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인/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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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인
김기택
허공 속에 발이 푹푹 빠진다
허공에서 허우적 발을 빼며 걷지만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
기댈 무게가 없다는 것은
걸어온 만큼의 거리가 없다는 것은
그동안 나는 여러번 넘어졌는지 모른다
지금은 쓰러져 있는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제자리만 맴돌고 있거나
引力(인력)에 끌려 어느 주위를 공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발자국 발자국이 보고 싶다
뒤꿈치에서 퉁겨나오는
발걸음의 힘찬 울림을 듣고 싶다
내가 걸어온
길고 삐뚤삐뚤한 길이 보고 싶다
- 시집 <사무원>에서, 1999 -
- 알베르 까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달의 이야기는 내 실존과는 아무 상관없다 했다.
실존주의의 입장에서 달과 우주의 화려함과 무궁무진함은,
내 발자국 하나의 가치도 없다고 일갈한다.
물론 과학자의 입장에선 섭섭한 말이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과학적 진보와 문명의 번쩍이는 발전 속에서도
나의 실존, 즉 나의 발자국이 나에겐 가장 중요하단 거다.
시도 마찬가지다.
나의 실존이 투영되지 않는 시는, 말 그대로 '달나라 이야기'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내 걸어온 나날이 삐뚤삐뚤한 길이라 할지라도,
나의 걸음의 무게와 거리는 내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시(詩)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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