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올실 / 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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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47회 작성일 21-11-22 00:32본문
외올실 / 기혁
1
막다른 골목을 빠져나오며 보았던
발자국 위 또 한 발자국
초겨울의 숫눈 위로
네발 달린 맹수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핏덩이 같은 고백을 송곳니로 깨물고
허물어진 담장 밑
배고픈 새끼들을 향해 가듯이
당신을 기다리던 나를 앞질러
개들이 짖어대던 청춘의 모퉁이를
아침처럼 내달리고 있었다
무수한 화살이 태초의 맹수를 겨누고
더운 심장을 물들이기 위한 올무가
시간을 잡아끌었지만 매번
붙잡혀 온 것은 직립의 절뚝거림뿐
하얀 입김을 내뿜는 살점과
얼룩무늬 등허리의 촉감을
어째서 상처도 없이 거두려 한 것일까
2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두번째
막다른 골목에 고독이 갇히고
나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까지 이어진
긴 핏자국의 행렬을 고쳐 쓴다
창문 너머 당신의 음영이 비칠 때
슬픔은 마지막 발자국으로부터
되돌아오는 것 앞코가 벌어진 운동화의
무심한 본드 자국처럼
곁을 내어준 자리엔 찌꺼기가 경계를 긋는다
당신의 발치께에 눈이 쌓이면
눈 때문에 디뎌야 할 봄날이 먼저 시리다
떠나간 사랑을 아는지
그것은 맹수가 맹수를 부르다 흘린
눈물 속 내력이며
결빙의 발을 감춘 야경이 포효하던
홀로 선 인생의 뒷모습이었다
* 기혁시인의 시집 <소피아 로렌의 시간> 중에서
#,
외올실은 오직 한 가닥으로 이루어진 실을 뜻 하는데 화자는
우리인생사를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우리인생 앞에 놓여있는 길은 온 길도 갈 길도 피할 수 없는
외올길, 킬리만자로 고봉처럼 험준하여 아름다운 그림처럼
즐거움도 있고 이겨내해야 할 고난과 아픔도 있다
헤어지기 아쉬운 사람도 있고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도 있다
맹수로 대변되는 이미지의 흐름은 화자의 깊은 사색과 넓은
안목, 수려한 은유와 비유로 한 편의 인생 서사를 엮고 있는데
이미지 전반에서 솟구치는 활력은 화자의 강한 의지 표방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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