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른 뿔을 세우고 / 장만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33회 작성일 21-10-11 06:33본문
무른 뿔을 세우고 / 장만호
어느 모진 장도리가
이 많은 못들을 죄다 뽑아놓고 갔을까
풀숲 언저리에
지천으로 널린 지렁이들
녹슬고 휜 못은 까치도 안 물어간다는데,
흔들리는 풀숲을 두고
달팽이는 또
어디로 갔나
빈 집에 깨진 자물쇠 하나 얹어두고
그 안에 적막 한 타래 감아 놓고
똑 똑,
연적에서 떨어진
몇 방울의 시간들은
어느 벼루 위에서 검게 고여 있나
무른 뿔을 세우고
어느 문장 위를 달리고 있나
* 장만호 : 1970년 전북 무주 출생, 2001년 <세계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김달진 문학상 수상, 시집 <무서운 속도>2008 등
#,
장도리나 못처럼 강렬하게 역진하던 때도 있었고
지렁이나 달팽이처럼 평온하게 고즈넉한 때도 있었다
강과 약의 조화는 만물의 이치,
주역에도 양과 음은 대립하면서도 서로 돕는다 했다
장자의 양주편에 포정이 소를 잡을 때 긍경(肯莖)을 건드리지
않고 살을 도려 낼 수 있었던 것도 무딘 칼과 부드러운 숫돌의
조화로운 만남 때문이리라
먹과 물이 벼루에서 만나 창조된 백지 위 검은 글짜
닳고 닳은 역경 속에 무디어진 뿔 같은 生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