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은 너의 이야기가 너무 소란스러워/유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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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26회 작성일 21-03-12 17:04본문
말하지 않은 너의 이야기가 너무 소란스러워
유병록
지난주에 개봉한 영화와
플라스틱 사용이 거북이에게 미치는 영향과
지리산 자락의 이색적인 펜션과
요즘 인기 있는 가수와
결혼식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지
대화가 끊기지 않게
너에 대해 말하지 않기 위해
떠올려야 했지
너를
너와 닿아 있는 것들을
행여라도 말하지 않기 위해
침묵이 끼어들 때면 희미하게 들렸지
우리를 부르는 다정한 호칭이
등 뒤로 지나가는 것만 같았지
사뿐한 발걸음이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할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므로
다행히도
우리는 너와 무관한 이야기만을 나누었는데
안도하며 일어서는데
이상하게도
온통 너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것 같았지
- 시집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에서, 2020 -
* 이별한 연인이 지인의 결혼식에서 만나 모르는 척, 안 그런 척, 외면하는 장면이다.
뭐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게 쉽다.
쌍욕을 해대면서도 사랑은 어쩌면 아픔을 감출 수 없으리라.
사랑이 또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고 가수는 노래하지만,
사랑은 잊혀지는 게 아니라 묻혀진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묻으려 할수록 솟구쳐오르는 게 또한 사랑이니......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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