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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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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위로/신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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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90회 작성일 21-06-15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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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의 위로 

 




 신철규 






 저녁 뉴스를 보다가 베란다에 나가 세상을 바라본다

 어두운 골목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진다

 

 오늘도 누군가 옥상에서 지상으로 몸을 던졌다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이 세계는 지옥이었다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른 사람은 불을 끄기 위해 바닥에 뒹굴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살 타는 냄새가 화면을 뚫고 나와 거실을 가득 메운다

 가슴 안에 불을 담고 사는 사람

 고개를 숙이고 자신 안의 절벽을 바라보는 사람

 오늘도 누군가는 사랑의 기억으로 옛 애인의 집 유리창에 돌을 던지고

 그녀는 유리 파편을 씹으며 사랑의 기억을 지운다


 마음을 받아주지 않아 몸에 불을 지르고

 몸을 받아주지 않아 마음은 잿더미가 된다


 나는 새로 도배된 벽 앞에 서 있다

 이전의 벽지 문양은 떠오르지 않는다

 벽은 끊임없이 나의 기억을 지운다

 자신이 고독하다는 생각이 그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가 있다


 낮에는 복음(福音)을 전하러 왔던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속옷만 걸친 왜소한 몸을 보고 그들은 흠칫 놀랐다

 아무도 없어요?

 그들은 열린 문틈으로 내 뒤를 곁눈질하고 나는 그들 뒤에 숨은 신을 의심한다

 네, 아무도 없어요.

 뒷걸음치다 벽에 부딪친 짐승처럼 그들의 눈빛이 떨렸다


 복도 난간에 놓여 있던 제라늄 화분이 떨어졌다

 산산조각 난 화분 가운데

 제라늄이 벌거벗고 바닥에 누워 있었다

 뿌리를 감싸고 있던 흙이 피처럼 흩어져 있었다


 위층에서 드릴 소리가 요란하다

 나의 천장은 당신의 바닥

 아내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언제쯤 소음이 아니게 될까


 유리컵을 부서지기 직전까지 꽉 움켜쥔다

 젖은 얼굴

 차가운 손바닥

 나라는 것을 엎어버린다면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을까


 밤늦게 돌아온 아내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눕는다

 내가 지금 부여잡은 당신의 손

 한 손으로 당신의 손을 잡았을 때 다른 손은 빈손이 된다

 그 수많은 손금 중에

 내 것과 똑같은 것이 하나는 있을 거라는 생각

 당신의 손금을 손끝으로 따라가다

 어디쯤에서 우리가 만났을지 가늠해본다

 서로의 머리카락을 묶고 자면 우리는 같은 꿈을 꾸게 될까


 밤하늘은 별의 공동묘지

 이 별에는 어떤 묘비명이 새겨질까

 별의 잿더미가 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까마득히 먼 거리가

 별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소음을 삼키고 있다

 빈 그네가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에서, 2017 -










 * 마치 남의 일기를 엿보고 있는 느낌을 주는 시다.

   또는 극단적으로 짧은 소설 한 편을 읽는 것도 같다.

   절제된 서술은 화려한 은유와 생략보다 낫다는 듯

   시는 민낯처럼 하루를 서술하고 있다.

   생각의 위로는 생각의 손금을 따라 별에게까지 이르고 있다.

   소음으로 소음을 지우는 이명 치료법처럼

   생각은 생각으로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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