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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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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90회 작성일 21-10-17 09:31

본문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 




  고영민





  눈이 왔다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을 따라 너와 함께 걷는다

  목도리로 얼굴의 반을 가린 너는 한동안 나를 쳐다보았고

  말없이 다가와 팔짱을 끼어줬다

  나는 속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싸이프러스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가끔씩 큰 눈보라가 일었다

  우리는 뒤돌아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바람이 잠잠해질 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나는 속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때 너와 나의 머리칼과 눈썹, 털옷에는

  눈가루가 얹혀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 산사로 연결된 그 길가 나무의 이름이

  싸이프러스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무는 그저 거대하고 의연했다

  그 큰 나무는 가끔씩 가지에 얹혀 있던

  무거운 눈덩이를 털어내곤 했다

  걷는 동안 우리는 자그마한 소리로

  거꾸로 자라는 나무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이 겨울, 허공에 뿌리를 두고

  땅속으로 땅속으로 끝없이 가지를 뻗으며

  진초록의 잎새를 늘리고 있는

  땀 흘리는 나무에 대한 얘기였다

  땅속으로 새들이 날고

  그 푸른 허공으로 빗줄기가 쏴, 하고 쏟아질 때에도

  나는 몇번씩이나 속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싸이프러스 사이로 난 눈길은

  걸어도 걸어도 끝나지 않고

  새의 발자국 같은 흔적들이 그 위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가끔 나는 등뒤에서 누가 부르기라도 한 듯

  걸어온 길을 돌아다봤다

  소실점처럼 어떤 것으로부터 나무도, 너와 나도

  점점 멀어져가고

  너도 나처럼 그 길의 후미를 몇번이고 돌아다봤다

  그곳엔 몇백년을 한곳에 서서

  눈을 맞고, 말없이 얹힌 눈을 털어내고 있는

  정오의 싸이프러스가 있었고

  그 사이로 난 눈길이 있었다


  - 시집 <공손한 손>에서, 2009 -





- 싸이프러스는 고흐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하는 오묘한 기품을 보여주는 나무다.

  깊은 나무가 있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길이 있고,

  그들을 덮고 있는 행복한 눈이 있다.

  시는 그 설레임을, 깊음을, 고흐의 그림처럼 자연스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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