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도 월식을 아는가 / 이경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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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1회 작성일 21-09-06 04:05본문
장미도 월식을 아는가 / 이경교
장미도 월식을 알고 있는지
제 몸에 불을 켰다가 다시 켠다
장미가 서둘러 불을 끄면, 마을의 문도 일제히 닫힌다
둥근 담장 길 따라 꽃잎 차례로 접힐 때
그대 문간 방에도
구름 커튼이 드리워진다
슬픈 전조는 창문에 어리는 낯선 실루엣에서 시작된다
저 그림자는 분명 내 것이 아니었으나
내 몸 깊은 곳에도 달빛 숨소리 박혀 있으니,
장미가 스스로 제 몸을 가둔 것처럼
이제 내가 그대를 감금하리라
그 스밈과 번짐을 위해 한쪽 그림자는 베어내야만 하겠지
담장 길 에돌아 등불 희미하게 걸릴 때쯤 장미도 마침내
문을 여는지, 목이 잠긴 나는 컴컴해지고
창문엔 핏방울 한줌 뿌려지겠지
* 이경교 : 1958년 충남 서산 출생, 1986년<월간 문학> 등단,
시집 <장미도 월식을 아는가> 등 다수
#, 지구 그림자에 가리워진 달빛 분위기 속에 담장을
오르는 붉은 장미가 음험한 등불을 켜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처연한 이미지는 담장을 에돌아 주름 커튼 드리워진
그대 창문에 비친 실루엣에 꽂힌다
(불꺼지는 그대 창 멀리서 바라보며 벅찬 아픔을 안고
나는 돌아서야만 했다)
월식 속의 장미와 그대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스밈과 번짐, 흐름과 멈춤이 마을을 휘돌아서 그대와
내게로 다시 돌아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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