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다가/유병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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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다가
유병록
움직이면서도 늘 그 자리인 그네처럼
흔들리다가
봄은 가고
여름이 와요
그 여름에 당신은 없어요
망설이지 말라고 말해주는 당신은 없어요
나는 또 그네에 앉아
가만히 있어요
망설이는 건 자꾸 멍청이 같아서
사람을 놓치고
기회가 지나갈 때까지 머뭇거리고
사랑을 빼앗기지만
망설이는 건 가끔 설탕처럼 달아서
걱정도 사라지고
후회도 멀어지고
저절로 많은 일이 없어지고
그네에 앉아서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가
내가 무었을 망설이는지도 모르다가
가을이 올 거예요
그 가을에 당신은 없을 거예요
망설이지 말라고 말해주는 당신은 없을 거예요
우리 무관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니
그네와 나만 흔들리고 있을 거예요
- 시집 <아무 다짐도 하지 않기로 해요>에서, 2020 -
* 망설이다가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그네처럼.
망설이는 건 때론 멍청이 같다.
그러나 망설이기에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도 한다.
결국, 사람이란 그네처럼 흔들리며 가는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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