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꽃/김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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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겅퀴꽃
김승희
과거는 늘 외상값을 갚으라고 말한다
외상값을 갚아야 하는데
외상값을 못 갚고 사는 사람의 괴로움도 있지 않겠나
생각 좀 해봐라
수도원에 들어가서 남은 세월 참회나 하고 살까
뭐, 참외? 너 그 나이에 참외 농사는 못 지어
힘들어서
참외 농사가 얼마나 힘든데
엉겅퀴는 가시가 자기를 찔러 더욱 풍성하게 자란다
가시가 많은 꽃이 색채가 진해진다고 하는데
가시엉겅퀴, 까시엉겅퀴, 바늘엉겅퀴 꽃은 진한 자줏빛
참외 농사를 지을까 엉겅퀴꽃밭을 만들까
외상값이 하루하루 가속도를 붙여 올라간다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빚 중의 빚은 사랑의 빚이라는데
에잇, 외상값 떼먹은 년
외상값 떼먹고 도망가고도 오늘 웃고 있는 년
속으로 할 말은 많으나
외상값은 어쩔 수가 없는 엉겅퀴,
하얗게 두른 뾰족한 가시로 자기를 찌르며
안 아픈 척 더 풍성하게 피어 올라가는 야생으로 진한
자줏빛 두상화(頭狀花)
- 시집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에서, 2021 -
* 얼마전에 나온 새 시집이다.
시인의 시들은 대부분 끈적끈적한 심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과거는 늘 외상값을 갚으라고 말한다는,
첫 연이 시를 거의 완성해 놓고 시작한다.
나머지는, 그러니깐 그림으로 치면 덧칠이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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