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에서/안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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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87회 작성일 21-03-09 22:12본문
문턱에서
안미옥
요가학원에 갔다가
숨 쉬는 법을 배웠다
가슴을 끝까지 열면
발밑까지 숨을 채울 수 있다
숨을 작게 작게 쉬다보면
숨이 턱 밑으로 내려가지 못하게 되면
그러면 그게 죽는 거고
나는 평범한 바닥을 짚고 서 있었다
몸을 열면
더 좋은 숨을 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몸을 연다는 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공중에 떠 있는 새의 호흡이나
물속을 헤엄치는 고래의 호흡을 상상해
숨이 턱 밑으로
겨우겨우 내려가는 사람들이 걸어간다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두 눈은 붉은 열매 같고
행진을 한다
다 같이 모여 있다
숨을 편하게 쉬어봐
좀더 몸을 열어봐
나는 무언가 알게 된 사람처럼
유리문을 연다
- 시집 <온>에서, 2017 -
* 생명은 간단하다.
숨 쉬면 생명이 유지되고,
숨을 멈추면 생명도 멈춘다. 기본이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열어 숨을 마시고 뱉는다.
시인은 여기에다가 영혼까지 열어 시와 정신을 호흡한다.
시의 요가학원은 따로 없다.
오로지 읽고 쓰고 생각하고 배출하고 삼키며 터득한다.
말은 쉽다. 그 기본을 배우고 또 익히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시는 싸워볼 만한 놈인가 싶기도 하다.
마치 무하마드 알리처럼 스탶은 가볍게, 잽은 빠르게.
그리고 그 모든 가공할 만한 펀치는 숨, 즉 단련된 호흡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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