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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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64회 작성일 21-08-22 18:46본문
가을비
신용목
흙에다 발을 씻는
구름의 저녁
비
거품처럼 은행잎
땅 위에 핀다
지나온 발자국이 모두 문장이더니
여기서 무성했던 사연을 지우는가
혹은 완성하는가
바람의 뼈를 받은 새들이 불의 새장에서 날개를 펴는 시간
고요가 빚어내는 어둠은 흉상이다
여기서부터 다리를 버리고
발자국 없이 밤을 건너라
희미한 꿈이 새의 날개를 빌려 사연을 잇고
흙투성이 바닥을 뒹구는 몸의 문장은, 채찍을 펼쳐
그 얼굴 때리는 일
- 시집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에서, 2007 -
- 요 며칠째 가을비가 문장처럼 내 얼굴을 때리고 갔다.
시를 쓰는, 쓰고 싶은 나를 채찍처럼 때리며 지나갔다.
무성한, 쓸데없는 사연은 모두 지웠다.
그러나 언젠가 그 사연들은 다시 생기를 얻어 내 생을 이을 것임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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