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餘韻) / 조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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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1회 작성일 22-01-17 05:46본문
여운(餘韻) / 조지훈
물에서 갓나온 여인이
옷 입기 전 한때를 잠깐
돌아선 모습
달빛에 젖은 탑(塔)이여!
온몸에 흐르는 윤기는
상긋한 풀내음새라
검푸른 숲 그림자 흔들릴 때마다
머리채는 부드러워 어깨 위에 출렁인다.
희디흰 얼굴이 그리워서
조용히 옆으로 다가서면
수지움에 놀란 그는
흠칫 돌아서서 먼뎃산을 본다.
재빨리 구름을 빠져나온
달이 그 얼굴을 엿보았을까
어디서 보아도 돌아선 모습일 뿐
영원히 보이지 않는
탑이여!
바로 그때였다 그는
남갑사(藍甲紗) 한 필을 허공에 펼쳐
그냥 온몸에 휘감은 채로
숲 속을 향하여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한 층
한 층
발돋음하며 나는
걸어가는 여인의 그 검푸른
머리칼 너머로
기우는 보름달을
보고 있었다.
아련한 몸매에는 바람소리가
잔잔한 물살처럼
감기고 있었다.
* 조지훈 : 1920 - 1968년 경북 영양출생, 본명은 東卓, 60년대 청록파시인 중
한 사람, 주요 작품, 승무 등
#,
달빛 속의 고즈넉한 탑 모습이 물 속에서 방금 나와 옷 입기전
살짝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이라
관능적 裸像의 아름다움이 태생적 자연의 아름다움과 어울져 한
편의 스냅사진을 보는 듯 독자의 마음은 흔들린다
탑은 간데없고 수줍은 나녀만이 생동하는 숨막힌 정념이여!
평생 벗지 못할 한 폭의 아픔으로 다가오는데,
시인의 대표작 僧舞에서도 그랬 듯
산그늘 아래 외롭게 나부끼는 목화송이 같은 또 하나의 純粹를
맛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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