의 메세지 전달방식을 새롭게 배운 듯하다. /누구에게 나눠줄 것도 없이/ 볕은 쪼일수록 모래가 깊다/에서 보이는 문장의 메신져의 역할을 눈여겨보게 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이런 구성방식이 시를 세련되게 만드는 것 같아 주제를 감상하기에 좋았다. 몇 단어를 인용해 독특한 점을 발췌해 본다. 발췌된 문장 혹은 단어의 상관성을 주목하는 것도 좋은 시 읽기 방법 증의 하나일 것 같다.


모래

수영아들

괜찮아 바닥이 있어

모래알

기별 없이 꺼져야

바다는 모레 가기로 했어


  늘 그렇듯이 필자가 소개하는 마지막 작품은 어떤 순위나 이름값 등이 아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숙제를 드리는 것이다. 좋은 작품에 대한 해설을 최대한 배제하고 독자만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풀어나가는 숙제를 드리는 것이다. 해설은 이미 1, 2 작품에서 많이 했다. 3번째쯤, 해설이 지루해질 때쯤 독자에게 드리는 실마리가 단서가 되어 나름의 기법으로 시의 진실을 추적해 보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방식의 시 해설이 더 공부가 될 것 같다.


바닥에 낀 무의 물을 고등어가 빨아대는 것처럼

풀어진 살이 피를 뱉는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손과 발을 늘어뜨리고 있어야 할 때가 있어


  위 인용한 부분에 시선을 유도당하지 말고 일독하길 권면한다. 주제 일 듯하면서 주제의 곁가지를 두는 방식이 새롭다. 바다는 모레 가기로 했어/는 모래알로 남았다가/모래알이 되었다가/ 두 문장과 같은 말이다. 필자의 생각이 그렇다. 오랜만에 좋은 구성의 작품을 읽었다.


  3월이다. 목련이 개화한다. 코로나로 지친 안구 정화를 해야 할 때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듯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눈을 떠야 세상이 존재한다. 일체유심조라는 말이다. 몫이라는 말이다. 내 몫을 만들기 위해 상춘의 봄을 기다릴 준비를 하자. 봄처럼 화사한 소식들이 여러 곳에서 꽃망울 터지듯 터지길 기다린다. 독자 여러분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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