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환상처럼 /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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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6회 작성일 21-09-20 20:45본문
하나의 환상처럼 / 김선우
- 에빌 킬레스의 문라이트(달빛)을 들으며
내 혈관을 짚으며 외계가 물었다
"다음 꿈, 인간입니까?"
대답이 소용없다는 걸 알지만 정성껏 말했다
"가장 오래된 울음이 피 도는 몸인 걸 압니다.
노래가 여기서 나오는 걸 압니다."
혈관 악기, 라고 기록되었다
본 적 없는 촉각의 문자였으므로 혀를 대보았다
비릿한 노을이 빠르게 스몄다
"절망마저 진부하다면 노래를 그칠 겁니까?"
나는 그만 문을 닫으려 했다
"인간을 지속 하길 원하십니까?"
문 밖이 조금 초조한 듯했지만
다음 꿈, 인간일까?
지금 저질러온 인류사만으로도
인간과 꿈은 지독히 먼데
"살아있는 동안 쓰는 일을 계속할 뿐입니다"
시를 쓰는 자로서의 내 유일한 능력은
무엇이 되려는 꿈을 흩어버릴 수 있다는 것
관 밖에서 누군가 훌쩍거리는 것 같지만
나는 노래를 이어가기로 했다
오늘 밤은 피아노에 어울리는 혈관악기로서
* 계간 <발견> 2019년 겨울호에 발표
#,
문라이트(달빛)곡의 감미로운 흐름 속에 화자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시상이 아니면
느껴볼 수 없는 생경한 분위기에 독자도 도취된다
외계와의 대화, 독백에서 표출 되는 불확실한 심상이 혼미를
거둡하면서 독자도 스스로의 사후를 추측해보는 계기로써
인생 최후의 선택 기로에 선 화자는 마침내 시인은 역시 시인이구나
하는 마지막 결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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