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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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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파일명 서정시/나희덕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69회 작성일 21-10-10 15:37

본문

  파일명 서정시* 




  나희덕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줌

  손톱 몇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 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통인지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 Deckname [Lyrik]. 구동독 정보국이 시인 라이너 쿤째에 대해 수집한 자료집.


  - 시집 <파일명 서정시>에서, 2018 -






-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서정시가 의심 받던 시절.

  그러나 이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그림자다.

  지금, 아무런 의심도 없이 서정시로 읽히고 있는 시들은 진정 서정의 들판에 서 있는가,

  의심해본다.

  또한 나는 서정의 마음 뜰에서 거닐고 있는지도 자문한다.

  때론 위험은, 가장 한가로운 시간에 예고도 없이 찾아올 때가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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