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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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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의 방문객/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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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89회 작성일 21-08-30 19:54

본문

  몽유의 방문객 





  진은영






  너는 오겠지, 달의 해안에 꽃들이 하얗게 밀려오는 봄밤에

  너는 오겠지, 부서진 간판의 흐느낌을 가로수 검은 가지로 건드리는 여름밤에

  오겠지, 추위와 얼음의 투명한 발톱으로 다듬어진 소박한 식탁에

  부엌에서 다시 칼국수를 끓이려고 

  하얀 밀가루가 여주인의 손톱 사이에 실낱 같은 달로 떠오르는 밤에

  

  초록색처럼 사랑스런 연인이었네, 아닌가

  첫 눈송이의 흰빛으로 너는 사랑스러웠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가을밤의 어두워가는 남청색 코트 자락에 기어들어가

  별빛처럼 부드러운 국수 한 그릇을 나눠 먹었으므로


  꿈속을 걸으면서 너는 기억하네

  여럿이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크고 둥근 식탁*

  부드럽고 위태로운 장소의 이름 속으로

  너는 들어오겠지, 둘러앉아 우리 무얼 먹을까 궁리하며


  전기 끊긴, 낭만적인 유사 별밤에서 노래도 몇 소절 훔쳐왔다네

  아름답게 반쯤 감긴 눈으로 너는 기억할 수 있겠지

  옛날에 한 술꾼 평론가가 먼 기차 소리의 검은 아치 아래 등을 기대던 곳

  새벽의 투명한 술잔 속에 시인이 떨어뜨린 한점의 불꽃을 천천히 마시던 곳

  이젠 죽은 그가 천천히 걷다가 모퉁이를 돌아가며

  다른 이들의 노래로 가엽게 굽은 등을 조용히 숨기던 밤의 근처들


  기다리며 책을 펼치네, 토끼며 사슴 눈동자로 가득한 페이지를

  오고 있겠지, 너 오면 넘기자, 이빨이며 발톱으로 붐비는 날카로운 뒷장을

  너는 꿈에 취해 오겠지, 취기로 넘기자

  네가 오지 않아 부서지려는 곳

  건축업자가 청혼의 반지를 들고서 기다리는 그곳


  기다리네, 술 취한 돌고래처럼

  너는 오겠지, 너도 모르게

  부서지려는 약속의 순간으로

  오겠지, 아름다운 거짓말처럼


  우리가 꿈속에 서 있다

  녹색과 붉은 잎을 다 떨어뜨린 뒤에 서 있는 나무처럼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이 서 있다

  둥근 잎의 장소들을 다 떨어뜨리며 





  * 두리반.


  - 시집 <훔쳐가는 노래>에서, 2012 -





 

- 이 길고 복잡한 듯한 시의 맛은, '~ 오겠지'라는 기다림과 희망의 서술어에 다 들어있다.

  그것만 잘 붙들고 시를 읽으면 꿈은 나에게 노래 하나를 선물해 줄 것이다.

  소설이 엄청 길어도 절정의 한 단락으로 끝을 맺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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