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 식당/박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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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식당/박소란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충무로 진양상가 뒤편
국수를 잘하는 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우리는 약속도 없이 자주 왁자한 문 앞에 줄을 서곤 했는데
그곳 작다란 입간판을 떠올리자니 더운 침이 도네요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맛은 그대로인지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나는 고작 이런 게 궁금합니다
귀퉁이가 해진 테이블처럼 잠자코 마주한 우리
그만 어쩌다 엎질러 버린 김치의 국물 같은 것
좀처럼 닦이지 않는 얼룩 같은 것 새금하니 혀끝이 아린 순간
순간의 맛
이제 더는
배고프다 말하지 않기로 해요 허기란 얼마나 촌스러운 일인지
혼자 밥 먹는 사람, 그 구부정한 등을 등지고
혼자 밥 먹는 일
형광등 거무추레한 불빛 아래
불어 선득해진 면발을 묵묵히 건져 올리며
혼자 밥 먹는 일
그래서
요즘 당신은 무얼 먹고 지내는지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 2019
살다 보면
울컥,
소리 내 울지 못할 때가 있었지요.
누가 저에게 굳이 그 이유를 묻는다면
글쎄요,
그것은 아마도 당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때때로
바보처럼 참고 견디며 무작정 버텨야 하는 것이기에
그런 삶이 저에겐 너무나도 소중하다고 믿기에
당신은 하느님이 저에게 베풀어 준 거룩한 선물입니다.
당신에게 눈빛을 띠어 보내는 이 수줍은 저녁에
어슴푸레한 창밖을 내다보며
요즘 당신이 무얼 먹고 지내시는지
염치없는 안부를 띄워봅니다.
추천1
댓글목록
魔皇이강철님의 댓글

날건달 시인, 형님
내가 읽은 시에 시도 올리시고 좋네요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기를 희망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날건달님의 댓글의 댓글

고마워~^^
동생도
주말 잘 보내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