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손/안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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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4회 작성일 21-08-29 18:34본문
토마손*
안미옥
계단이 없는 육교 위에 서 있었다
세살 때 돌아가셨다는 외할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본 적 있는 얼굴일 텐데
다리 밑엔 횡단보도 표지판이 있었다
강물을 횡단하는 강물을 보았다
어제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이년 전에 들었던 말은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났다
나를 보면 뭐가 보여?
건너편 건물 이층엔 현관문이 있었다
창문들 옆에 나란히
누군가 한번쯤 열어보고 싶어 했다면
그건 나였을 것
오늘 날씨는 예전에도 겪은 적 있는 것 같다
공중에 매달린
없어진 식당의 간판
그리고
닫힌 계단
쏟아진 계단
닿아 있는 계단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것이라는 듯이
너무 많은 계단이 이상했다
매일
처음 살아보는 날이라는 말도
* 토마손은 건물의 개보수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 쓸모없는 건축물을 이르는 말.
- 시집 <온>에서, 2017 -
- 아마도 사람이 감동 받고 공감을 가질 때는 그것이 마음으로부터 이해되고 느껴졌을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경우,
읽자마자 내가 언젠가 어디선가 비슷한 걸 경험했었다는 동질감에 깊이 각인되었었다.
나라는 건물을 개보수하면서 너무 많은 쓸데없는 것들을, 필요를 넘어선 감정들을,
만들어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곤 했다.
우리가 좋은 시를 읽는다는 건, 이런 쓸모없는 것들을 정리하려는 마음에서 기인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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