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의 복사본/최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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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의 복사본
최정례
불이 꺼져도 연기는 머뭇거리듯
감정이 끝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흔들리는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에게
붙잡혀 흔들린다
나무둥치에 붙잡혀서 반짝이는 것들이
호수에서 튀어오르는 빛줄기가
나의 항로를 반짝이며 따라온다
거기 있는 것들은 거기 있어야만 하는 것들
굳이 끌어당겨 내 것인 양 생각하는
이 심정의 끈적거림이 문제
붙잡혀서 흔들리는 나뭇잎들
그것들이 내 생각의 벌떼라고? 아니다
나뭇잎은 그냥 나뭇잎일 뿐
벚꽃 왕창 피었다 떨어지고
수없이 왔다 가는 4월
빚 갚고 갚는다 생각했는데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4월
- 시집 <개천은 용의 홈타운>에서, 2015 -
- 감정이란 여간해선 깔끔히 마무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바위 같은 이성으로 그것을 제압했다 싶다가도 4월의 벚꽃처럼 수없이 피었다 진다.
그러면서 속절없이 생은 서녘을 향해 걸어간다.
서녘 끝에서 감정은 이성에게, 이성은 감정에게,
그 때, 넌 왜, 그 결정적인 순간에, 넌 어디 있었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오늘 아팠던 지난 기억을 더듬으며 심장처럼 이 시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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