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형태/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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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형태
안희연
버리려고 던진 원반을 기어코 물어 온다
쓰다듬어달라는 눈빛으로
숨을 헐떡이며 꼬리를 흔드는
저것은 개가 아니다
개의 형상을 하고 있대도 개는 아니다
자주 물가에 있다
때로는 덤불 속에서 발견된다
작고 노란 꽃 앞에 쪼그려 앉아
다신 그러지 않을게, 다신 그러지 않을게
울먹이며 돌아보는
슬픔에 가까워 보이지만 슬픔은 아니다
온몸이 잠길 때도 있지만
겨우 발목을 찰랑거리다 돌아갈 때도 있다
물풀 사이에 숨은 물고기처럼
도망쳤어도 어쩔 수 없이 은빛 비늘을 들키는
풀리지 않는 매듭이라 자신했는데
이름을 듣는 순간 그대로 풀려버리는
깊은 바닷속 잠수함의 모터가 멈추고
눈 위에 찍힌 발자국들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냄비 바닥이 까맣게 타도록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등 뒤에 있는
이 모든 것
- 시집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서, 2020 -
- 제법 잘 만든 불륜영화를 보다보면 사랑이 무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난 새로운 사랑을 만나 당신 곁을 떠날 거야"
사랑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 파국을 맞게 되는 그런 영화.
사랑의 형태는 그렇게 심장을 들끓게 했다가도 이내 식어버린다.
냄비의 물이 다 끓어버린 후엔 식어버리듯이.
자신의 모든 내용물이 든 사랑이 방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창밖 남의 것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까맣게 타버린 냄비만이 남는다.
그의 등 뒤에 있는, 그를 아끼는 사랑의 형태와 내용물은 까맣게 잊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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