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의 입속을 걸었다 / 고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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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종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2회 작성일 21-12-20 09:08본문
뱀의 입속을 걸었다 / 고 영
뱀이 쓸쓸히 기어간 산길
저녁을 혼자 걸었다
네가 구부러뜨리고 떠난 길
뱀 한 마리가
네 뒤를 따라간 길
뱀이 흘린 길
처음과 끝이 같은 길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길
너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너의 입속을 걸었다
뱀의 입속을 걸었다
ㅡ계간 《시인시대》(2021, 여름호)
<시인의 약력>
1966년 경기도 안양 출생, 2003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2004, 2008 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기금 받음, 시집『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딸꾹질의사이학』,
현재 《시인동네》발행인
<감상 by 이 종원>
길고 멀었던 옛적 산길이 떠올랐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바로 도착 지점이 저만큼 또 모퉁이
를 달고 서 있어서 걸어가는 내내 무척이나
싫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오는 길은 밤의 터널
이어서 쫓기는 힘에 짓눌렸던 생각이 뱀의 꼬리
처럼 또아리를 튼다. 시인이 토해놓는 길 뿐 아
니라 내가 걸어온 길도 돌이킬 수 없는 길이고
죽음을 향해 가는 출구 없는 길이기에 시인이
깔아놓은 유도등에 떠밀려 나는 자연스럽게 그
대열에 섞여본다. 뱀의 입속을 걷고 있었고 뒤를
돌아다보니 옛적 산길의 모퉁이가 꼬리처럼 빼꼼
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몇 번이고 돌고 돌아가는
것 또한 나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잊고 있던 그 길
에 나를 올려놓으니 발걸음 뿐 아니라 생각의 걸음
또한 시의 오솔길에서 향기로운 바람과 대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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