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탈 / 이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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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9회 작성일 21-07-26 02:50본문
이 탈 / 이성선
작은 내 집에 마당에 설악산에 눈이 가득 내리고 세상 분간이 어려운 날,
갇힌 나를 향해 방안 동백나무가 동백꽃만 붉게 피어 주던 날, 뜻밖에 선
생의 저서를 받았다. 겨울을 헤매어 눈 맞으며 찾아온 괴물, 다른 것은 다
두절 되었는데 그대 어찌 왔는가. 눈을 털고 봉을 뜯자 寒氣에 깡말라버린
高峯의 정신 하나가 갑자기 끈을 풀고 벌떡 일어나 내 무방비의 따귀를 후
려친다.
너 여기서 놀아라. 나갈 생각을 말 것. 번개 속에 귀신 더불어 천둥 벼락 혼
과 설악골에 살아라. 그 속에 침묵할 것. 위험 속에 몸을 던질 것. 마지막까
지 실패하여 최후에 꽃 잎 같은 피노을 한 장 덮고 죽을 것.
열었던 저서를 닫고 밖을 보니 그사이 눈은 더 아득히 쌓여 세상길은 이제
다 지워졌는데 갑자기 문에 날개 부딪는 소리, 나가 보니 큰 새 한 마리 무
리를 벗어나 거기 주저앉아 멀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땅에 없는 길 하
나 나를 찾아와 문 앞에서 산쪽으로 신발을 내려놓고 있다.
* 이성선 : 1941년 - 2001년 강원 고성 출생, 1970년 <문학비평> 등단, 시집
<이성선 시전집> 등
< 소 감 >
詩를 信峯하는 화자의 고고한 氣風이 겨울 밤 눈 내리 듯 가슴 깊이 덮쳐온다
필자도 산사 생활을 쬐끔 한 적이 있었는데 시를 읽다보니 그 때가 생각난다
저녁 무렵 방에 군불 때느라 설설끓는 가마솥 앞에 앉아 부지갱이로 불을 쑤시며
하염없이 쏟아지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보자니 지독하게 몰려드는 고독감!
바늘에 찔린듯 떠오르는 생각, "쏘주 한 병 들고 올걸" 두고두고 후회 했다
문학공부 일 년만 해봤으면 하는 것이 젊은 날 소원이었는데 십여년을 해온 지금
메타포 한 줄 만들지 못하지만 한은 없다
살 만큼 산 내게 비수 같이 꽂히는 화자의 한 마디,
- 마지막까지 실패하여 최후에 꽃 잎 같은 피노을 한 장 덮고 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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