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절이기/김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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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09회 작성일 21-12-31 11:10본문
배추 절이기
김태정
아침 일찍 다듬고 썰어서
소금을 뿌려놓은 배추가
저녁이 되도록 절여지지 않는다
소금을 덜 뿌렸나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 걸까
점심 먹고 한번
빨래하며 한번
화장실 가며오며 또 한번
골고루 뒤집어도 주고
소금도 가득 뿌려주었는데
한 주먹 왕소금에도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소금 한 주먹 더 뿌릴까 망설이다가
그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제 스스로 제 성깔 잠재울 때까지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
상처를 헤집듯
배추를 뒤집으며
나는 그 날것의 자존심을
한입 베물어본다
-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에서, 2004 -
- 하루를, 한달을, 일년을 기다려 절여진 마음,
우리는 제 스스로 제 성깔 절여지려 소금과 물기 속에 나를 버무린다.
그래, 또 일년이 갔다.
내가 그동안 잘 절여졌는지, 아니면 아직 그 성깔 그대로인지,
가만히 돌아본다.
그러면서 또 무언가 절여야 할 새로운 일년이 찾아올 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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